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띠크 로스멘
2024년의 시작은 뭔가 특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발견한 사진 폴더 속에서 무척이나 기억나는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짧은 글을 연속적으로 써보기로 했다. 주제는 여행지에서 머문 숙소 그리고 그곳에서의 에피소드들, 별 다른 에피소드가 없다면 숙소 소개 정도밖에 되지 않겠지만...
2010년의 발리 그리고 현지 친구가 소개를 해주어 찾게 된 뿌리 다마이(Puri Damai). 대단한 숙소는 아니다. 이름처럼 부띠끄 로스멘. 부띠크 빌라, 부띠끄 호텔은 익숙했지만 부띠끄 로스멘이라... 발리에서 로스멘(Losmen) 혹은 인(Inn)이라고 하면, 이는 곧 저렴한 숙소를 의미한다. 저렴한 로스멘과 고급스러운 부띠끄의 조합이라. 당시의 로스멘은 1박 10불 이내. 그 당시 환율이 8,600~9500 사이를 오갔으니 대략 1박에 1만 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대부분 간단하지만 조식은 포함이었고 에어컨 대신 천장에 달린 팬이 전부였던 수준이 이었다. 일 년 이상 머물며 시간을 보내던 터라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음식이다. 매일매일 사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라면을 끓여 먹거나 햇반 등을 데울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뿌리 다마이, 이곳의 매력은 작은 주방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픈 초기에는 12개의 룸 중 8개만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를 운 좋게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이 뿌리 다마이와의 첫 만남으로 기억한다.
뿌리 다마이는 발리 여행을 다녀왔다면 들어봤을 마데스 와룽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운영하는 숙소다. 조식은 물론 맛있는 식사를 아주 편하게 즐길 수 있으며, 취사가 가능한 주방을 갖추고 있으며 해변이 가까워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호텔 간판도 작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까닭에 조용히 머물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 하루 이틀은 특별함 없이 흘러갔다. 풀장에서 만난 수다쟁이 할머니들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처음엔 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지만 이상하게 라면을 끓이거나 간단한 조리를 할 때면 마스타셰프처럼 조용히 나타나 지켜보고 간섭을 하곤했다.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할머니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보니 대부분 음식 이야기 뿐이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서 먹을지, 내일은 뭘 먹을지. 풀장 안에서, 선베드에 누워서까지 이어지는 요리 대행진. 물론 요리가 끝나면 꼭 방문을 두드리거나 불러내어 맛보기를 강요했고 나는 하루하루 맛본 요리에 대한 평가를 해주어야 했다. 대부분은 좋은 평가였다. 바로 옆 방이라 옮기고 싶었지만 대부분 장기 여행자들이라 방이 나오지 않았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 일주일이 모여 한달이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할머니들의 듬직한 손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들의 음식을 가장 좋아해 주는 손자. 필요한 식재료를 기꺼이 사다주는 착한 손자. 해변으로 가기 전 몇 시에 돌아올 것인지 알려줘야 했고 서핑을 하다가 돌아와 맛있게 차려진 점심을 먹고 친구들을 만나러 다시 나가는 상황이 되었다. 다음 시즌을 위해 호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나는 무려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본의 아니게 호주 할머니들이 차려 준 집밥을 먹고 살았다. 아주 가끔 여행을 하며 식사를 하다보면 뿌리 다마이에서 할머니들이 해주던 맛이 떠오르고 한다.
Happy New Year
보고 싶은 수와 메리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