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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어수인 Nov 19. 2021

돼지국밥에 기대를 많이 하면 벌어지는 일

엄마의 명언, 기대치가 낮을수록 만족감이 높다네





  "엄마, 부산에는 돼지국밥이 유명하대!"

  10월에 부산 나들이를 가기 전부터 돼지국밥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60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어서 코로나 시대에 외출을 조심해 왔다. 부산에 갈 때마다 들리는 곳은 해운대이다. 나는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 내 온기로 추운 겨울 바다를 따뜻하게 데워줄 때, 내 고독함은 파도에 휩쓸려 간다. 겨울 바다는 다음으로 기약하고 가을 바다를 만나러 KTX에 올랐다.


  해운대가 우리 모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운대와 감천문화마을에 갈 계획이었지만, 지하철에 몸을 실은 순간 직감했다. 바다 구경만 하고 대전행 기차를 탈 거라는 걸. 대전 지하철보다 부산 지하철은 등받이가 딱딱해서 통증이 심해졌다. 최대한 여행 기분을 끌어올려서 해운대로 향했다. 4년 만에 본 바다 윤슬은 눈부시게 고왔다. 해운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보며 산책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먼 훗날 바다 근처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있지만 로망은 로망일 뿐. 8월에 아파트에 입주하면 완전히 대전에 정착하는 게 된다. 그동안은 은연중에 다른 지역에서 사는 걸 생각했었는데. 대신에 '제주 한 달 살기', '부산 한 달 살기', '속초 한 달 살기' 같은 여행을 해보고 싶다.



  점심을 먹으러 돼지국밥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산에서 유명한 음식이라길래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음식 맛은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그저 그런 맛이었다. 맛집을 잘 못 찾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맛집 찾아다니며 여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러다가 꿀맛인 음식점을 발견하면 행운이라고 웃는 편이고 보통인 식당에서는 '한 끼 잘 먹었어.'하고 대충 만족하는 타입.

 

  돼지국밥에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굉장히 맛있어서 마음의 허기까지도 뜨끈하게 채워주는 걸 기대했나 보다. 나름 그 지역의 유명한 걸 먹었는데 만족감을 채워주길 바랐을 수도. '돼지국밥엔 뭔가 특별한 맛이 있다.'라는 문장을 새기고 대전으로 돌아오고 싶었나 보다.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특별한 맛이 아닌 평범한 국밥이었다. 엄마가 주문한 순대국밥이 훨씬 맛있었다. 엄마도 돼지국밥을 한 숟갈 드셔 보시더니 한마디 하셨다. '그냥 먹을 만하네.'


  "너무 기대치가 높으면 만족감이 낮은 법이야."

  엄마의 말씀은 명언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 <만추>를 보고 감동받았던 날, 기대하지 않아서 더 인상 깊게 본 드라마 <나르코스>. 반면에 기대하고 봤다가 실망했던 천만 관객 작품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인간관계에 별로 기대가 없는 사람이다. 기대치가 낮을수록 만족도는 높아진다. 물론 내가 처음부터 이런 유형은 아니었다. 20대 때 나는 인간관계에 기대를 품고 관계를 맺었다. 고시생일 때 고립된 공간에서 공부에 몰두할 때, 친구들이 연락이 뜸한 게 서운했다. 친구들에게 위로받고 싶었고 응원받고 싶었다. 그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남동생이 슬그머니 권한 노래가 '다이나믹 듀오'의 1집부터 4집까지의 랩이었다. 다이나믹 듀오 역시 기대를 안 하고 들었는데 내 심장에 때려 박히는 가사에 위로받았다. 돼지국밥은 잘못이 없었다. 너무 큰 기대를 품었던 내 마음이 문제였다. 실제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대국밥은 맛있게 와닿았으니.


2021년 10월에 먹은 부산 돼지국밥




  돼지국밥으로 허기를 채운 뒤에 엄마와 해안가를 거닐었다. 20대 때보다 30대가 되니 엄마와 진정한 친구가 되고 있다. 온갖 풍파를 이겨낸 에 평화를 찾은 요즘, 서로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프로혼밥러> 글에도 썼듯이 본래 외로움을 덜 타고 혼밥, 혼행, 혼콘의 경지에 올라봤던 사람이다. 코로나 블루도 흥겨운 스페인어 음악을 들으며 잘 치유했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최근에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타다니. 신선한 충격이다. 부산 바다를 바라보며 엄마는 말했다.


  "내년에 네 아파트에서 혼자 살게 되면 글쓰기 모임을 주최해서 글친구를 사귀어 보면 어떨까."

  "좋은 아이디어네! 글쓰기를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에게 다과를 대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네 또래 사람들이 올 수도 있고 언니뻘 되는 사람들도 모일 수도 있고. 5명은 모이지 않을까. 너도 글쓰는 걸 좋아하니까."

  "각자 글쓴 걸 낭독하면 재밌겠다."


  독립하는 8월을 기대하지만 기대를 적당히 하련다. 자취 경험도 몇 번 있지만, 지난 몇 년은 뇌출혈 후에 엄마의 도움으로 편하게 살았었다. 독립해서 혼자 산다는 게 꿈결처럼 쉬운 일만은 아닐 게다. 엄마의 레시피를 노트에 적어서 요리도 해야 하고, 엄마와 동네 산책하던 즐거움을 접어두고 혼자 헬스장에 가야 한다. 8월이면 너무 먼 이야기지만 내게는 그만큼 독립이 꿈이고 희망이기에 청사진을 요리조리 그려본다. 돼지국밥집에서 엄마가 해준 말처럼 적절한 기대감을 품고 미래를 그려나가고 현재를 걸어가야겠다. 나의 현재는? 글쓰고 퇴고하며 국어 공부하는 일. 그리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나무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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