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백

산책

by 섬광


산책을 할 때 걸음이 나의 의지와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왼발 뒤꿈치가 아스팔트 바닥에 먼저 닿는다. 뒤꿈치가 땅과 떨어지고 힘이 발 앞으로 쏠릴 때 오른발이 같은 순서를 따른다. 발 뒤꿈치가 바닥을 밀어내는 힘으로 몸이 가볍게 들리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전진한다. 그 반복적인 행위에 집중하지 않는 편이 좋다. 내가 지금 잘 걷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드는 순간 왼발과 오른발 어느 쪽이 바닥과 먼저 닿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저 걷는다. '잘'이 아니라 '걷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도착지에 다다른다.


약 8개월 간의 수험이 끝나고 예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단지 출원했던 대학들 중 예술학부 한 곳만 합격이 되고 모조리 떨어진 게 다였다. 몇 개월을 전전하며 만들었던 성적 없이 소논문 하나로 대학에 합격했다는 게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잘하려고 달려들었던 것보다 마음을 놓고 임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한동안은 그게 좀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조금 났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예대고 나발이고 이전에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자기 연민과 보상심리였다. 형광의 조명이 나를 하나하나 벗기고 해부하는 기분을 느꼈다. 사실 너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겨우 그게 네가 가진 전부라고. 불빛이 살갗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더 이상은 나를 걸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은 나를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은.


그 다짐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G에게 연락이 왔다. 긴 문장의 말미에서 G는 그래도 다시 끝까지 가 보라는 말을 적었다. 그건 실패가 아니야 언니. 뭐든 끝을 보고야 마는 게 가장 언니다워. 그냥 그렇게 살아도 돼. 연락을 받은 저녁에 오래 앉아 고민했다. 과연 상처받을 각오로 다시 임하는 게 맞는 것인가? 고작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었을 박탈감을 다시 감수할 만큼 나의 무언가가 힘을 갖고 있는가? 오랜 고민의 끝에서 나는 그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뭐든 적당히 하며 나를 안전지대에 두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크고 작은 상실과 치유를 반복하는 일이 나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에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가 함부로 넘봤던 것들이 나의 숨을 증명하고 그 힘으로 전진할 것이라고. 어쨌든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2022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임솔아 작가는 작가 노트에 자신의 경험담을 적었다. 솔아야 너무 열심히 쓰지 마. 그게 꼭 패기 넘치는 대학생이었던 내게 하는 말 같아서 덩달아 서운했다. 격려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게 옳은 게 아니었던가. 열심히 할 만큼 좋아하는 것이 어떻게 무서워질 수 있는 걸까.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져. 공부든, 글쓰기든, 사랑이든.

이제는 그 말을 언뜻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 앞에서 비겁해지고 싶지는 않다. 집 밖을 나서서 지면에 닿았던 발바닥의 감각을 기억하듯이 그저 지내는 일과 쓰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잠이 드는 삶이 전부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작고 사소한 균형만으로도, 열심히나 잘과 같은 부사 없이도 나의 삶이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유일하고 희미한 희망으로 마지막에 도착하고 싶다고, 그렇게 스스로 주문을 걸어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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