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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계산인 홍석경 Aug 13. 2024

[돌로미티 #20] 베네치아에서 뱅기 놓칠 뻔 한 썰

베네치아 메스트레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탈 때는 도착지를 확인해야 한다

8박10일간 돌로미티-베네치아 여행을 마치고, 7월 8일 11시쯤에 베네치아 마르코폴로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편은 오후 2:05시에 베네치아를 출발하여 2시간 30분 후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는 터키항공이었다. 아침 9시쯤에 숙소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InterSpar)에 다녀와서 캐리어를 끌고 호텔을 나서니 11시쯤 되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베네치아 메스트레 버스 정류장(Venice Mestre Bus Station)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메스트레 버스정류장은 아래 구글사진과 같았다. 여기서 ATVO 버스를 타면 베네치아 마르코폴로 공항까지 가는데 18분 정도 걸렸다. 우리는 3시간 여유를 갖고 버스정류장에 도착했기에 제법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땡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7월의 버스정류장은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얼핏 사람들이 줄을 선 것 같기도 했지만,  ATVO 버스가 도착하면 기존의 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출입문을 향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베네치아는 워낙 유명 관광지인지라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인종이 몰려들다 보니 공중질서가 끝까지 유지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들 적당히 눈치 보고 적당히 알아서 행동하곤 했다.


어수선함에 끼어들기가 싫어서 버스를 2대 보내고 나니,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겨우 2시간 남아 이젠 한가하게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안되었다. 다음 버스는 무조건 올라타야 했다. 초조하게 ATVO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랍쇼? 아래 사진의 2번 위치에 버스가 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버스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 짐칸에 캐리어를 들여놓고 아직 열리지 않은 출입문을 둥글게 에워쌌다. 물론 나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각양각색의 인종들 틈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또 다른 중년 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뒤로 빠져 안 보이는가 싶더니 조금 있다 내 등 뒤쪽에서 큰 목소리로 "여보~"하고 몇 차례 아내를 불러댔다. 소리를 향해 얼굴을 돌린 아내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더니 이내 무리에서 빠졌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이 분들께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냥 만원버스라 다음 버스를 타기로 했나보다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이스탄불행 터키항공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조건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사진 1. 베네치아 메스트레 버스정류장. 확실하지는 않지만 베네치아 마르코폴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1번 위치에 주차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버스에 올라타서 꽁지 부분에 자리를 잡는 데까지 성공했다. 얼마 있다 버스는 출발했다. 나는 이 ATVO 버스가 당연히 공항 안으로 진입하여 탑승객들을 몽땅 토해낼 거라 생각하고 이내 휴대폰의 페이스북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한참 동안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페북질을 하다 문득 머리를 들어 창밖을 보니 아직 공항 주변 풍경이 안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베네치아 공항 주변에는 이태리 소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 창밖에 소나무가 보이면 버스는 공항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아내를 살펴보니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다시 머리를 박고 페북질을 열심히 하였고 페북질도 조금 지겨워질 무렵 시간을 확인하니 베네치아 메스트레 버스정류장을 출발한 지 적어도 40분은 지난 듯 했는데 창밖의 풍경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문득 베네치아 공항을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옆좌석에 앉은 이태리 젊은 친구 (중.고등학생 나이로 보였다)에게 '이 버스가 베네치아 공항으로 가느냐?"라고 물었다. 그 친구 왈, "아닌데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물었나 싶어 재차 물었더니 역시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버스를 잘못 탔다는 것을 깨닫고 낭패감에 휩싸였다. 나는 깊은 잠에 빠진 아내를 흔들어 깨우고 버스를 잘못 탄 것 같다고 알려줬다. 아내도 깜짝 놀라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베네치아 메스트레 버스 정류장에는 2종류의 ATVO 버스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도착지가 베네치아 공항이고, 또 하나는 이름 모를 곳으로 향하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메스트레 버스 정류장에서 2번 주차 위치에 선 ATVO 버스의 목적지는 Jesolo (이태리어로 에소로, 또는 에솔로, 영어로 제소로, 제솔로)라는 유명한 비치였다.)

사진 2. 베네치아 메스트레 버스정류장에서 ATVO 버스를 탔는데, 우리를 베네치아 공항이 아닌 에솔로 또는 제솔로(Jesolo)라 불리는 버스터미널에 내려줬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이제 1.5시간도 안 남았는데 버스는 하염없이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15-20분 정도를 더 달려 버스는 종착지로 보이는 이름 모를 버스 터미널에 서더니 관광객을 토해냈다.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인지 만원 버스의 승객들이 모두 이곳에서 내렸다. 나는 재빠르게 버스의 짐칸에서 캐리어를 꺼내고, 도움을 청할 이태리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 앞쪽에 버스기사로 보이는 세 분의 이태리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 마음씨 좋아 보이는 분에게 "내가 지금 베네치아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택시를 잡아줄 수 있는지?"하고 물었다. 그분은 흔쾌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눈 다음, 나에게 저쪽 울타리 밖에서 기다리면 택시가 올 거라고 알려줬다. 우리는 초조하게 택시를 기다렸다. 약 15분쯤 지났을까? 택시 한 대가 나타났고 우리는 서둘러 캐리어를 짐칸에 싣고 택시기사에게 베네치아 공항으로 가자고 얘기했다. 다행히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고, 우리가 탄 택시는 적당히 빠른 속도로 공항을 향해 달렸다.

사진 3. 에소로(Jesolo) 버스 터미널. 베네치아 메스트레 버스 정류장에서 탄 ATVO 버스는 우리를 낯선 곳에 내려줬다.
사진 4. 에소로(Jesolo)는 베네치아 동북부에 있는 유명한 해변 리조트 마을이다. 해변은 마치 우리 몸의 빗장뼈처럼 길게 삐져나왔는데 그 길이가 자그마치 15km에 달한다.

택시 안에서 시계를 보니, 비행기 출발시간이 1시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이 항공편에 탑승하기는 글렀고, 다음 비행기 편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서 내일 일요일까지 귀국하느냐가 숙제로 다가왔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비행기 표값을 날리다니... 내가 정말 한심했다. 그런데 달리는 택시 안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가 탑승키로 예약된 베네치아 - 이스탄불행 터키항공편이 1시간 늦춰졌다는 문자가 날라든 것이었다. 와우~~ 잘하면 이 비행기를 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엿보였다. 터키항공은 연착으로 유명한 항공사인데... 연착이 우리를 구원해 줄 줄이야! 우리는 택시가 조금 더 빨리 달려주길 바랐지만 택시기사에게 조르지는 않았다. 택시는 여전히 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렸지만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아 예상보다 빨리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공항 출국장으로 달음질하여 터키항공 카운터에 다 달았다.

사진 5. 에소로(Jesolo) 비치는 모래사장 길이가 자그마치 15km에 이른다. 이 해변을 이태리 사람들은 '리도 디 에소로(Lido di Jesolo)'라고 부른다.

터키항공 매표소엔 남자 직원이 한 명 남아 있었고, 이제 막 철수 하려든 참이었다. 우리는 늦어서 미안하다 말하면서 A4용지에 인쇄한 항공티켓 예약증을 보여줬다. 남자 직원은 상황을 눈치챘는지 군말 없이 재빠르게 캐리어를 화물처리하고 탑승권을 건네주었다. 나는 환히 웃으면서 그 직원에게 정말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우리는 서둘러 출국 심사장을 통과하고 터키항공 게이트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비로소 우리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나는 돌로미티-베네치아 여행을 해피 엔딩으로 마칠 수 있게 도와 준 에소로 버스 터미널의 기사와 택시 기사 그리고 터키항공 직원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사진 6. 매년 550만 명의 사람들이 리도 디 에소로 (Lido Di Jesolo) 해변을 찾는다고 한다.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버스를 잘못 타고 내린 그 동네가 무슨 동네인지 몹시 궁금했다. 버스가 사람으로 가득 찰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면 유명한 관광지임에 틀림없을 텐데... 베네치아 동북부에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구글지도의 타임라인을 뒤져 2023년 7월 8일 내 행적을 살펴보았더니, 그 동네 이름은 에소로(Jesolo)였고, 바로 근처에 길이가 15km에 달하는 해수욕장이 있는, 그래서 매년 550만 명이 찾아간다는 유명한 해변 리조트였다. 언젠가 또 한 번 베네치아를 간다면 에소로 해변에 들러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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