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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y 25. 2023

21세기 러다이트 운동 (feat. 헐리우드 총파업)

헐리우드 총파업에 대한 사견



얼마 전 헐리우드 작가들이 AI 도입으로 인해 총 파업을 결행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예상했던 우려였긴 하지만,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능력의 원천이자 도구인 '글'을 가지고 먹고산다는 나 혼자만의 내적 동질감 때문인지 더욱 그들의 이입된 점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AI의 보조 역할로 밀려날 인간의 숙명의 시작을 알리는 경종인 것만 같은 느낌에 입맛이 썼다.




이 일은 근대 역사에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란, 산업 혁명 당시 영국에 있던 직물 공업지대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계속되는 경기 불황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낮은 임금으로 시름하던 노동자들이 그 원인을 기계로 돌려 공장을 급습, 기계를 파괴하고 다녔던 사건을 일컫는다.

너무도 빠른 시간 안에 인간 노동의 가치가 기술 문명에 밀려난 최초의 사건이자 도화선이므로 그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 '러다이트 운동'을 처음 배웠을 당시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느낌이 지금도 기억난다.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이었던 당시 이걸 들은 미숙하고 어렸던 내가 했던 생각은 '어리석고 잘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  딱 그 정도였다.

기억에 선생님도 별다른 부연 설명은 없었던 것 같았다. 다만 추측건대, 아마 당시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우리는 그 단편적인 사건에서 어떠한 공감도 찾지 못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PC의 보급과 인터넷의 발달, 모바일 생태계의 구축 등의 기술 발전은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한다면, AI 기술의 발전은 지금까지와는 그 궤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르던 늦던 대다수 러다이트 운동에 가담했던 노동자들의 입장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간의 고급 일자리는 AI와 소수의 관리자가 차지하게 되고, AI에 밀려난 대다수는 3D 업종 혹은 1, 2차 산업의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될 것이다. 저임금 노동 환경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 최저임금을 계속해서 올린다면 종래에는 이마저도 기계로 대체되고 말 것이다.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한다 해도 이러한 환경적인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본능적 차원에서 위기감을 심어주게 될 것이기에 결국 이러한 불안감이 해소되기 전까진 인구 또한 계속해서 감소할 것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인간이란 원래 눈앞에 위기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상 선제적인 리스크를 감내하는 동물이 아니기에 정책적인 변화는 마지막에 마지막 까지로 미뤄질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쭙잖게 예언가 흉내를 조금 내 보았지만, 무엇 하나 미래를 긍정적으로 예측하는 소식 하나 들려오지 않는 요즈음 같은 시대에 21세기 판 '러다이트' 운동을 연상케 하는 이 작가 파업을 두고, 문명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미개한 태도라며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마치 자기들 역시 내일 같은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대다수의 작가는 AI의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자신들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에 부당함을 느꼈을 것이다. 더 좋은 결과를 내고, 효율적인 것도 중요하겠지만, 과정에서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피해를 주는 일은 최소화해야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한 '질적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따져봐도 AI가 만든 더 좋은 퀄리티의 극본으로 즐거움을 얻을 다수의 행복의 총합보다는 AI로 인해 대체될 인간의 상실의 슬픔의 총합이 더 크기 때문에, 너무 급진적인 전환은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는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바라봐도, AI 기계 번역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내가 먹을 파이의 양도 줄어들고 있지만 사실 아직은 그리 위기감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밝은 미래를 꿈꾸며 사느냐, 어두울 미래를 대비하고 사느냐는 현재를 사는 사람의 자세를 크게 좌우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불안한 미래를 염려하며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고 대비하지만 그런 현재의 삶이 썩 즐겁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불안한 미래로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해본다.

 

어렵고 불안한 시기, 내 아이가 살아갈 이 세상이 좋은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오고 서로가 조금 더 공감해 주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한다.



#러다이트 #미래 #AI #일자리 #존스튜어트밀 #공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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