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이진 Dec 19. 2018

식당은 처음이라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첫 경험

식당 운영은 처음... 아니, 무언가를 운영한다는 일 자체가 처음이었다. 보통 자신이 책임자가 되어 일을 벌일 때에는 그 분야에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쌓인 후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일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지겨워지는 무렵,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닌, 내 일을 내가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이 찾아와 시작하는 게 대부분의 패턴이 아닐까. 그러나 익숙은커녕 이 일은 나에게 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조차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며 나와 식당 경영을 연결 짓는 일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그랬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이라 어렵지만 처음이라 쉬운! 이 모순은 순전히 '무지' 덕이다. 앞으로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는 무지, 그 일의 과정에서 찾아올 어려움과 고통을 짐작하지 못하는 무지, 어떤 것을 잃고 어떤 것을 얻을지 모르는 무지... 알지 못했기에 결심할 수 있었고 알지 못했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식당 경영을 삶으로 한번 받아들여 보기로 결정한 후 바로, 무지가 만든 콩깍지는 벗겨졌다. 아주 빠른 속도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과 어려움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졌다. 커져가는 눈덩이와 함께 결정을 돌이키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사실은 결정을 내린 직후 다시는 돌아가기 힘든 강을 건넜던 것이었는데, 호기에 취해 판단 능력이 없었다. '이걸 꼭 했어야 하는 걸까?'는 탄식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왔을 때야 깨달았다. '이제 우리는, 그냥 이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구나'


패기 넘치는 시절, 이런 경험 언제 해보겠냐는 호기로 자전거 전국 일주를 결심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한 지 대략 3시간 정도 흘렀을 때, 아무리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회색 도로 위에서 쌩쌩 달리는 차의 매연을 강제 흡입하며 하는 생각, '아... 이렇게 며칠을 가야 하는 거지.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 왜 멀쩡한 내 육체를 혹사시키고 있을까... 하... 그냥 버티고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구나... 내가 어쩌다 이 선택을 했을까...'와 거의 흡사한 깨달음이었다(물론 전국 자전거 여행은 해본 적 없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품고 인생의 모든 선택을 신중하게 계산해보며 사는 법도 있다. 반면 잘 모르고 선택한 일이나 어쩔 수없이 떠밀려하게 된 일이 삶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왜 그런 선택을 했냐는 질문에 딱히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머리를 긁적이며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게 되는 삶. 선택에 대해 웅변하는 강한 목소리가 거북스러울 때는 '어쩌다 보니'라는 논리 아닌 논리가 더 맞는 것 같다. 나는 어쩌다 보니 돈가스를 튀겨보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를 하루에 수십 번을 반복해보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매일 카레를 만들어보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답도 잘 모르는 산적한 문제들 앞에 당황하며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대략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 방대한 시간 속에서 무엇을 건져낼 수 있을까? 가치와 의미, 교훈, 정보...? 그 역할을 내가 규정할 수 있을까? 삶에 뒤엉킨 시간에서 건져낸 것들은 언젠가 찾아올 죽음의 수렁으로 흘러들어 가기 전에 건져진 것만으로도 다행 아닌가.


다행스럽게 건져진 것들을 하나둘씩 펼쳐 보려고 한다. 꼬깃꼬깃 접히고 축축해져서 잘 알아보기 힘든 것들을  잘 펼쳐서 선선한 바람에 말려 흘러가는 시간 사이사이에 걸어두어야지. 팔랑대던 '나의 기억'이 어느 날 문득 '우리'를 향한 손짓이 된다면, 조금 행복할 것 같다.


장인의 맛집도, 핫플 맛집도, 인스타 맛집도 아닌, 처음 해 본 동네 식당 이야기,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