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묵혀있는 재료가 많다. 오늘은 그 재료들 좀 써야겠다 싶었다. 두 달 전쯤 엄마가 사다놓은 다진 소고기, 꽤나 오래 전부터 야채 칸 검정 봉지 속에 덩그러니 담겨있던 브로콜리, 이현이가 먹고 싶대서 할머니가 사주신 토마토, 다듬어 놓았던 대파. 이렇게 네가지의 재료를 선택했다.
궁금한 게 많은 우리 이현인 요리하는 내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브로콜리를 먼저 꺼내서 만져보라고 주었다. “나무 같지?” “아하하 나무 같애~~” 요리조리 보다가 결국 의자를 밀고 싱크대 옆에 와서 "엄마 하는 거 볼래”하고 자리를 잡았다. “엄마 이건 버리는거야?” “이건 만져도 돼?”, “칼, 가위는 만지면 노노노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가 하는거야.”, “(칼 손잡이에 손을대고) 엄마 손잡이만 만졌어요~~ 위에는 안 만졌어요.”, “근데 여기는 왜 만지면 안돼?” 토마토를 잘라가는 칼 소리에 “됐다, 됐다, 됐다” 추임새 넣기... 이런 수다쟁이 같으니라고.
다진 소고기는 그릇에 진간장을 몇 스푼 넣어서 잠시 재워놓고, 브로콜리는 다듬어서 (잘라내야할 부분도 꽤 있었다는 거 안비밀)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 잘게 썬 대파를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 파 향을 기름에 입히고 소고기를 볶았다. 냉동했던 고기라 미림을 부어서 잡내가 날아가게 들들 볶아주었다. 거기다 잘게 썬 브로콜리와 토마토를 넣고 핑크 솔트를 살짝 뿌려서 볶았다. 수다쟁이 조수에게는 중간 중간 일을 시켰다. "(대파 통을 주며)이거 냉장고에 넣고 오세요”, “냉장고에 토마토좀 갖다주세요.”
오, 기대하지 않았는데 꽤 맛있다. 살짝 뿌린 간장과 토마토의 달달함이 삼삼한 단짠 양념이 되고, 다진 소고기와 토마토, 브로콜리의 뒤섞인 식감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음~ 마시따~” 한 시간 전 쯤 밥 먹었는데 또 먹였더니 맛있다며 먹었다. 근데 졸음도 함께 찾아 오는건지, 갑자기 "아 추워" 하며 방에서 이불을 꺼내 질질 끌고와서 몸에 이불을 감싸고 받아먹는다. 그러다 의자에서 쭉 미끌어져 내려가 이불 속에 숨어서 혼자 숨바꼭질을 하며 신났다. 바닥에는 이불과 입에서 튀어 나온 밥풀이 함께 뒹굴거린다. 아…. 오늘의 냉장고 파먹기 요리시간은 어김없이 정신산란으로 끄읏!
20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