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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삭이는 잎싹 Aug 12. 2024

마당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더이상 미래의 나에게 맡기지 않도록

 초등학생 시절 우리 세 남매는 냉장고에 붙여놓은 종이에 쓰인 자기 이름  줄에 맞춰 그려진 칸에 동그라미 치기가 주된 할 일이었다. 하루 3번 양치하기, 책 1권 읽기, 숙제 다 하기, 기도하기.. 등을 하면 각자의 양심 아래 동그라미, 엑스를 친다. 그중 가장 스스로 즐겨 할 수 있었던 것은 책 1권 읽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다. 학교 권장 도서로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살면서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일 것 같다. 자기가 살던 세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잎싹의 생각이 나를 가슴 설레게 했다. 더 넓고 나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당시 나의 생각이 막연한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었던 것 같다.


책이란 나에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작은 집, 어울리는 친구들, 선생님, 가족 말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 창구였다. 오로지 글자를 통해 그 글을 쓴 사람이 겪은 경험, 사는 세상을 체험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경험인가.. 마음에 닿는 문장을 읽고 나서 눈을 감으면 그가 겪은 것들이 오감으로 느껴졌다. 다섯 식구가 복작거리는 작은 집에서 그렇게 잠시 다녀오는 여행은 어서 어른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이런 멋진 사람이 되겠지?


성인이 된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여전히 나는 그런 어른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멋진 어른이 될 나를 상상하며 글쓰기를 즐겨하던 나는 사라지고 스스로 마당으로 돌아가길 자초하고 있다. 내 안의 초록을 발견하기 위해 다시 글을 쓰려고 한다. 퇴고 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잘 쓰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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