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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사 Nov 24. 2020

술, 그 이상의 의미.

화학 감미료면 어때요. 감미로우면 됐죠.


Q. 죽기 전 마지막 만찬으로 어떤 음식이 좋을까?

A. 슴슴하게 끓인 돼지고기 짜글이에 얼기 직전으로 시원해진 소주 한 잔.


천국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서늘해질 무렵 소주 한 잔 탁 털어 넣고 여운이 가시기 전에 뜨끈한 짜글이 국물에 쌀 밥 슥삭 비벼 한 숟갈 물고, 큼직한 계란말이 가득 욱여넣어 오물오물 씹으면 "여기 소주 한 병 추가요" 소리가 절로 난다. 크으, 소울 푸드 뭐 거창할 거 있나. 바로 이맛이다. 술을 썩 잘하지는 못한다. 뭐, 잘하는 것만 좋아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코로나가 앗아간 20학번의 어깨춤


합법적으로 음주가 가능해지는 나이 스무 살. 19년을 제정신으로 살았으니 가끔은 정신줄 놓고 의식의 흐름대로 살았으면 좋겠는 나이. 단어만으로도 가슴 벅찬 나이이니 그때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면 좋겠는데 강력한 신종 역병이 찬란한 스무 살에 태클을 건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나오면 생계가 기다리고 있는데, 바쁘고 무거운 대한민국 청년들은 철이 들기 전에 힘껏 놀아야 한다. 설레는 OT, 뻘쭘한 신입생 환영회, 흥분되는 MT, 묘한 선후배 대면식. 네 가지를 통과의례처럼 치르고 나면 여름방학이 온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냐며 바락바락 외쳐대는 통에 스무 살 1학기는 학점 대신 허스키 보이스를 특이점으로 받아왔다. 어깨 춤출 시간에 좀 더 '학생스럽게' 살았다면 지금과 다른 미래에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제 와서 '대학생 때 공부 좀 할걸' 싶어도 마음속의 궁예가 관심법으로 보니 돌아가도 공부할 마음은 없다고 후회하지 말라더라.


벚꽃 날리는 봄날. 매점에서 주워온 종이 박스를 벅벅 찢어 눕히고, 그 위에 앉아 새우깡에 생수만 있으면 두 병쯤은 거뜬했던 대학생 시절. 안주는 거들뿐, 함께 할 친구들과 어깨춤만 있다면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하며 요즘 애들 말로 종이 박스 찢듯 그날 밤을 벅벅 찢어놨었는데. 술 남기는 거 아까워하지 말자는 주의지만 다들 절약정신이 남달라 남기는 법이 없다. 먹던 찌개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명 넣듯 핸드폰을 담가 끓이던 친구를 비웃던 나는 다음날 아침 두 동강 난 핸드폰을 발견한다. 그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또 다른 녀석은 누구 것인지도 모를 핸드폰을 들고 있다. 그런 날은 동전을 탈탈 털어 공중전화기를 찾는다.


"엄마.. 도서관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지 뭐야.. 어휴."

"도서관? 수화기 넘어로도 술냄새가 난다 이 기지배야."


엄마 귀에 거짓말 탐지기가 있다.


엄마 귀에는 거짓말 탐지기가 달려있는가 보다. 올라오는 숙취에 헛트림을 해가며 500원어치 잔소리를 다 듣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오면 친구 녀석들과 막걸리 먹을 생각에 들떴다. 아모르파티에 앞선 대환장 파티의 연속이었던 대학교 시절은 딱 싸이월드 느낌으로 아련하다. 스무 살은 미래를 위해 정진해야 할 때도 맞고 심어놓은 종자에 거름을 줘야 할 때인 것도 맞지만, 미래지향적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무궁무진한데 딱 그때만이라도 카르페디엠 정신으로 후회 없이 놀았으면 좋겠다. 서른둘이 된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추억을 안주 삼는다. 그 아련함은 지금 당장 얼마가 있어도 살 수 없다. 그때에 겪고 와서 참 다행이다. 비워낸 소주병 누적수와 비례하며 감미롭게 쌓여가는 우정 그리고 ㅅr랑. 소주 이야기에 소개팅이 빠질 수 없지만 그건 아꼈다가 맥주 한 잔 마시며 감칠맛 나게 써봐야겠다.


이 브랜드, 내가 선택한 것일까.
(feat. 진로 이즈 백)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어떤 걸로 드려요?" 

"진로요."


소주 한 병 달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알아서 가져다주던 시대는 마케팅 경쟁시대의 서막과 함께 종말 되었다. 요즘은 되려 "어떤 걸로 드려요?" 하고 묻는다. 어쩌면 레드오션 마케팅 속 선택 장애들의 수난시대다. 이젠 식당에 가면 정확히 원하는 주류를 외쳐야 하니 선호하는 브랜드 하나쯤은 품고 있어야 한다. 참이슬이 소주의 대명사로 불리던 때도 지나가고 있다. 다양한 주류 회사에서 번져 나오는 신박한 마케팅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과연 맛으로만 브랜드를 결정하고 있을까.


마케팅의 노예


언젠가 음주문화에도 레트로가 유행처럼 번졌다. 불편한 의자에 협소한 테이블, 낡은 플라스틱 접시에 안주를 담아 내야 사진이 찍힌다. 그 사진이 SNS에 올라가면 홍보가 되고 비로소 인싸 맛집이 된다. 확실히 요즘 소비자들은 제품 이상의 것의 소비를 원한다.

#불금 #인싸맛집 #레트로술집 #오늘밤주인공은 #나야나


나는 요즘 진로를 마신다. 지역 소주를 마셨다가, 순한 소주로 옮겼다가,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자 다시 참이슬을 마셨다가 어느 날 깜찍하게 등장한 두꺼비로 갈아탔다. 도수도 적당하고, 뭔가 뚜껑 따는 맛이 있지만 이전에 마시던 소주랑 크게 다를 것 없다. 내 기호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마케팅 속에 젖어들어 습관처럼 진로를 마신다. 아버지 세대때 마시던 진로를 마셔줘야 젊은 층에 속한 것 같은 기분도 결정에 한 몫 한다. 진로의 행보는 두고볼 만 했다. 과하지 않나 싶은 두꺼비 굿즈가 불티나게 팔린다. 소주 마스코트가 이렇게 인기 있을 일인가. 만약 저 두꺼비가 사이다의 마스코트였다면 그 사이다가 인기를 끌었을까. 하필 저 하늘색 병에, 하필 저런 두꺼비가 하필 소주에 붙어있어 진로를 마신다.


진로는 감성을 소비하는 이 시대에 우연한 등장이었을까. 아님 이런 시대를 기다리며 움츠리고 있다가 이때다 싶어 구겼던 다리를 힘껏 편 것일까. 뻘 생각에 빈 병을 한참이나 쳐다보게 되는 오늘 저녁은 계란 잔뜩 넣고 끓인 라면에 김장김치 얹어 진로 한 잔 해야겠다. 화학 감미료면 어떤가, 감미로우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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