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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재로 출근하는 80대 할머니

이 공간에서 만나는 오롯한 나 자신, 마음의 근 욕을 키우고 소통을 한

by 이숙자

나이 들면서 밖에 나가는 외출 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칫 무료하기 쉬운 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선 시간 분배를 잘해야 한다. 나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오늘 무얼 하면서 하루를 보낼까. 아침에 눈을 뜨고서 하루 일정을 생각하며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신경을 쓴다.


아침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치면 내 방 서재로 출근한다. 직장인도 아니면서 출근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내 서재는 나만의 세계가 집합된 장소다. 누군가 신경을 쓸 일도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 서재다. 출근이라는 말은 직장인들에게 만 해당되는 말 같지만 일터는 직장이다, 내 서재는 일터며 나의 놀이터다.


글을 쓰는 일도 어쩌면 생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오마이 뉴스>에 글을 올리는 일도 생산적인 일이다. 출간할 책 원고를 쓰는 일 또한 생산적인 일이다. 원고료가 적고 많고 보다 이 나이에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누군가의 강요보다 나 자신의 자발적인 창의력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위로이자 살아가는 가치를 음미하는 작업이다.


나이 듦이 서럽지 않다



서재에서 브런치 글도 쓰고 매일 시를 필사해 단체 메신저에 올리는 일, 어반 스케치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서재는 내 놀이터인 동시에 일터이기도 하다. 오롯이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나만의 사색 공간에서 정신적으로 나를 더 성장시키는 작업은 내 마음의 근육을 키우며 세상 풍파에 흔들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더없이 편안하고 내가 나 다움을 느낀다. 그러한 일들이 내 자존감을 키우며 삶의 근육도 단단해진다.


혼자 놀 때면 잔잔한 바닷물 위에 반짝이는 윤슬이 떠올라 평화롭기도 하며 어떤 날은 내 안에 슬픔처럼 잠겨 있던 아픈 상처도 글을 쓰면서 걷어 낼 수 있다. 오직 남겨진 삶은 집착을 버리고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와의 약속 같은 것. 어느 방향으로 목표를 두고 걸어갈까 하는 고민은 나의 몫이다.


인생이란 결국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한다. 그 말에 공감한다. 공감은 하지만 실천과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 삶이란 복잡한 감정에 몰입하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동굴 안에 갇히고 만다. 인생이라는 나무에는 슬픔도 한 송이 꽃이라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나이 듦이란 가야 할 곳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잘 구분하므로 자기 품위를 지키는 것이다. 나이 듦은 곧 내 마음에서 하나 둘 버리는 일, 예전 젊어서는 앞장서서 살았다면 지금은 삶의 언저리 뒷자리에서 조용히 살아야 하는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나이에 따라 지금 처한 상황에 따라 내 삶의 자리는 바뀐다. 그 걸 알아야 하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림으로써 나다워진다.


나를 잘 살도록 돌보는, 사색하는 순간

바쁘게 사회생활을 했던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을 했다. 세상 밖에 드러내 놓고 살던 나를 좀 숨기고 살자. 나이 들면서 까지 여기저기 얼굴을 내놓고 산다는 것은 추해 보임을 알았다. 숨김은 아름다움이다. 꽉 채운 그릇의 물체가 답답해 보이듯 조금 모자람이 더 아름답다.


삶의 아름다움이란 비움에서부터 시작한다. 집착이란 허망한 것이며 내려놓으면 마음의 근육이 생긴다. 옛일에 집착하지 말자 라는 말은 내 안에서 되새김질해야 하는 다짐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은 맥아더 장군이 퇴역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지만 나이 들면서 우리도 새겨두어야 할 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 보며 혹여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았는지, 내 자리를 모르고 나서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 할 주제들이 많다. 절대로 다른 사람 의견에 부정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때 내 의견을 내는 것보다는 침묵하며 옳은 방향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옳은 방향으로 가도록 리더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 그 일은 나이 든 사람 몫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관계가 복잡하다고 집안에서 마냥 사람과 소통을 하지 않고 산다면 그 또한 많이 답답할 것이다. 내 일상의 시간도 적당한 안배가 필요하다. 가끔은 삶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실천하려 한다. 사람을 회피하다 보면 내 삶은 세상과 단절되고 고독 안에 갇혀 버릴 것이다.


나이 듦이란 삶은 중용이 필요 함을 알아야 할 때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세상과 소통을 하기 위한 이유 일 것이다. 누군가와 공감하고 마음은 나누는 일은 곧바로 삶의 활력소다. 글을 쓰고 오마이 뉴스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많은 분들이 응원과 격려를 해 주는 그 따뜻한 마음에 글 쓰는 보람을 느낀다. 세상에 나처럼 나이 든 사람 소리도 귀 기울여 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이 나에게는 커다란 위로이자 기쁨이다.


혼자서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이면 "그래, 이만 하면 내가 잘 살고 있어"라고 나를 다독인다. 때때로 삶이 어둠의 동굴에 갇히려고 할 때 글 쓰기는 나의 피난처가 되기도 외로움을 걷어내는 삶의 방편이다.


내가 나를 돌아보며 사색하는 순간, 고요가 찾아와 내 마음은 천길 물속처럼 잠잠해 온다. 인생이란 정해진 길도 없고 정답도 없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데로 맡겨 두면 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때때로 밀려오는 슬픔도, 고통도 내가 함께 해야 할 내 삶의 무게다. 사람과의 관계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 그리움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람 관계는 너무 자주 만나면 서로의 풋풋한 감정이 없어진다는 느낀다.


눈에 안 보이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말은 하지만, 그리움이란 얼마간 물리적인 거리의 간격이 있어야 그 안에서 움터오는 애틋한 그리움이 자란다. 그리움 너머에는 사랑이 자리할 것이다. 나는 나의 서재 안에서 나만이 꿈꾸는 세상,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매일 살아가는 나의 포근한 안식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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