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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하 Jan 28. 2019

아주 독립적인 여자의 명절 계획

야! 너네 조상 차례 지내는데 네가 전 부치는 건 당연한 거지! 지금 내가 왜 거기 가서 전 부처야 되냐고 묻고 있는데 왜 네가 전 부치는 얘기를 해!


 부산역 한가운데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남편의 누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월차까지 쓰고 전 날 부산에 내려갔다가 식이 끝난 후에 저녁 가족행사까지 동원돼서 소주를 한참 마시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명절 일주일 전에 이 큰 행사를 치렀으니 시부모님들을 이번 설에 만나지 않게 됐는데 대신 남편의 큰집에 설 하루 전부터 가서 음식을 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차례도 지내야 되는데 남편의 큰집과 우리 집은 둘 다 서울이니까 잠은 집에 가서 잘 수 있게 해 줄 테니 고맙게 생각하란 식의 말도 들었다. 고압적으로 내게 명령하는 남편의 큰어머니께 모멸감을 느끼며 용기를 내서 고개를 분명하게 저었는데 그냥 거기 모두가 설에 보자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우리 집은 명절이고 뭐고 감히 사위를 오라 가라 할 생각도 못 하는데 남편의 집은 친가 외가 가릴 것도 없이 그냥 나의 참석을 상정하고 스케줄을 짜고 있었다. 내가 용기 내서 싫다 했는데도 무시하니까 말 다 했지. 뭐? 잠은 집에 가서 잘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이고 고맙기도 하셔라.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왜 나만 너희 큰집까지 가서 전 부쳐야 되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한다는 소리가 “나도 전 부쳐.”였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무슨 뜻이지? 너도 우리 엄마한테 가서 전을 부치겠다고? 나는 안 갈 건데 너 혼자 간다고? 아니, 그런 뜻일 리가 없지. 그러니까 너 지금, 너희 집 조상 모시려고 네가 전 부치는 걸 나한테 생색낸 거니? 그런 거니? 아이고, <며느라기>에 나오는 무구영이 내 남편이었네. 남의 집 딸이 자기 집 전 부치는 데 동원되는 건 당연하고 ‘나도 도우니 당당하다.’는 남자가 내 남편이었네. 아이고 이걸 어쩜 좋아, 내 인생 어쩜 좋아.


 우리는 결혼 전부터 명절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나누었는지 모른다. 그는 내가 얼마나 명절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나는 우리나라의 명절문화가 얼마나 비 상식적이고 여성들에게 폭력적인지, 그래서 앞으로 나와 함께 명절을 보낼 거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도 없이 말해왔다. 그래서 이번 설은 한 번 시댁에 방문을 하고 다음 추석은 각자 여행을 가는 걸로 어른들의 합의까지 받아 놓았다. 그리고 먼 미래에는 명절의 의무가 완전히 없어지기를 기대하며 함께 명절 출구전략을 짜는 중이었다. 그런데 큰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그는 당연히 나와 큰집에 가서 전을 부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봐, 그 집은 애초에 우리 계획에 없었어. 내가 왜 거길 가야 해? 그 사람들이 왜 나를 찾아? 나는 며느리도 아니고 조카며느리인데? 요즘 누가 시가 큰집 가서 잠까지 자면서 전을 부쳐? 그런 건 우리 엄마 때도 안 했어. 저분들이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부르는 것도 아니잖아. 내 이름은 아신대? 아니 그게 궁금하기나 하시대? 내가 너랑 결혼했다는 것만으로도 막 아무나 오라 가라 해도 되는 그런 사람이 됐네? 내가 무슨 공공재야? 심지어 그분들은 내 노동력이 필요한 것조차 아니야. 차라리 내가 전 부치기 달인이라 초대된 거라면 가서 그날 하루 실력을 맘껏 뽐내고 오기라도 하겠어. 그분들은 그냥 나를 불러다가 아무거나 대충 시키면서 가부장제의 질서를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런 의도들은 아니셔. 그냥 너를 가족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지.
아, 그래? 여자들만 전 부치고 남자들은 티브이 보는 게 가족이야? 원치 않는 사람까지 억지로 집합시키는 게 가족이야? 그리고 다들 까먹었나 본데 나는 내 가족 따로 있거든?


 그는 우리의 명절 출구전략을 자연스럽게 안착시키기 위해 이번 설은 가족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싶다고 했다. 그래, 이성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엔 나의 동의와 도움과 희생이 필요한 거잖아? 그러니까 조금은 나에게 미안하거나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그는 출구전략이 나를 위한 건데 뭘 그렇게 미안해해야 하냐고 했다. 우리가 앞으로 명절마다 찾아뵙진 않더라도 그의 친척들과 좋은 관계로 남고 싶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글쎄, 어디 엄밀히 한 번 따져볼까. 출구전략이 성공만 한다면 경조사 이외엔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인데 그 관계가 내게 그렇게 중요할까? 내가 남의 집 부엌 구석에서 모멸감을 느끼고 자아를 상실해도 괜찮을 정도로 중요할까? 이틀 동안 나를 권력의 맨 밑에 깔아놓고 자기들끼리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행복해보려는 사람들이 내게 중요할까? 나는 네가 내 친척들에게 관심 없는 것보다도 더 관심 없어. 그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 너겠지. 그래서 너는 나의 희생이 필요한 거고. 나를 위하는 척하면 안 되지.


 나는 네가 마음이 좀 아프더라도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집이 너를 어려워하는 만큼의 반의반도 안 되는 만큼만 너희 집은 나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그 옆에서 너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눈곱만큼도 없이 순간의 분란만을 모면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리고 네가 항상 말하는 ‘우리는 한 팀이어야 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친지로부터 모멸감을 느낄 때 옆에서 가만히만 있으면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너의 일가친척에게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는 오로지 너를 위한 것이며 너는 그걸 가족이란 이름으로 퉁치려 하지 말고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을. 이런 것부터 하나씩 알려줘야 함에 다시 한번 스스로부터 모멸감을 느끼며 비겁한 겁쟁이의 넋두리를 마친다.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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