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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어수인 Nov 09. 2021

믹스커피 마시려고 밥 먹는 엄마

엄마의 고된 인생을 달래준 믹스커피




  "나는 믹스커피 마시려고 아침밥 먹는다. 밥은 먹기 싫어도 믹스커피는 먹고 싶어."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주인공은 믹스커피이다. 달달한 맛은 엄마의 모든 시름과 화병을 녹여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긴 나도 카페라테를 마시려고 아침밥을 먹으니 엄마와 나는 꽤 닮았다.


  예전에 스타벅스에서 여고생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아이가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넣은 아이와 카페라테를 마시는 아이에게 외쳤다.

  "네들은 커피 맛을 몰라!"

  옆에서 라테를 마시던 나는 뜨끔했다. 커피 맛을 모르지만 커피 마시는 분위기를 사랑하던 나는 '커피를 다양하게 즐겨도 괜찮아. 기죽지 마.'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현재는 카페라테와 아메리카노를 적절히 즐기고 있다. 가끔씩 깔끔한 아메리카노도 마시게 된 건 내 커피 역사의 발전이다.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을 동경한다. 내가 갖지 못한 어른의 향기가 난다고 할까.


백신 접종 후에 엄마와 함께 간 부산 해운대




  커피 맛은 잘 모르지만 인생 맛을 진하게 아는 우리 엄마. 밥보다 믹스커피를 사랑한다니 믹스커피를 창조하신 분께 감사를 드려야 할 때이다. 엄마는 주말에 일하시는데 서울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근무하러 가신다. 다행인 건 퇴직까지 두 달만 버티면 된다는 것. 엄마의 고된 출근길에 달콤한 커피가 효자 역할을 해주겠지.


  평일에는 아픈 딸의 걷기운동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딸이 뇌출혈 후에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아빠의 가정폭력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했던 걸 지켜본 세월. 엄마는 교양 있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아빠를 만나서 젊은 시절, 중년에 고생을 많이 했다. 아빠가 처음부터 술에 손을 대고 감정조절을 못한 건 아니다. 우리 남매가 유년 시절일 때는 평범하게 행복했다.


  아빠의 바로 위에 있는 형이 백혈병으로 죽고, 큰형 보증을 잘못 서 주면서 집이 풍비박산이 났다. 그 와중에 둘째 큰아빠, 큰엄마는 집요하게 우리 부모님을 괴롭히고 할아버지를 외면했다. 아빠의 안정적인 직업을 인질로 삼아서 협박했던 큰엄마. 우리는 없는 형편에 친가쪽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야만 했다. 과거에 나는 심리상담을 받으며 '콩가루 집안'에서 엄마도 저희도 너무 고통받았어요. 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었다고 해서 아빠가 우리에게 한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엄마가 아빠를 용서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엄마는 시댁에 대한 화병을 앓고 있다. 시댁 때문에 아빠가 변했다고 여겨서 원망이 깊어진 게다. 긴 세월 시달리기도 했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모신 것을 끝으로 그들과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종지부를 찍어줘서 그나마 아빠를 용서하고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듯하다.


엄마의 사랑을 받는 믹스커피




  현재 엄마의 삶은 과거에 폭풍우 휘몰아치던 계절에 비하면 평화로워졌다. 엄마 평생 소원이 조용하고 평온하게 사는 것이었다. 아빠의 술주정이 심했던 다음 날에도 믹스커피는 엄마에게 하루를 버틸 힘을 주었겠지. 아빠가 과거의 일을 반성한 요즘에는 부부의 연을 생각하며 믹스커피를 마시겠지.


  엄마는 시댁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는 훈련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시댁 트라우마 자리에 믹스커피를 섞고 내가 예쁜 꽃씨를 심어줄게. 이젠 쓰러질 가능성이 희박해졌을 정도로 건강을 찾은 딸을 봐. 뇌출혈 직전에는 픽하면 쓰러지길 몇 차례였다. 나의 그런 경험들이 아빠를 반성하게 하고 우리집을 평온하게 만들었다면... 섬유근육통과 골다공증은 여전히 나를 지치게 만들겠지만 6년 전보다 훨씬 나아졌으니까 희망은 있다고 본다.


  지난주에 '신춘문예 도전' 글을 발행한 후에 작가님들의 좋은 기운을 받았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을 써서 초고를 완성했다. 등단할 확률은 적겠지만 퇴고를 즐겁게 할 예정이다. 소설을 쓰기 좋은 '나만의 시간'을 찾아냈다는 것에 행복하다. 앞으로 그 시간에 꾸준히 글을 쓰겠다. 언젠가 엄마께 믹스커피를 선물할 수 있는 날까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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