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가치에 대한 믿음, 그리고 기술 - NFT열풍을 보며

가상자산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처음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관심을 가졌던 게 2017년 정도였던 것 같고, 그땐 화폐로서의 가치라던지, 중개기관이 없는 금융 시스템 등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글도 썼었다)


NFT 가 등장하면서 단순히 가상화폐를 넘어서 '가상 자산'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고 있는데 (가상 미술품 거래라던지), 이번에는 '투자'를 넘어서 실제로 NFT와 가상자산이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기술에 대한 부분이나, 작동 원리와 같은 부분은 조금 미뤄두고, 일반적인 사용자 입장에서 와닿을 수 있는 부분들 위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가상자산 열풍이 흥미로운 이유


NFT와 가상자산, 그 가치를 당신은 얼마나 '믿습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NFT가 등장한 이후, ‘신용’과 ‘가치의 부여’라는 개념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가상의 자산에 가치 및 소유권을 부여한다'는 개념 자체도 그렇지만, 그 개념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움직이며 수천억 대의 금액이 가상자산 거래에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아래의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NFT화 되어 60만 달러 (약 7억 원)에 팔렸다. 7억 원을 주고 이 고양이 그림의 NFT작품을 산 사람은 '원본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중요한 점은, 구글에 'Nyan Cat'을 검색하면 누구든 이미지를 볼 수 있고, 나 역시 이 글을 쓰며 이미지를 손쉽게 복사해왔지만, '진짜 원본' 소유권은 NFT를 구매한 이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출처: Nyan Cat 유튜브 https://youtu.be/QH2-TGUlwu4


'그냥 디지털 세상 속의 픽셀 이미지일 뿐인데 그게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수억 원에 이러한 작품들이 거래되는 것을 보면 '디지털 자산 소유권 개념'은 꽤 신뢰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NFT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대부분 ‘이해하기 어렵다’ 라거나, ‘사기나 거품이 너무 많이 껴있는 거 아니야?’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물론 요즘에는 투자의 관점에서 많이 바라보지만) IT 프로덕트 / 서비스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투자금이 몰리는 최신 기술이더라도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받게 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가상자산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우리에게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고민해본 것들을 간단히 풀어보겠다.



‘신용’, '믿음'의 관점에서의 NFT - 어쩌면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인류는 생각보다 실제로, 꽤 오랫동안 '믿음'이라는, 고상하면서도 허무한 개념 위해 많은 것들을 쌓아왔다


개인적으로 가상자산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고 있는 변화가, '신용거래'라는 개념이 등장한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NFT를 통한 가상 자산이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가상 자산'이 '대중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재는 거액의 미술품 거래, 혹은 '투자자산'으로의 NFT 자산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대중에게는 더욱 낯설게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가상의 것'에 투자한다니, 이미 한번 '가상화폐'의 투기 열풍이 몇 차례 쓸고 지나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는 '거품이 아닌가? 과도한 투기로 인한 열풍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심어주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스캠 코인' 이 많은 것처럼, NFT를 통해 투자자 또는 구매자를 잔뜩 모아 금전적인 이들을 취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상의 것'을 기반으로 금전적 거래가 일어나는 현상은 인류가 지금껏 아주 오래도록 해오던 일이다.


NFT는 디지털 세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자산에 고유하고 조작이 불가능한 토큰을 이용해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누구든 캡처하거나, 복사해 갈 수 있다. 음악, 영상, 디지털 미술품과 같은 디지털 저작물들이 오랫동안 ‘저작권 보호’ 때문에 골머리를 알았던 이유는 바로 디지털 세상 속 모든 것들은 복제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NFT는 복제물이 넘쳐나는 디지털 자산들 속에서, ‘이게 원본이다!’라는, 조작 불가능한 증명서를 발급하는 것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실제로 NFT를 통해서 이미 어마어마한 ‘가상자산’들이 (어마어마한 금액에) 거래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NFT '가상자산'들은 디지털 세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이다. (물론, 현실에 존재하는 작품을 'NFT화' 시키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현실 속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고 한다.)  


‘실존하지 않는 무언가’를 두고 수많은 거래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고 거래하는 현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바로 현금을 지급하지 않더라도, 신용카드를 사용해서, 혹은 할부로 아주 손쉽게 물건을 구입한다. '다음 달에 카드값이 나갈 거야' 가는 말이 참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니까 돈 좀 꿔 주면, 다음 달에 바로 값을게. 한 달에 한 천만 원까지 매달 빌려줘'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신용'을 믿는다.

실제로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에 나오는 기억에 남는 부분인데, 16세기 최고의 무적함대를 지녔던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네덜란드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용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금만큼 신용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네덜란드는 '빌린 돈은 무조건 돈을 값는다'는 신뢰를 주었고, 수많은 재정가들이 군사 자금을 신용을 담보로 대주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빌린 돈을 값 기는커녕 무력으로 여기저기 돈을 뜯어내던 (?) 스페인은 쉽사리 군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몇 백 년이 흐른 지금, '신용'의 개념이 금융제도에서 보편화된 지금은 대출이나 할부를 통해 물건을 구입하고, 매월 월급에서 값아나가는 현상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단순이 신용거래나 대출뿐이 아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주가의 변동성을 통해 이득을 취하기 위한 '투자'의 관점에서 주식을 구매하지만, 본질적으로 주식은 '회사의 지분'이다. 회사의 지분을 구매하여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회사는 이익을 나누기 위해 투자한 금액에 따른 배당을 지급한다는 것이 주식의 본질이다. 즉, '주식'을 구매한다는 것은 '회사의 미래가치'라는 가상의 것에 투자하여 '이 회사의 운영과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짐을 의미한다.


신용거래, 또는 주식투자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에 투자한다는 개념이 자리잡기 전에 분명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했을 것이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용불량자의 수가 급격하게 불어났고, 신용불량 근절을 위한 공익광고를 쉽사리 볼 수 있었지만,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다시 신용불량자의 수가 절반 가량으로 급격히 감소했던 전례가 있다.


가상자산과 NFT 역시, 물론 투자자 또는 기업들의 관심을 모아 기술과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대중들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필요성을 설득하여 기술적 아노미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NFT는 서비스화될 수 있을까?


기술과 기능, 서비스는 분명 다르다.

NFT는 '기술'이지 서비스가 아니다. 현재 NFT는 디지털(투자)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기술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서비스'화가 일어난다.


'대중에게 익숙한 개념이 된다'라는 과제가 해결되더라도, 과연 NFT / 가상자산은 ‘서비스화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해보았다. 현재 NFT는 ‘투자’의 관점에서, 즉 디지털 자산 거래의 관점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니지만, '기능의 구현을 통해 가치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의 서비스가 될 수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IT를 기반으로 한 신기술들은 일반적으로 ‘서비스’ 혹은 ‘IT 프로덕트’의 형태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서비스나 프로덕트는,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하거나, 더 편한 방식을 제공해 유저들에게 핵심 가치를 제공하며,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수익모델을 통해 유지된다.


그럼 NFT는 어떨까? 우리는 NFT 자산 거래를 이러한 서비스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NFT가 ‘기능적으로’ 가능하게 한 것은 다음과 같다:


디지털 자산에 대해 블록체인을 통해 자체적으로 관리되고, 조작이 불가능한 ‘소유권 증명’을 부여한다.

복제품이 생성되더라고, ‘진짜 원본’을 구분하고 소유자를 명시할 수 있다.


그런데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 증명이라는 것이, 과연 지금 단계에서, 사람들의 삶을 (혹은 기존에 하던 일들의 방식을) 바꾸고 있을까?


NFT가 없더라도, 우리는 뉴욕 시립미술관에 전시된 고흐의 그림이 ‘진짜 원본’이라는 것을 알고, 구글에 검색을 통해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고흐의 그림은 ‘복사본’이라는 것을 안다. 유명 작가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예술작품을, 만일 내가 복사해서 판매해 금전적 이득을 취한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안다. 내가 만일 고흐의 그림을 아무리 비슷하게 따라 그려도, 그 누구도 나의 그림은 비싼 값을 주고 사려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1) ‘반 고흐의 그림 원본은 높은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고, 2) 이러한 믿음은 모두에게 공유되고 합의된 사법제도 (이를테면 저작권)와 사회적 통념 (고흐 그림은 진짜 귀한 물건이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NFT를 통해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의 본질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NFT는 단지 그 믿음과 가치 부여의 대상을 '현실 세계에 있던 것'에서 '디지털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옮겨서, 좀 더 안전하고 나은 방식으로 '기능'한다.


‘왜 꼭 서비스가 되어야 하지?’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최근 NFT가 단순히 투자의 대상을 넘어, ‘미래를 바꿀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이상 나는 일반 사용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가져다주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NFT의 선행 기술인 '블록체인'은 '탈중앙화 된 시스템의 제공'이라는 기능을 바탕으로, 금융, 유통, 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을 통한 '서비스화'가 시도되고 있다.




디지털 자산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가치를 담는 것은 분명 굉장히 멋진 일이다.


디지털 예술품뿐 아니라, 메타버스가 대두되며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세상 속의 많은 요소들에 큰 가치를 느끼고 있다. 단순한 예시로 '게임 아이템' 이 현금으로 오래도록 거래되어온 현상만 봐도, 많은 사람들이 이제 디지털 자산에 큰 가치를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치에 대한 믿음'으로만 세워진 트렌드는 가끔 무섭기도 하다. 어디까지 진심으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과열된 투자로 인해 세워진 광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많은  - 예컨데 튤립 버블,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도지 코인  - 에서 느낄  있으니까..


나는 기술이 실제 사람들의 생활을 바꿀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치에 대한 믿음'을 넘어, 그 믿음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이와 소통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