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숙자 Jul 13. 2021

여백이란

뒤늦게 미스터 트롯 정동원 에게 빠져 버렸다

여백이란 말은 동양화를 그렸을 때 선생님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림에 여백이 없으면 답답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사전에서 여백이란 의미를 찾아보니 '종이 전체에서 그림이나 글씨 따위의 내용이 없이 비어 있는 부분'이라고 나온다. 사람도 빈틈이 없이 꽉 채워진 사람보다 조금은 헐렁하고 덜 채워진 사람이 편하고 매력이 있다.


여백이란 단어를 나는 가끔 잘 써왔다. 비어 있음이란 의미가 자주 마음에 다가 오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마음을 비워내고 여백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나는 반문해 본다. 살면서 가끔 한 문장의 글이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으로 울컥해질 때가   종종 있다. 어제 내가 그랬다.


성격 탓일까, 아님 나이 탓일까. 나는 항상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혼자 노는 걸 즐긴다. 혼자 있으면 내 사유의 영역이 넓어지고 마음이 맑아진다. 어제 서재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폰에서 카톡 소리가 들렸다. 폰을 열어 보니 가까운 지인이 보내준 영상이.

<미스터 트롯>의 정동원이 부는 '여백'이란 노래였다. 노래를 듣는데 마음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온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날마다 전심전력을 하고 살고 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신이 주신 내 생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럴 즈음 대한민국에 혜성같이 나타난 사람들, <미스터 트롯> 가수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특히 나이 든 엄마들이 미스터 트롯 노래를 듣고 열광하며 고단한 삶에 활력을 얻고서 우울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새삼 노래의 위대함을 느낀다.

             

                                               미스터 트롯 가수 정동원


나는 티브이에서만 <미스터 트롯> 가수들의 노래를 가끔씩 들었다. 참 노래를 잘하는 젊은 가수구나라고 생각했지 마음이 절절하고 감동이 되는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아 정신을 그곳에 몰입할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열광하는 팬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은 모르는 일이다. 지인이 보내 준 정동원 어린 가수의 '여백'을 듣고 마음이 아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제 나이 14세인 어린아이가 인생의 깊은 내용에 대한 노래를 어떻게 절절히 토해내는지, 애달픈 이 감정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놀랍다.  


나는 요즈음 사람이 사는 일은 '일장춘몽이요 화무는 십일홍'이란 말을 절감하고 있다. 남편 주변에서 자꾸만 지인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괜스레 쓸쓸하고 외로워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쓸쓸함이다. 그러려니 하고 담담히 생각을 정리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니까. 그게 인생이니까.


'여백'이란 노래 가사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귓가에 맴돈다. 어제부터 자꾸만,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다. 아, 이런 걸 그 노래에 빠졌다는 말을 하나, 혼자 생각하고 때 아닌 내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난다.


여백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은 늙어가는 게 슬프겠지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저녁이면 벗게 되니까


내 손에 주름이 있는 건 길고 긴 내 인생의 훈장이고

마음에 주름이 있는 건 버리지 못한 욕심의 흔적


청춘은 붉은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더라

마음에 따라서 변하는 욕심 속 물감의 장난이지


그게 인생인 거야 전화기 충전은 잘하면서

내 삶은 충전을 못하고 사네 마음의 여백이 없어서


인생을 쫓기듯 그렸네. 마지막 남은 나의 인생은 아름답게 꽃 피우리라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사와 노래 부르는 가수의 감정이 이입되어 정말 인생이란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냥 눈가에 이슬이 맺히며 사는 건 별거 아닌데, 아등바등할 필요가 뭐 있나 싶다. 욕심 속 물감은 버리고 다른 물감으로 예쁜 그림을 그리고 살아야 할 듯하다.


이 나이만큼 세상을 살고 보니 정말 청춘은 붉은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 빛도 아니란 말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인생이란 아프다.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삶이란 고독하고 외롭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 아닌가.


그러나 마음을 돌리면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우리 앞에 있다. 그래서 기운을 내고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지금 살아 있음은 축복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다른 재미가 있는 게 세상살이다. 14세 어린 가수가 부른 노래 유행가 가사에서 인생을 배운다. 마음의 여백을 두고 살라고 말을 건넨다.  

매거진의 이전글 덥다, 입맛없다, 그럴땐 이거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