천 테라바이트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냄새를 맡는다. 콧속 깊숙이 그것들을 들여보내면 그 기억이 뇟속까지 전달이 되는 기분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오랜만에 보는 영화를 볼 때면, 그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았을 때의 시간들과 함께한 사람들이 떠오르곤 한다.
냄새도 그런 점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다. 비가 나무로 된 창가를 적시는 냄새가 나면, 나는 우리 아빠를 떠올린다. 어릴 적 비가 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방 창문을 살짝 열어주실 때의 그 냄새를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었나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 타지에 대학생활을 하러 갔을 때, 낯선 기숙사에서 홀로 지내다 본가로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꼭 엄마가 베었던 베개에 머리를 누였다.
그 엄마의 잔향이 낮잠을 자는 내 코끝을 간지럽힐 때면 나의 행복지수는 배로 증가했다. 길 잃었던 강아지가 제 주인의 품에 쏙 들어오는 순간처럼 마음 놓이고 편안해지는 그런 기분. 나는 생각한다 '이 냄새들을 내가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냄새를 저장할 수 있는 저장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들이 이내 내 머릿속에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아마 나는 1000TB도 넘는 용량의 외장하드를 구입할 것이다.
추억 중심사상에 취해서 사는 사람 중 하나니까. 잔잔한 기억들을 꺼내서 웃고 떠들고 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첫날 맡았던 새벽 공기 냄새를 저장했다가 밤샘 공부를 해야 하는 날에 맡고 싶다. 두부를 구워서 먹을 때 삼겹살 냄새를 맡으며 먹어보고도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죽는 날까지 그런 기술을 발명할 수 없을 거라 나는 생각한다. 또 하지만 언젠가는 발명되리라 믿고 있다.
냄새 외장하드를 살 수 있는 후 세대의 '인간'들에게 이 글을 빌려 부러움을 표하는 바이다. 나는 당신들이 참 부럽소.
그곳에도 내가 아는 그 아름답던 냄새들이 당신들의 코를 간지럽히고 있나요?
2022년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