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후 글쓰기
살아가다보면 수없이 많은 길을 가게 된다. 어떤 날은 평범하고 조용하게, 또 어떤 날은 예기치 못한 굽이 앞에서 머뭇거리기도 한다. 성공의 순간은 빛나지만, 실패의 시간은 더없이 고요해지기도 한다.
기쁨도 있었고 후회도 있었다. 선택의 순간이 있었고, 포기의 결정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면 문득 스치는 물음이 있다. '이 모든 경험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라면, 그 시간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일까?'
삶은 그 질문 앞에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네가 걸어온 그 길이, 지금 어디쯤 있는 누군가에게 처음 가보려고 하는 길의 네비게이션이 될 수 있어.'
무엇인가 누구에겐가 줄 게 있다는 사실은 인생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방식이며, 인간이 인간에게 건네는 꼭 필요한 선물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처음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처음 부모가 되어 불안한 밤을 견디는 사람들, 처음 퇴사를 고민하며 낯선 내일을 마주하기가 두려운 사람들, 처음 실패를 겪으며 삶 전체의 의미를 되묻는 사람들, 처음 맛보는 쓴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포장된 말보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누군가가 이미 겪어낸 이야기가 더 깊이 닿는다. 누군가의 가공되지 않은 경험, 흔들림이 묻어난 고백, 망설임이 배어 있는 문장이 울림 있는 위로가 된다. 그런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리고, 다시 걸을 수 있는 작은 도닥거림이 된다.
저자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썼더니, 많은 분들이 ‘저도 그랬어요’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때 알았어요. 내가 지나온 시간이, 누군가에게 길을 내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요.”
사람은 때로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놓친다.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드는 동안,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한 가치를 미처 헤아려보려 하지 않는다.
진심 어린 진솔한 경험은 언젠가 누군가의 막막한 벽 앞에서 희미한 등불로 다가선다. 경험이란 그 자체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음 삶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다리다.
지나온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울음으로 가득했던 자리, 버텨내야만 했던 날들, 그 모든 순간은 지금도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삶의 네비게이션으로 남는다. 먼저 걸은 사람의 발자국은, 나중에 오는 사람에게 길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삶은 그렇게, 조용한 흔적을 통해 서로에게 방향을 알려준다. 그 발자국은 어느 날 누군가의 눈길을 멈추게 만들고, ‘나도 이 길을 갈 수 있다’는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는다.
겪었기에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특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남들과 비슷하지만 더 오래 고민했고, 더 깊이 감당했던 주제가 진솔한 울림을 준다. ‘언젠가 꼭 나누고 싶다’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기억을 글씨로 그려보자.
한걸음 더 나아가 경험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의 의미를 함께 적자.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이 이야기를 통해 너에게 어떤 위로나 통찰을 건넬 수 있는가.” 한 사람의 깨달음은 다른 누군가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어 준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함께 써보자. “그 시절 나는 그 상황을 이렇게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느낀다.” 이 구조는 경험과 그에 대한 성찰, 나아가 성장이라는 글쓰기의 틀이 되어준다.
우리가 살아낸 시간은 글로 쓸 가치가 충분하다. 그 글은 누군가에게는 이정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된다.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조용히 쌓여 있는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한 줄 한 줄 꺼내어 종이 위에 남겨보자.
말로, 글로, 문장으로 기록된 삶의 흔적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짜 인생 안내서다. 그 안내서는 내가 최선을 다해 선택해서 살아왔다는 발품의 증거이며,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보다 필요한 '방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