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가 멀고, 마음이 멀어집니다

'핸드폰'과 이어폰'이 싫습니다

by 날개 달 천사

집에 남편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방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는 겁니다. 퇴근길에 가방 속 핸드폰은 쉼 없이 라디오 채널을 송출하고 있거든요. 남편은 목에 두른 이어폰을 통해 듣는 방송이 퇴근길의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귀가 후 꺼낸 핸드폰은 잠들 때까지 애인처럼 대합니다. 밥 먹을 때도, 설거지할 때도. 심지어 씻으러 들어가면서도 소지를 해요. 잠자리에 들면서도 폰은 신체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동행을 합니다.



남편을 보면서 ‘정말, 싫다! 밉다!’라는 감정이 용솟음칩니다.

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남편을 보면서 핸드폰이 미운 건지, 핸드폰 속 영상이 미운 건지, 아니면 그걸 끝까지 붙들고 있는 남편이 미운 건지 분간이 안 됩니다. 시청하느라 목걸이형 이어폰까지 두르고 있는 모습은 더 꼴불견입니다. 잘 때 이어폰과 핸드폰을 나란히 충전기에 꽂아 두는데, 얼마나 잘 챙기는지, 아내는 뒷전입니다.


내가 정말 싫은 게 뭘까 생각해 봤어요.

‘남편을 유혹하는 유튜브 채널일까, 아니면 갖가지 유혹 거리들을 보여 주는 저 기계 덩어리일까. 그것도 아니면 절제하지 못하고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50대 중반인 저 아저씨일까.?’

네, 핸드폰만 없었더라면 유튜브에 저렇게 열중하진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핸드폰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는데도 뭔가 찜찜함이 가시질 않아요.

핸드폰은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영상이 문제의 핵심인 거겠지요. 온갖 자극적인 요소로 눈길을 사로잡는 영상이 문제라고 생각하니 유튜브의 소음이 더 귀에 거슬립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건 컴퓨터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게임은 관심이 없습니다, 전혀요.

그렇다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남편의 행동을 내가 싫어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이 미칩니다.

그런데 되짚어 보니 최근에 폰과 유튜브에 더 몰입하게 된 까닭이, 남편의 친구가 선물로 보내 준 목걸이형 이어폰. 그게 결정타는 아닐까, 라는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그걸 목에 걸고 귀에 이어폰을 착용한 이후로 더 영상에 빠지게 되었거든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화장실로 챙겨서 가는 게 목걸이형 이어폰입니다. 운전할 때 이어폰이 없으면 불안해할 정도에요. 주행할 땐 영상을 볼 수 없으니, 남편은 이어폰을 끼고 폰에서 라디오 방송에 심취하며 주행합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싫던지요. 처음엔 조수석에서 책만 읽고 있는 나에게 소외감을 느껴 혼자 이어폰으로 방송을 듣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책을 덮고 이야기를 할라치면 대화가 운전에 방해가 된답니다. 어휴, 참. 어쩌라는 건지. 그래서 남편이 이어폰을 끼고서 폰과 함께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고, 저는 다시 책을 폅니다. 남편은 귀를 막고, 나는 입을 닫지요.



밀착형 이어폰과 핸드폰.

이 두 물건이 남편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어요. 대화도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공유할 거리가 사라지고 있어요. 이어폰을 끼지 않은 남편은 이제 상상이 안 됩니다.

이제 우리 부부의 풍경은 나란히 앉아서 각자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남편은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나는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봅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시간은 언제였는지.

오늘도 남편은 내 목소리, 내 얼굴보다 핸드폰을 더 바라보고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이어폰도 자기 직전까지 꼭 착용하고요.


내가 싫어하는 물건, 핸드폰과 이어폰.

나의 자리를 대신해 버린 저것들에 질투를 느끼며, 나는 오늘도 말없이 조용히 잠자리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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