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수경 Dec 17.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할 수 있는 사람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읽고



어쩌다보니 5년이나 정치외교학과에서 공부를 했다.

정치외교학과에 온 동기들은 나를 비롯해 대개 초등학생 때 외교관을 한 번쯤 꿈꿔봤던 아이들인데,
왜인지 입학하고나서 오히려 정치에 관심을 잃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우리끼리 우스개소리로 정치외면학과라고 할까.


정외과를 다니면 겪는 뻔한 레파토리도 있다.

택시 기사님이 무슨 과냐고 물으실 때 정치외교학과라고 사실대로 말하는 건 금기다. (꿀팁: 물리학과, 화학과 추천)

대부분 현 시국에 대한 입장과 생각을 여쭤보셔서 상당히 곤란해진다.

게다가 입학 직후였던 1학년 때부터 줄곧 들었던 어르신들의 덕담은 정치 할거냐, 국회의원 나가면 한 표 뽑아주겠다, 는 투가 대부분이었다.



출처: 구글. 프린트해서 한 장 갖고 다닐 걸


내가 어느 날 되고 싶다고 선출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정치외교학과에서는 이론적인 학문을 배운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귀찮아서 억지웃음으로 넘기곤 했다.

지난 학부 시절을 돌아봤을 때,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오히려 점점 정치적 냉소주의에 가까워져 왔다.

먼 미래라고 생각해도 정치에 발을 담그는 건 엄두가 안 나는데 들리는 정치권의 소식은 대부분 실망스럽고, 내가 좋아라하는 정치사상과의 괴리도 너무나 커서 그랬던 것 같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오신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성인이 되고 투표를 한 건 본인이 40이 넘은 후 아이의 숙제를 위해 방문해서 겸사겸사한 게 처음이라고 하셨다.

필자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심층적으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그 긴 시간동안에도 투표를 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그 말씀이 왠지 계속 기억을 떠돌았다.

그리고 사실 70% 정도는 공감했다. 의무감에 투표를 빠지지 않고 하지만, 누가 정치를 하든 나를 비롯한 국민들이 정치에 만족하는 날은 오지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지만 동시에 만족의 게이지가 100퍼센트 채워지길 바라는 것도 어불성설인 것 같고.


(그나저나 정치학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전공 관련된 글을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마 이 포스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기는 하다. )


그래서 정치외교학과 졸업을 앞두고, 정치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하려 한다. 윤리 어쩌고 하는 말들이 나오는데, 복잡하다면 넘기고 마지막으로 내려가도 된다.


후마니타스에서 엮은 책을 읽었다. 출판사마다 제목이 좀 다른 듯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그냥저냥 시간을 죽이면서 전공 학점을 채우고 있었던 나를 강렬하게 일깨운 책이다.

이 책은 사실 막스 베버가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전후 혼란스러운 독일의 상황 속 막스 베버의 통찰력과 지침이 담겨있다.

또, 정치 전반보다는 정치인 개인에 대한 방법론이 담겨있는 듯 하다.

Politik als Beruf. Beruf(소명)는 단순히 직업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저자 막스 베버의 맥락에 따르면 칼뱅주의적 의미로 하나님의 부름, 명령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정치인은 외부적인 보상이나 제재가 없더라도 스스로의 내면적 믿음, 즉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소명 의식은 두 가지의 도덕성인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념 윤리는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로, 책임 윤리는 어떻게 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가?의 물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신념 윤리는 행위의 결과와 무관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고, 책임 윤리는 바라는 목표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판단력이다.

언뜻 이율배반적인 구조같지만, 베버는 이 두 개의 양립 불가능한 명제가 정치 행위의 본질적 측면이라고 본다.

​일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요약해서 말하자면, 세상의 비합리성을 견디는 신념 윤리와, 이 순수한 신념에서 나오는 행위의 결과가 나쁘다 하더라도 책임을 타인의 어리석음, 혹은 창조신에게 돌리지 않고 내가 책임지는 책임 윤리 모두가 결합되어야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질 수 있는 인간 존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출처: 고대신문


베버의 정치에 대한 생각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어쩌면 조금은 비관적이어서 그런 것도 있다. 다른 정치철학자들도 좋아하지만...꿈 같은 소리라서 와 닿지 않을 때도 많다.

반면 베버는 정치와 갈등을 동일시해서, 국내와 국제를 가리지 않고 정치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정당성이 있는)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 또는 타인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하는 사람은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정치를 하는 것은 물리적 폭력이라는 악마와 거래하는 것이니까, 선 구현, 진리 실현과 같은 정치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는 게 베버가 독일 패전 이후 했던 이 강연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다.


또, 정치인에게는 정치 행위를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인 열정이 필요한데, 특이한 점은 '차가운 열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내용 없는 흥분을 배척하는 이 차가운 열정은  정치적 신념이나 목적을 추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천하고 실현하는 행위와 그 결과를 포함한다.

수업 내용을 참고하자면, 정치인은 이성을 통해 내가 아무리 굳건한 신념이 있더라도 전부 맞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실천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와도 책임지는 것, 이것이 베버가 말하는 정치의 전부이다. 이 이상을 정치가 해낼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출처: 경향신문



어쩌면 나는 정치가 고귀한 가치와 이상을 실현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민주주의에서도 어디까지나 인민은 정치 엘리트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고 인민은 엘리트를 선출하는, 수동적 역할 이상을 갖지 못한다. '환상 없는 성숙'은 이렇게나 차갑다.

앞서 언급한 서울대 교수님은 이 수동적 역할을 하기 싫어서 현실정치에 무관심하신 걸까?


베버는 아주 냉담하게 정치에 대한 베일을 걷어냈지만, 어떻게 보면 이 책을 읽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어떤 이상적인 것을 실현해주길 바랄 수는 없으니까, 내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이 그들이 내세운 방향에 맞게 책임을 잘 지는지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관에 빠지지는 않을 수 있을 듯도 하다.



솔직히 나 같은 소시민이 아니라 실제 정치인들이 읽어야 할 책 같기는 한데,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정치에 대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혼자만의 생각에 휩싸여 나약한 나는 누가 시켜줘도 절대 정치를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 정치인들은 신념 책임 윤리와 이걸 조화시키는 능력이 얼마나 좋은 지, 그리고 내가 다시 정치를 마주할 때가 올 지.

국민들이 한국 정치에 품고 있는 불만들이 전부 한국이라서, 헬조선이라서 갖고 있는 문제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라는 속성에서 파생되는 보편적인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만 자꾸 보여서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된다.


정치외교학과임에도 속 시끄럽다며 정치 면 기사는 전혀 읽지도 않고, 정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 없는 나도 다시 정치를 애써 외면하지 않는 때가 올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불신과 우려를 불식시켜 줄 어떤 계기가 있기를 항상 조금은 바라고 있으니, 언제라도 직업으로서 정치인이라는 허영심에 압도되지 않는 행태를 발견하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소명이라는 건 만만한 게 아니라는 데서 또 마음이 여러 갈래가 된다. 환상 없이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마음 속의 불꽃을 잃지 않는 건 정치가 아니라도 아주 어려운 일처럼 보여서, 나에게도 소명이라는 게 있을지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은 소명이 아닌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하려 한다. 세상이 참 가혹하다는 생각을 하며 자꾸만 주저 앉고 싶을 때 들어서 그런지 앞 구절이 참 많이 공감됐다.

정치가 아니더라도, 각자 자신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