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까이에 이어 AI까지

'복붙' 기사 홍수 속, 떨어지는 저작권 가치

by 루모스

"이대로 가면 유쾌하게 웃으면서도, 공감과 짠함이 남는 기사 톤이 완성돼! 추가로 하객 반응이나 신부 스토리 더 넣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해줘!"


최근 기자들 사이에서 화두가 된 기사가 있다. AI가 써준 듯한 내용이 그대로 담긴 유명 개그맨의 결혼 기사였는데, 그 글의 화룡정점은 하단에 들어간 이 문장이었다. 이제 ''우라까이'가 아니라 AI랑 경쟁해야 하나'라는 자조섞인 한탄도 나왔다. 해당 기사는 이미 다수 나온 기사를 우라까이한 수준이었다. 기사의 저작권은 이미 바닥을 친지 오래지만, AI의 확산으로 지하로 처박히는 수준이 된 느낌이다.


업계 용어로 '우라까이'는 단독 기사 등 다른 사람의 기사를 그대로 긁어서, 복사와 붙여넣기 해 쓰는 걸 의미한다. 일본어 '뒤집기'를 뜻하는 '裏返(うらが)えし'에서 왔다. 우라까이를 하며 출처라도 밝혀주면 좋으련만, 외신 기사를 인용 보도할 땐 밝히는 출처를 국내 언론들 중엔 '한 매체에 따르면' 정도로 '퉁' 치는 사례로 비일비재하다.


이런 우라까이는 내가 일을 처음 시작했던 10여년 전만 해도 기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부분이라 터부시하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직접 취재해서 자신만의 문장으로 글을 써서 사람들이 보도록 하는 게 기자라는 업의 기본이라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기사를 소비하는 방식이 포털과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이동하면서 속보 경쟁이 치열해졌고, 누가 내 기사를 베꼈는지 확인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무심코 클릭한 기사를 보고 '너무 내 거랑 비슷하다'고 느껴 회사 차원에서 항의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이슈로 수백, 수천개의 기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과연 내 기사를 베낀건가'라고 확신하기도 어렵게 됐다.


심지어 공들여 쓴 기획기사를 며칠 뒤에 베껴서 쓴 타사의 기사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런 기사를 포털 뉴스 편집자나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상단에 노출되면 더 화가 난다. 나이가 어린 기자가 뭘 모르고 썼나 싶어 타 매체 동기 등을 통해 확인했다가, 부장급의 데스크가 그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뒷목을 잡았던 경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도 우라까이에 대한 기준이 느슨해졌다. 오히려 화제가 되는 사안에 대해 확인을 하고 제대로 기사를 쓰는게 '트래픽 손해를 보는 멍청한 짓'이 돼 버렸다.

가령 유명 연예인의 열애설이 나왔을 때, 과거엔 소속사 측의 공식 답변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줬다면 요즘은 '-매체에 따르면'이라고 인용 보도를 먼저 작성하고, 후에 소속사 답변으로 따로 기사를 작성하는 게 대세가 됐다. 사건사고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더이상 기다리면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것.


하지만 이러한 속보 경쟁이 무한 우라까이 양성으로 기사 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자에 대한 평판에도 영향을 끼친다. 매체의 트래픽 장사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언론이라는 업계 전체를 봤을 때 '이게 맞는 흐름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다.


심지어 평가의 역전 현상도 발생한다. 요즘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 대한 공격도 쉽고,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들이 쉽게 딴지를 거는 분야는 '제대로 취재해서 썼냐'는 건데,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겐 'AI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기사를 그 정도 양으로 쓰면서 제대로 취재가 되냐"는 거다.


그들 역시 사실확인 따윈 없다. 그렇지만 실제로 별일이 없는데, 하루에 기사를 하나밖에 쓰지 않는 기자는 게으른 '월급루팡'이다.


이런 잘못된 통념 개념이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 일이 있었다. 나에게 그런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한 유명인에 대한 '갑질'을 주장했던 유튜버였다. 이 유튜버는 한 지상파 교양 PD 출신이었는데, 퇴사 이후 내놓은 다큐멘터리가 조작 의혹에 휩싸이면서 논란이 됐던 인물이었다. 이 유튜버는 이 유명인에 대한 비방, 의혹 제기를 꾸준히 해왔는데, 다른 콘텐츠에 비해 조회수가 10배 이상 많이 나왔다.


이 유명인은 과거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꼬투리를 잡혀 수개월째 욕을 먹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 유튜버의 주장 중 내가 수년째 듣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 유명인과 나는 친분이 전혀 없지만, '지금 욕을 먹으니 거짓 주장이라도 욕을 먹어도 된다'는 건 아닌거 같았다. 잘못한 부분은 잘못한 거고, 아닌 건 아닌 거 아닌가.


나는 곧바로 수명의 사람들에게 해당 내용을 문의하고, 바로 기사화했다. 일정을 소화하면서 틈틈이 관련자들과 모바일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 워딩을 모으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해당 기사 작성 자체에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유튜버는 나에게 '전화기에 유명인과 관련된 리스트가 따로 있는 거냐'고 의심했는데, 맞다. 2012년 8월 입사 이후 난 엔터만 출입했다. 10년 넘게 방송을 출입했는데 그 정도 인간관계도 없으면 문제 아닌가. 기사가 될만한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추리는데도 시간이 걸린다는데, 그 역시 억측이다. 들어야 할 답변이 있다면, 그 내용만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되고, 이미 라포가 쌓인 관계에서 시간은 그렇게 오래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유튜버는 자신의 채널에서 나와 유명인의 관계를 의심하며 "하루에 기사 하나 쓰는 숙련된 부장이 썼다면 이해할텐데, 이건 불가능하다"는 발언을 했다. "AI냐"고도 했다. 당직 때 쓴 기사 수까지 포함해서 "하루에 20건이 넘게 기사를 쓰는 기자"라고 '가짜기자'라는 뉘앙스로 저격했다.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다.


하지만 그런 발언 자체로는 요즘 표현대로 '긁히지' 않았다. 데스크에 해당 내용을 공유하며 보고하면서도 "제가 너무 열심히 해서 AI로 의심받는다"고 어깨를 으쓱할 정도였다. '이 사람은 정말 이쪽 업계를 모르는 구나' 확신도 들었다.


그런데 "정말 취재해서 쓴 게 맞냐"는 메일을 2명 정도에게 받았을 땐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내가 하는 일을 부정당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꼈던 거 같다. 이때는 너무 많이 긁혀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개인 SNS에 PD 발언과 메일을 캡처해 '그렇게 편협하게 사고하냐'는 글을 쓰기도 했다.


유튜버들에게 저격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뻑가 등 유명 렉카 유튜버가 내 실명을 거론해 문제삼기도 했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았다고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메일을 받은 적도 없고, 고소된 사건 역시 그 유튜버가 발악하며 항고까지 했지만, 고검에서도 '무혐의'가 나왔다.


심지어 나는 며칠 전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김수현 저격 기자회견에서도 그들과 대립하는 유튜버와 결탁했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그 대립하는 유튜버와 나는 한번도 개인적인 연락을 한 적이 없다. 그때도 그들의 주장이 맞냐는 메일이나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 말도 안되는 주장을 듣던 몇몇 지인에게 '뭐냐'고 연락이 온 정도였다. 그 기자회견에 참석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타 매체 선배와 눈이 마주쳤을 때에도 '내가 가세연이 꼽은 5명의 기자 중에 들었다'며 웃으며 넘겼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라까이도 AI도 마냥 피할수만은 없게 됐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사에도 저작권과 창작자의 가치와 노고가 있다는 사실이 쉽게 희석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를 덮어놓고 비난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다수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쉽게 복제되고, 가볍게 비난받는 현실에 관계자로서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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