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달픔이다, 그렇지만 살만하다
남편은 절대 이길 수 없는 호랑이
얼마 전부터 양치를 할 때마다 이가 시큰 거리고 상태가 안 좋았다. 느낌에 치과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제일가기 싫은 곳 중에 한 곳이 치과다. 코로나로 확진자도 자꾸 나오고 조금 있다 가자, 핑계를 대며 미루어 왔는데 며칠 전 남편이 저녁에 누룽지를 먹던 중 " 어! 큰일 났다, 이가 부러졌네." 하고 놀란다. 앞니가 부러진 것이다. 그런데 원래 금이 간 이라고 했다. " 어떻게 해"
다음 날 치과에 나도 치료받을 겸 함께 갔었다. 남편은 워낙 성격이 급한 분이라 어디를 가든 물가에 내놓는 아이 같다. 자기 마음대로 안되고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되면 불 같이 화를 내고 황당한 상황이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다. 운전을 하다가도 상대가 교통법규를 안 지킨다고 빵빵 거리면, 나는 가슴이 철렁한다. 성깔 사나운 젊은이라도 만나면 어쩌려나 하고 망연자실하고서.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나이 들면 좀 너그럽고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는다. 그러니 남편 혼자서 어디를 갈 때는 불안하고 마음이 조마조마 해 진다. 나는 항상 당부를 한다. " 여보, 어떤 일이 있어도 화내는 일은 하면 안 돼요, 생각이 맞지 않을 때 조용히 말로 이해를 시키는 거예요." 자존심이 상하고, 싫으면서도 "알았어" 하고 수긍을 한다.
며칠에 한 번씩 남편과 같이 치과에 갔다. 남편 이를 빼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도 나라에서 보험으로 한 사람에게 두 개는 해당된다고 하니 비용은 60만 원 정도다. 드디어 나도 치료를 받으니 어금니가 염증이 있다고 빼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야단 났다. 이를 빼고 임플란트 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는 일인데.
며칠 잇몸 치료를 하고 이틀 전에 어금니를 뺐다. 긴장을 하고 이를 빼서 그런지 기운도 없고 몸 상태가 안 좋다. 저녁을 하는데 사다 놓은 오리고기를 프라이팬에 넣으려 하는 순간 남편은 "세 첨만 구어, 나는 많이 못 먹어"라고 말한다. 남편은 위가 안 좋아 많이 못 먹는다. "그래도 그렇지 세첨이 뭐야, 말도 안 되지. 나는 안 먹어?"
" 그것 조금을 어떻게 구워, 적당히 먹을 만큼 해야지" 하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더니 금방 반응이 온다. 호랑이가 표호 하듯이 화를 낸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를 못하는 일이다. 그게 별일이라고, 그때 모습은 차마 말로 하기 어렵다. 남편은 성격이 급해 화를 참지 못하는 환자다.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 본인도 알고 있다. 그런데 조절이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거기다가 말대답을 하면 그때는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저 참아야 한다. 그 순간은 정말 같이 살기 싫다는 생각뿐이다. 마음이 착 가라앉고 먹먹해 지기만 한다. 어찌해야 할까~~~ 그래도 밥은 차려 주고 내 할 일은 한다.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일이지만, 현명 해져야 한다.
그때부터 냉전이다. 나는 말 한마디도 하기 싫다. 내가 할 일 만 할 뿐 밥도 따로 차려 먹는다. 서로 시간을 보내는 공간도 다르다. 거실과 안방은 남편의 공간, 나는 내방과 서재에서 따로 시간을 보낸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있으면 괴롭고 밤에 잠도 못 자고 그랬다. 그런데 거의 주기적으로 화를 내고 이제는 적응이 좀 됐다.
같은 일이 반복되니 그런 가 보다 한다. 순간은 참기 힘들고 괴로워도 시간이 치료를 해 준다. 그렇게 주기 적으로 화를 내야 살아가는 가는 사람이니 도리 없다. 병원 상담도 받아보고 약도 먹어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그 일도 그만두었다. 워낙 성격이 특이하다. 한번 자기 생각이 옳으면 절벽이다. 누구도 상대를 못한다.
남편은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TV 하고 놀고, 내가 말 조차 안 하니 답답한 모양이다. 나는 밖에 잠깐 외출할 때도 말없이 나갔다 온다. 집에 돌아오면 거실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 자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다. 참 부부란 알 수가 없다. 한 없이 미웁고 섭섭했다가도 그 모습이 불쌍해지고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저렇게 살까 생각하면 답답하기 만하다. 그래 놓고 계면쩍어 "미안해' 한마디 못하고 사는 저 남자, 자기 만의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듯하다. 절대로 사과를 할 줄 모른다. 그게 안 되는 가 보다. 내가 대화를 해 보았만 자기 생각만 합리화한다. 그러니 오히려 대화가 더 상처를 남긴다. 어쩔 도리가 없다. 자기는 환자라고만 말한다. 다른 것은 다 정상적이면서 화내는 일만 자기화한다.
요즈음 사람들이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니 어쩌랴, 이런 글을 쓰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싶다. 자기의 내밀한 삶은 보여 준다는 것은 큰 용기다. 처음 일이다. 글로 남편의 뒷담을 하는 듯해서 흉이 될까 망설이면서도 글을 쓰게 된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이혼할 용기도 없다. 삶이 얼마나 남았다고 이혼을 한단 말인가.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오늘 치과 치료가 갔다가 마트에 들렸다. 예전에 가까이 지내던 지인 어른이 생각이 나서 명절도 돌아오고 과일이나 사서 보낼까 싶어 전화를 했더니 아주 힘들게 전화를 받는다. 90이 된 어른이다. 부인이 아프고 본인이 보살펴 주는데 많이 어렵다는 소리를 한다. 안 들은 만 못하다. 아무리 화려했던 시절도 나이 앞에는 장사 없다.
사람 사는 일이 쉽지가 않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각가지 많은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가니 몸은 여기저기 아프다고 아우성을 친다. 세상에 나와 많이도 살아 냈으니 당연한 일이다. 작년과 새해가 되니 또 다르다. 나이가 들면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그저 병원과 친구 하면서 살아야 한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면 더 힘든다.
기운이 없으니 마음 상하는 일도 무겁다. 나이 들며 무엇이고 가볍고 싶다. 부엌에서 쓰는 그릇조차 무거우면 싫다. 그러니 마음도 무거우면 싫고 가벼운 걸 선호한다. 마음이 상해 남편에게 냉전을 했다가도 이런저런 주변의 일어나는 상황을 들을 보면서 가벼워지고 싶어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사람 사는 일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려 한다. 만약에 남편이 아파 누워 있으면 더 힘든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더 안 좋은 상황을 생각하며 다행이다 하고 마음을 달랜다.
그래, 사람 사는 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누구를 미워하랴! 누구를 미워하고 마음에 힘듬을 지니고 짐을 지고 살 것인가. 짐도 기운이 필요하다. 나이와 함께 사는 일이 자꾸만 힘이 달린다. 편하고 싶다. 마음도 몸도, 오늘 점심은 남편에게 말을 걸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어깨가 외로워 보여 더는 불쌍해 못 보겠다. 내가 놀아주지 않으면 못 견디게
외로운 사람이다.
나는 이 남자를 미움에서 놓아준다. 그래 당신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사시라고요. 내가 이 남자를 안 보아주면 누가 보아줄 것인가. 자식도 소용없는 일이다. 내가 이 사람의 짝이 될 때부터 나에게 온 내 짐이다. 이 남자는. 나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어 마음에 위로를 찾고 쉴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런데 남편은 아무 취미가 없다.
사람 사는 하루 24시간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다 각기 다른 인생인 것을 ,
내게 아픔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이 남자는 나에게 모든 삶을 다 준 사람이다. 자식과 54년이란 인생의 살아온 역사를 같이 하면서, 구비구비 살아온 사연이 많기도 하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역할은 철저하게 해냈다. 그래서 더 당당하고 굽히지 않는 자기만의 신념이 있다. 때때로 가슴 찡한 순간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남편이기도 하다.
나는 원숭이, 남편은 호랑이 절대로 원숭이는 호랑이를 이길 수 없는 관계다. 숙명인 듯 그저 담담히 살아내고 생을 마감하는 일이다. 이기고 진들 무엇하랴, 지는 것이 이기는 것 아닌가. 나는 안다. 그 남자, 남편은 가족이 인생의 전부였기에 자기를 인정하지 않은 행위는 용납을 못하는 거라고. 사람마다 살아가는 가치는 다른 것이니까.
요즘 사람처럼 사랑이란 말이 어디 있겠는가 같이 살아온 연민 같은 것이지... 이건 순전히 내 입장이다.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인지 그 건 모르는 일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따로 있고 할 말이 따로 있을 것이다. 절대로 자기 속 마음을 표현 안 하고 사는 사람, 누가 누구 삶을 평 할 것인가. 살고 보면 알게 되고 다 다른 인생인 것을.
산다는 것은 고달픔이지만 살만 하다. 다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 속에 또 다른 삶에 묘미가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살아가는 일은 슬픔만 있는 건 아니라고. 이 글은 쓰고 있는데 폰에서 조용필의 한 '오백 년' 노래가 나온다. 나는 가슴이 저리고 아린 노래가 위로가 된다. 그 슬픔 속에 묘한 희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