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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i Jan 17. 2023

엘에이 한국인 울린 매운맛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다. 고통과 열감으로 느끼는 통각이다.


매운 음식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16년쯤. 화끈하신 상무님과 점심을 먹었던 날. 수타로 면을 치는 일식 우동집에 갔는데 상무님이 어휴, 하시며 말씀하시는 거다. "나는 매운 거 없으면 밥을 못 먹어. 여기 김치 없어요?" 잠시 뒤 일본식 종지에 잘게 썰린 김치가 담겨 나왔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와 닮은 음식을 좋아하는 걸까...?


2019년. 한국에 마라 열풍이 돌았다. 돌이켜보면 그땐 음식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게 매운맛이었다. 집값도, 비트코인도, 먹방도. 더 많이, 더 크게, 더 자극적으로 하려고 작정한 모습. 첫 이직 후 정신없던 내게도 마라는 필요했다. 텐션이 살짝 풀릴 때 정신 바싹 차리게 해 주는 데는 마라만한 게 없었으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매운맛을 찾았다. 마라샹궈를 먹으면 얼굴에 펀치를 한 대 맞을 수 있었다. 얼얼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박카스 5병 정도 마신 것처럼 피가 바로 돌았다.


그리고 오늘. 이젠 한국의 마라 열풍도 시들해졌고 나의 캡사이신 중독증세도 완만해졌지만. 요즘처럼 비가 내리고 축 쳐지면 누가 오장육부를 한 번 두들겨줘야 할 것만 같다. 마라가 필요한 시간. 술맛을 알고 더울 때 시원한 생맥주 생각이 나는 것처럼. 마라에 빠져보니 이렇게 가끔 마라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엘에이 사천음식(Sichuan food) 맛집을 찾는다. 마라샹궈, 마라탕 외에도 마라, 사천고추, 후추를 사용해서 사천지방 특유의 얼얼한 매운맛을 낸 각종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매운맛도 제대로인데 어느 정도냐면 남편은 다음 날 미팅이 있을 땐 무슨 일 생길까 봐 무섭다고 안 갈, 아니 못 갈 정도다.




MIAN (West Adams)

Location: 5263 W Adams Blvd, Los Angeles, CA 90016

Website: https://miantaste.com/


이번에 친구의 추천으로 다녀온 <MIAN>은 좀 색다른 사천음식점이었다. 일단 미쉘린에서 소개할 정도니까 맛은 보장. 그런데 다른 중국식당들처럼 다 쓰러져가는 느낌이 아니다. 맥주 펍 같은 분위기에 깔끔한 위생상태, 심지어 중국어를 못하는 백인 종업원까지. 조명은 어둑해서 건너편에 앉은 이를 멋있어 보이게 해 주고 메뉴판에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사천식 중국음식점' 보다는 '사천식 누들바'라고 부르고 싶은 곳이다.


그도 그럴 게 <MIAN>의 크리에이터 토니(Tony Xu)는 2013년 오픈한 사천음식점 <Chengdu Taste>로 이미 엘에이를 한 차례 휩쓴 스타셰프. <Chengdu Taste>가 전통을 중시하는 토니의 첫째 아들이라면 이번에 내가 방문한 <MIAN>은 조금 다른 길을 가보려는 토니의 둘째 아들인 셈이다. 오센틱함은 이미 잡은 자의 여유가 느껴진달까. 첫째와는 전통을 잡고 둘째랑은 엘에이를 잡으려는 것 같은...


그래서 <MIAN>엔 사천음식 입문자를 위한 배려가 이곳저곳 보인다. 일례로 매운 맛을 단계별로 해 놓은 것. 맵긴 맵다. 제대로 사천식 매운맛으로 때려준다. 하지만, 니가 준비된 단계에서 시도해봐. 거기다 혼밥을 곧잘 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일인 메뉴와 일인 인테리어도 눈에 띈다. 미국 중국식당에 최소 2명, best 4-6명은 가야 여러 접시를 나눠먹을 수 있다면, <MIAN>은 혼자서도 국수 한 그릇 뚝딱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에피타이저도 'Dumpling 6 pieces(작은 만두 6알)' 처럼 혼자 먹기 좋은 양. 거기다 일인석 카운터 좌석도 있다. 심심하지 않게 오픈 키친 바로 앞에 말이다.


프레젠테이션도 빼놓을 수 없다. 'Sichuan Hot & Sour Soup Noodles(사천식 맵고 신맛의 국수)' 위에 올라간 센스있는 계란프라이 처럼. 기름진 시뻘건 국물에 신선한 초록 야채와 막 튀긴 프라이가 척하고 올라간 모습이 없던 입맛도 불러온다. 쫀득하고 매끈한 국수도 하이라이트다. 후룩후룩 글라스 누들처럼 입술에 닿는 감촉이 좋다. 중국어로 면(mian)이라는 뜻의 상호에 끄덕이게 된다.



여담인데 <MIAN>을 다녀오고 <장홍> 생각이 났다. 용산 회사 근처에 장진우 씨가 하는 짬뽕집이었는데 정통 한국식 짬뽕은 아니었다. 일단 국수가 쌀국수였으니까. 더기다 <MIAN>처럼 분위기도 세련된게 튜닝이 된 짬뽕이었다. 그런데 매일 점심시간에 가면 직장인들이 해장하려고 줄을 섰고 나는 이상하게 이 짬뽕이 오리지널 짬뽕보다 자주 생각이 났다. <장홍>도 <MIAN>도 튜닝을 참 잘 한 중국식 면집이다. 요즘 튜닝을 잘 하는 음식점들을 다니며, 물론 전통을 지켜내는 것도 힘들지만 튜닝을 잘 하는것 또한 꽤나 섬세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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