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는 어디서 왔을까요?

베개 위 물음표들

by 물음표

작년 초 할머니는 작고했다. 그 기세 당당했던 몸체가 어이없게도 한숨의 재가 되어버리는 그 과정을 바라보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중 누구는 끅끅대며 울음을 참았고, 또 다른 누구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대성통곡을 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각막 위로 얇은 막 하나를 덧댄 것처럼 어딘가 묘하게 망연 해져버린 아빠의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네 아빠랑 성격이 판박이다.”

어릴 때부터 항상 들었던 말.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무심한 얼굴로 무장해 버린 채 쉽사리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이유 모를 불안함에 쉽게 사로잡히지만 그것을 표현하기보다는 삼키는 게 익숙한 사람. 그게 바로 나의 아빠이자 곧 나였다. 필연적으로 우리 둘은 닮아 있어서인지 나는 그의 무심한 표정 밑에 깔린 상처와 외로움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먼저 맡았다. 그 냄새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밖에 없었는지 고인이 된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건실하게 회사생활을 하는 직장인이었던 나의 아빠는 내가 7살이 되던 해, 잘 다니던 대기업을 관두고 음식점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하는 건 무엇이든 걱정의 말부터 던지던 엄마는 그날은 뭐에 씌었는지 너무나 어이없게 그 선언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의 두 부모는 아침보다 더 차가운 새벽에 나가 저녁보다 더 까마득한 밤에 들어오는 일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 집에는 아빠의 엄마인 친할머니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현관문 바로 앞에 위치한 내 방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작은 몸을 뉘일 수 있는 매트 하나와 내 낙서가 가득한 책상뿐만이 있던 나의 공간에 할머니의 서랍장과 라디오 등 그녀의 온갖 물건들이 하나 둘 자리 잡았다. 내리 있던 사람의 짐보다 새로이 온 사람의 짐이 방안에 가득 채워져 가는 걸 그렇게 망연히 바라만 보았다. 처음에는 할머니와의 합방이 달갑지 않았다. 그녀가 본인들 며느리의 머리 채를 잡고 악을 쓰던 모습을 봐서일까. 어린 나를 탐탁지 않게 보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마다 내 머리채를 그녀에게 내어주는 상상을 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부모가 부재했던 그 시간의 일부를 그녀가 듬성듬성 메워줬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할머니가 거실 소파에 누워있었고, 가끔 나를 동네 산에 데리고 올라가 다른 할머니들 앞에서 재롱을 떨게 했다. 마냥 달갑지는 않았으나 그녀가 은근히 나에게 주던 힐난의 눈빛이 두려워 해맑은 아이인 척 단상에 올라가 춤을 췄고, 그게 나에게 묘한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쟤가 티브이를 하루 종일 봐서 못살겠어. 내가 보지도 못하게 해”

“저 계집애가 말을 얼마나 안 듣는지 힘들어 죽겠어. 진짜.”

티브이를 하루 종일 본 건 내가 아니라 그녀였으며, 아이의 작은 실수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그녀였다. 약속된 시간에 집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크게 혼난 이후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도 동그란 시계를 습관적으로 확인했고, 학교 운동장에서 놀 때도 항상 늦으면 안 된다는 불안함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나의 흉을 듣기 싫어 더 말 잘 듣는 손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헤아려 보려고 해도 그녀가 나를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지 나 때문에 뭐가 그렇게 힘든 건지 미숙한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빠는 가끔 가게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나에 대한 은근한 험담을 늘어놓았고, 아빠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듣고 만 있었다.

“아빠 나 근데 진짜 티브이 많이 안 봤어. 할머니가 보고 계셨어.”

일상이 되어가는 험담 속에서 그가 한 번은 할머니 앞에 내 편을 들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억울함을 풀고 싶은 갑갑한 마음에 삼키지 않고 내 마음을 뱉어 냈던 그 순간.

“할머니가 눈 아프신 데 어떻게 하루종일 티브이를 보겠어. 할머니 보고 싶은 거 보게 해 드려”

그 순간에도 아빠는 할머니의 손을 들어주었다. 나는 그렇게 해명하지 못한 억울함을 체하지 않기 위해 혼자 몰래 꼭꼭 삼켜내며 철이 들어버렸다.


어떤 소명의식이 아닌 단순한 회사의 도피처로 선택한 아빠의 음식점은 잘 될 리 없었다. 아빠는 다시 이전 회사로 돌아갔고 할머니는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긴장 상태로 살던 나는 숨이 트였다. 사람의 말과 표정 뒤에 숨겨진 이면들을 슬근슬근 알게 되면서 할머니가 우리 집 서랍을 뒤지는 게 불편해졌고, 그녀의 입에서 내 험담을 듣는 게 견딜 수 없어졌기 때문일까. 우리 집은 망했어도 할머니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묘한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갈등의 씨앗이었다. 아빠가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보란 듯이 잘 사는 아빠의 형제들에게는 턱턱 돈을 내어줬다.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우리 집에 있던 기물들을 탐냈고 명절에는 손녀인 내가 입고 있던 카디건까지 달라며 억지를 썼다. 다양한 방법으로 부부 아니 가족을 금 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정말 지치지도 않고 이간질을 했다. 어린 나도 보이는 할머니의 어설픈 악행을 아빠는 항상 그렇게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고, 항상 우리를 외롭게 하는 길을 택했다.


엄마는 아빠가 항상 사랑을 못 받은 아들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건 암묵적으로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던 그 눈으로 아빠를 쳐다봤다. 그 눈에 깔린 비틀어진 심사를 내가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4형제 중 아빠만 대학에 보내지 않았다. 아빠가 원하지 않았다고 덧붙이지만 무엇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아빠네 집은 그 당시 꽤 살았는데, 형들이 책상 앞에서 공부하고 재수하는 동안 그는 중학생 때부터 신문배달을 했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에 입대를 했다. 제대 후에는 돈을 벌기 위해 멀디 먼 리비아로 갔다. 20대 중반의 청년은 리비아에서 100여 명의 인부들을 관리했는데, 고생을 너무 해서 손톱, 발톱이 몽땅 다 빠져버린 적도, 인부 한 명이 총으로 자살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적도 있었다. 사랑받아 보지 못한 그는 홀로 모진 시간들을 견뎌냈다. 할머니는 그가 부재한 집에서 첫 째 아들은 맏이라 돈을 쥐어 쥐고 둘째 아들은 공부를 잘하니까 집사는 데 돈을 보태주고 막내아들은 제 앞가림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돈을 줬다. 돌아온 아빠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하나였다. “나 필요한 거 있으니까 네가 좀 사 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명절이 매년 찾아왔다. 아빠는 본인의 가족들과 함께 있음에도 어딘가 얼굴이 편치 않았다. 저녁에는 삼삼오오 항상 고스톱을 치거나 노래방에 갔는데, 아빠는 형제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홀로 남아 방 한편에서 불을 끄고 눈을 꼭 감은 뒤 초저녁에 잠에 들었다. 난 그때마다 그의 얼굴 위로 뿌리 없는 자의 외로움을 느꼈다. 그것은 외갓집에 갈 때마다 느끼는 안정감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사랑받기 위해 아빠는 지독하게 노력했다. 할머니의 빨리 들어오라는 한마디에 본인의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놔두고 그녀에게 달려가기 일쑤였다. 그녀가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것들을 바치며 밑 빠진 그녀의 물욕에 계속 물을 퍼부었다. 회사를 관두고 음식점이 망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사람이 어째서인지 그녀의 일이라면 스스럼없이 눈물을 보이는.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빠가 나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은 채 나는 어른이 되었다. 할머니와의 대결에서 나는 항상 패했고, 그 패배에서 오는 배신감에 아빠가 미웠던 적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미워도 나는 그를 맘 놓고 미워하거나 혼자 외롭게 남겨두는 쪽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건 도저히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외로움을 표현하는 순간마다 얼마나 좌절했을지, 그 좌절 속에서 얼마나 많은 슬픔을 얼굴 밑에 숨겨 왔을지를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약해졌다. 그 칼칼하고 쌩쌩했던 기상은 사라지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나풀댔다. 본인의 기운이 부족해지니 맨날 하던 이간질도 하지 못했다. 아빠의 형제들은 예상했듯이 할머니가 쇄약해지고 나서 그녀의 차고 넘치는 돈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막상 그녀가 아플 때 돌 볼 생각을 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이 주름진 늙은 나의 아빠만이 아픈 할머니의 휠체어를 끌고 늘어진 그녀를 엎고 병원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약을 짓고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아픈 할머니를 외면하는 형제들에게 아빠는 거듭 실망했고 갈등은 계속되었다. 늙은 아들의 모든 행동들은 엄마에게 받지 못한 애정에 대한 발악처럼 보였다. 크면서 아빠의 자는 얼굴을 볼 때마다 왜 인지 모르게 그가 살아있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고는 했다. 그 손가락에 옅은 숨이 닿으면 내 안의 깊은숨을 뱉은 후에 이불을 목까지 올려주었다. 곤히 자던 그 얼굴과 평온한 숨결에 안도했던 내 여러 밤들 속에서 그가 가족들에게 뿌리내리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생각했다. 음식점이 망하고 괜찮냐는 한마디 연락 없이 외면하던 형제들, 망해버린 우리 집을 알면서 명절음식해야 하니까 돈 붙이라던 큰 형, 기껏 회사에 취직시켜줬더니 음주운전으로 잘린 후에 모든 실패를 아빠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는 동생.


아빠가 나에게 행했던 미숙한 행동들. 매 순간 기어코 딸인 나의 편이 아니라 엄마인 할머니 편에 섰던 것. 받지 못한 사랑에 외로워하느라 나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던 것. 어린 나를 불안하게 하고 걱정하게 만든 것. 이 모든 것들을 용서하기 위해 애써왔다. 나는 아빠를 품으려 노력하며 어른이 되었다.


장례절차를 모두 끝내고 할아버지 옆에 할머니를 묻은 그날 그녀의 숨겨왔던 딸이 등장했다. 그녀는 끝까지 한 건을 해주고 떠났다. 막내는 내 피가 무슨 피냐며 형들에게 따졌고 추모의 자리는 그야말로 서로를 원망하고 비난하는 성토의 장이 되어버렸다. 그 순간에 나는 기이할 정도로 초연했다.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20년 전부터 나는 그녀의 끝이 이런 결말이라 예측했던 걸까.

“너네가 인간이야!”

그날 아빠는 허망한 얼굴로 외쳤다. 그건 사는 동안 외로웠던 한 인간의 발악 같았다. 그렇게 그는 한참 동안 형제들에게 인간도 아니라면서 모질게 악을 쓰고 나서 산소를 벗어났다.

그런 그를 쫓아가 그의 등을 쓸었다.

“아빠 잘했어. 진짜 잘했어.”

그 여자가 살아생전 아빠에게 해주지 않았을 칭찬을 내가 대신 건넸다.

어른이 된 내가 아이일 수밖에 없었던 아빠를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