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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r 22. 2024

집짓기 19주 차

모든 층이 연결되다.

84일 차 2024년 3월 11일 월, 2도/11도

1. 금속계단 용접부위 샌딩
2. 에어컨 배관위치 협의 및 드레인코어 작업

명일 : 금속 / 시스템에어컨 / 설비 / 외장업체미팅 / 방수미팅

드레인코어 : 배관을 위해 원형으로 벽체를 타공 하는 것. 바닥 배관은 골조단계에서 잡아두었고 에어컨, 주방후드, 보일러 설치를 위해 필요한 크기별로 뚫는다.
금속계단 용접 부위를 매끈하게 가공 / 에어컨 배관을 위한 타공 (우)

내부가 계단으로 모두 연결되고 이제 다듬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설비 배관을 위해 단단한 콘크리트 벽도 뚫어야 하고 직접 듣진 못하지만 소음이 꽤 생기는 일들이라 걱정이 생기는 기간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아이폰 포토앨범에 "Stairs"로 검색을 하니 1000개가 넘는 사진이 주르륵. 설계과정에서 인터넷에서 찾은 인상적인 실내계단을 가진 집,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어느 거리, 일부러 찾아간 렐루서점이나 루커리빌딩까지 계단이 들어간 사진이 꽤 많은데 그중에서도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은 전시된 작품보다 미술관의 실내계단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로비에서 시작해 층마다 변하는 계단 풍경과 형태에 감탄하면서 홀리듯 계단을 오르다 멈추다 했던 기억이 여전하다.


층과 층을 연결하며 위로 상승하는 기능을 넘어 자기 특성을 빛내려 마음을 먹으면 제대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구조물이 계단이 아닌가 싶다. 이 집도 작은 대지 위에서 올라가다 보니 계단의 연속이지만 주인공처럼 욕심을 내기에는 역시나 자리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2층 입구부터 첫인상을 만들고 수시로 시야에 잡히는 계단에 '아름다움'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가 담기길 바라는 마음은 버릴 수가 없다. 게다가 정확히 잘려나간 경쾌한 각을 보자면 그 바람은 또 기대가 된다. 이렇게 계단의 각이 단호하게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 한켠에 있는 걱정도 있는데 계단을 오르락거릴 때 느껴지는 금속판의 울림이다. 계속되는 진동이 철판 위에 올려질 목재를 더 빨리 분리시킬 수 있고, 시야에 잘 들어오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띄어 거슬리기 쉽다는 점.

이런 고민으로 '괜찮을까?'를 계단을 오를 때마다 자문해 본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안전하니까... 괜찮지...' 하고 싶은 걸 이길 순 없다. 걱정은 살면서 감당하기로.

작은집의 오브제로 어우러진 조형미 있는 계단들 (인터넷 검색)
프랑크푸르트 Museum of Modern Art 내부 (2019.9 촬영)



85일 차 2024년 3월 12일 화, 4도/10도

1. 금속 외부 처마 후레싱 / 1층, 4층 처마시공
2. 에어컨 배관설치

명일 : 금속 / 시스템에어컨 / 설비

후레싱 (flashing, 플래싱, 비흘림) : 접합부위나 재료 분리지점 등 취약 부위에서 물이 내부로 스미거나 맺히지 않도록 금속재로 덧대어 물을 막고 잘 흘러가게 하는 것. 한글표현인 ‘비흘림’이 더 이해하기 좋은 듯.
외부 처마 후레싱 (마감 후엔 2mm 정도 분리선 처럼 노출될 예정)
에어컨 배관 설치

에어컨 배관을 보니 에어컨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고 혼자 웃었다. 층마다 씰링팬에 분리된 공간마다 있는 에어컨까지, 여름 햇살이 뜨거운 서향집이고 점점 독해지는 여름 무더위를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과하지 싶어서다. 특히 4층은 약간의 셋백(setback)이 있고 두 개의 공간이 분리되어 개별 공간의 크기가 3-4평 정도 될 텐데 에어컨이 모두 필요한 걸까 싶은데, 한편으로는 이러다 뜨거운 여름에 무슨 소리를 할지 한번 지켜보자 싶은 생각도 든다. 에어컨 동파이프가 천장을 지나 벽을 뚫고 외벽을 따라 실외기까지 잘 정리되어 연결된 게 보기가 좋다. 이런 보이지 않는 시설들이 질서 정연하게 된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처마 후레싱도 딱딱 오와 열을 맞추어 설치 완료! ^^ 외벽이 붙으면 띠 정도로 보인다고 한다.



86일 차 2024년 3월 13일 수, 1도/12도

1. 금속 1차 작업 종료
2. 에어컨 1차 작업종료

명일 :  내장목공~칸막이 작업 시작

2층 에어컨 배관 (빛이 좋은 날이었네)
4층 에어컨 배관 / 1층 처마 후레싱 (금속)

날씨에 따라 다른 빛이 담긴 실내가 다른 얼굴 하는 걸 보니 나중을 상상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 나는 층마다 층고가 얼마나 되는지가 큰 관심사이다. 작은 공간이라 높은 층고로 공간감을 만들어 볼 심산이었으나, 천장엔 설비를 감안한 라인이, 바닥엔 마감재 높이가 먹으로 그어진 걸 보면 나도 모르게 걱정이 되는 거다. 다행히 조소장님, 현장소장님 다 같이 건축주의 고민에 동참해 주어서 보통 200mm은 필요하다는 천장공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열띤 논의가 현장에서 일어나는 중이다.



87일 차 2024년 3월 14일 목, 3도/15도

1. 금속. 건물 외벽 수평. 수직 기준선 내림
2. 내장목공 작업 시작

명일 : 내장목공~칸막이 작업

내장목공 작업이 시작되었다. 현장에서는 하지틀 작업과 상을 친다고 말하는데 둘 다 일본어에서 온 표현으로 검색을 해도 정확한 정의를 찾기가 어렵다. 목재나 철재(아연) 각재로 뼈대를 만드는 기초작업을 의미하는 걸로 대략 알아들었다. 상은 천장이고 바닥은 하지(下地)인가 싶기도 했으나, 그건 아닌 거 같고 하지는 틀에 가까운 기초작업, 상은 그 위에 살을 올리는 작업이 더 가까운 듯.
콘크리트 벽 타공 후. 200mm 두께(H)의 벽단면 확인가능 / 금속 외벽 실내림 (수직, 수평)
석고보드와 목재 / (우) 목공 작업 중 (창 위의 구멍들이 코어작업 결과)
한껏 올려진 3층 주방 후드배관 (주방 / 다용도실)

코어작업으로 벽을 뚫으면서 건물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원기둥이 여럿 있어서 그중 매끈한 것을 양손에 들고 왔다. 철근과 자갈, 콘크리트가 섞인 기둥인데 마치 하나의 오브제 같기도 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건물의 속내라 기념품 같기도 하다. 현장에서 번쩍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마당에 내려놓고 나니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무겁다. 웬만한 지진에도 무너질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층 계단 아래로 TV 위치를 바꾸기로 하면서 통신라인이며 콘센트 등이 추가로 필요해졌고, 벽면 한켠에 위치한 수납공간용 스위치가 걸릴 거 같아 옮겨보려 했으나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문이 달린 공간이라 센서등으로 교체하는 것도 잠깐 검토가 되었으나, 센서등이 되려면 중선(약한 전기가 계속해서 흐르는)까지 세 가닥의 전선을 빼둬야 하는데 스위치 방식으로 두 가닥만 빼두어서 실패. 적절히 오픈 선반을 배치해 보기로 했다.


하지작업 전에 천장설비 공간을 확정 짓고자 3층의 천장 매립형 주방후드(엘리카 H16)의 배관 지름이 얼마인지 확인하면서 낙담하게 된 사실은 모델의 배관은 89mm(h) x222mm(w)로 아주 슬림해 보였으나, 직사각형의 배관이 국내에선 일반적이지 않으므로 연결덕트를 써야 하고 결국 지름 150mm의 배기관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욱여넣다시피 해서 최대한 높이는 쪽으로 결론은 났다. 참고로 수입후드 배기관 지름이 국내제품보다 큰 편(⌀125mm)이라고 한다. 흡입력은 좋은 거겠거니.


미리 그어진 천장과 바닥 먹선을 따라 수평계에서 나온 초록색 레이저가 벽면에 얹어진다. 똑바로 뻗은 광선을 가이드 삼아 각재로 공간을 나누고 벽면이 세워지고 문틀이 만들어지면서 도면으로 보았던 공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평면에 그려진 도면이 실제 공간이 될 때 어떤 모습일지,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를지. 그리고... '이젠 뭐든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까지, 설렘인지 불안함인지 한 가지 감정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긴장감에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날씨가 너무 좋았다. 소장님 두 분과 점심 후에 공원에서 햇볕을 쪼이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었다. 뜻밖에도 달리기와 마라톤과 운동이 주요 토픽. ^^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 건축주와 마라토너급의 현장소장님과 운동하기엔 너무 바쁜 건축가 간의 사뭇 진지한 건강얘기.



88일 차 2024년 3월 15일 금, 4도/15도

1. 금속 계단디딤판 목재 고정용 구멍타공
2. 내장목공 칸막이 작업-전기 배선 작업 가능케

명일 :  내장목공~칸막이 작업

내부 가벽과 하지틀 작업

하루 만에 이럴 수도 있구나. 천장이 다 잡히고 벽이 들어서고 미닫이 문틀까지 작업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속도에 내가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혹여 빠뜨린 건 없는지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이번 주까지 아마존과 11번가를 들락거리며 장장 3개월에 걸쳐 구매한 수전을 모두 현장에 전달하기로 했다. 샤워걸이나 배관 노출 없이 깔끔하게 마감이 되는 매립형 수전이 많기 때문에 벽 마감 전에 깊이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시카고 여행에서 발견한 미국 브랜드 Symmons Identity 모델을 기본으로 했는데 수입수전인 데다, 수도 배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쉽지 않은 설명서를 토대로 알아서 밸브를 구매했기에 제대로 잘 산 건지, 설치하는 데 문제는 없을지 걱정이 좀 되는데 드디어 검사를 받는 날이 왔다.


수전 등 자재구매 과정을 따로 남길 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시작을 무광 스테인리스(Brushed Nickel)로 고르면서 재고확보와 가격부담 모두 한동안 고민거리였다. 반짝반짝 크롬이 저렴하지만, 한 세트, 두 세트 수집하다 보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예산에 맞게 계획할 필요가 있다. 먼저 예산계획을 했다면 크롬으로 골랐을까? 그건...?



89일 차 2024년 3월 16일 토, 5도/ 18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조소장님이 빌려준 '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라는 책을 즐겁게 읽었다. 2, 3층의 주택가를 자유롭게 들락거리는 스위스 고양이들이 상상이 되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오는 사진이 많다.
직접 보고 싶어진 고양이 사다리 밀집구역.  베른의 '마텐호프-바이센뷜', '슈타이거후벨', 키르헨펠트-쇼스할데 지구 '무리펠트' / 외출할 마음은 없어보이는 망원동 고양이 디디

바닥 높이를 확정하기 위해 오전에 바닥 마감재를 선정했다. 설계 단계에서 모델을 확인한 적이 있어서 기존에 봤던 제품들을 다시 보면서 골랐기 때문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자재 샘플과 실제 설치된 공간을 볼 때 느낌이 다른 건 바닥도 마찬가지이다. 자재만 볼 때는 널찍한 광폭 원목마루가 좋아 보였는데 여행으로 갔던 파크로쉬 호텔의 원목마루 바닥을 보고 나서야 우리 집 크기에 광폭마루가 적합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컬러 역시 너무 밝아 보이던 오크가 그렇게 밝지 않다는 것도 직접 확인하게 되었고.

그래서 고른 것은 제품의 폭 150mm, 11.5 or 12T.


주말, 점심식사 시간을 틈타 현장사진을 층별로 찍어보았다. 볕이 잘 들고 바람도 잘 분다. 2층은 다용도실을 제외하고 가벽 없이 열린 구조이고 공원을 향해 난 창도 큰 편이라 시원해 보인다.

하지작업을 마치고 상이 쳐진 주방 천장과 꼼꼼히 감리 중인 조사장님 (2층)


일명 '아픈 손가락'이라 명명된 4층 욕실. 너무 많은 바람을 담은 걸까? 계속해서 걸리는 것들이 생긴다. 여닫이 문을 달기 어렵고(근데, 방법을 찾았다! 브라보!) 방법을 찾고 나니 벽으로 쓰려던 자리에 도어함이 생겨 콘센트 위치를 못쓰게 되고, 다시 옮기며 벽을 또 까내야 하고 욕실 음악을 담당할 구글홈 미니 스피커 자리도 마땅치가 않다. 이제 수전까지 갔으니 어찌 되려나? 4층 욕실 때문에 진짜 손가락이 아픈 건 현장소장님일 듯.

a.k.a. 나의 아픈 손가락 4층 욕실; 정말 아파


4층의 변화가 가장 크다. 수납장 겸 가벽이 서면서 공간이 확실히 분리되고 복도 같은 공간도 생겼다. 전체적으로 바닥면을 차지하는 가구는 최소한으로 들일 예정이라 4층에는 수납공간을 확보해 두었다. 공간에 맞게 짐의 부피를 줄이는 것이 다음 숙제가 되겠다.

공간을 덜 차지하고 열어놓기 좋도록  미닫이 문을 주로 사용 (4층 서재와 다실)
수납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복도가 생기는 4층


건물 입구와 지면과의 단차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왔던 계단실 외부창으로 비가 들어오고 눈이 쌓이는 장면이 자꾸 떠올라 뭔가 대안을 마련해야 할 거란 생각이 부쩍 든다. 남측 외부창은 지하를 내려가거나 2층으로 올라갈 때 화단의 푸른색과 꽃향기라 날리는 모습만 상상했지, 비가 쏟아져 들어오고 눈이 날리는 장면은 시나리오에서 빠져있던 것이다. 자칫 눈비 오는 날엔 입구를 지나 2층 현관까지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할 수도 있겠다. 우산 쓰고 화장실에 가는 스미요시 주택(안도 다다오)처럼?


계단실의 지하창에 빛이 닿으면서 통풍도 잘되어야 하고, 계단을 오가며 하늘을 보는 것도 놓칠 수 없다. 그러니, 벽으로 막지는 말고 저 요건을 충족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로 마무리되었는데, 지금까지 나온 안은 '어닝'(효과 없을 걸 모두 예상), '뚫린 벽돌을 약간 바깥쪽으로 기울여 쌓는 방식', 부분적으로라도 '투명유리 혹은 볼록유리로 막는 방법' 등등등.

남쪽으로 크게 난 계단실 외부창. 요즘 고민거리.
레퍼런스 : 욕실타일 / 계단실 창 외벽마감

두꺼운 벽체가 이곳저곳 뚫렸다. 필요한 작업이라 어쩔 수 없지만 위치 조정을 위해 다시 뚫는 건 당연히 마음이 무겁다. 외단열이라 마감이 밖으로 깨끗하게 될 거란 걸 알면서도 그렇다. 콘크리트 건물은 역시 매끈한 매력이 최고라 구멍이 생기는 게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집이 작다 보니 모든 사이즈가 여유 없이 타이트하게 만들어지는데서 비롯된 문제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딱 맞아떨어지는 걸 보면 느껴지는 쾌감! 오락가락하네.


같이 점심을 먹으며 무슨 이야기에서 시작했는지 서로 칭찬릴레이가 이어졌다. 현장 문의에 바로 대응하는 설계사와 코 앞에 살아서 부르면 5분 안에 나타나는 건축주, 복잡한 도면 디테일을 하나하나 정확히 파악하고 실재하는 구조물로 완성시키는 현장소장님까지, 각자 역할대로 필요한 논의를 하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면서 작업이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Phase 2. 4주 차의 상태이다.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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