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어 참견러 Jun 29. 2024

죽음 매뉴얼

Death  Manual

 이번 주 화요일 영어바이블 모임은 화재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바로 전 날 발생한 화성 1차 전지 공장화재로 인해 22명 사망 중 20명이 외국인 노동자들이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DNA 검사를 해야 할 정도로 시신이 훼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화 가운데 화재 원인을 떠나 그들의 사인은 '질식사'이고 '출구'를 찾지 못해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기사를 보면, 2층에서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는데 미처 그쪽으로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하지만, 화재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했거나 화재 발생 가능 여부에 대한 화재 예방 확인서나 훈련 매뉴얼이 있었다면, 타국에서 고생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그렇게 어이없는 개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와들의 죽음 소식이 가볍게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 이유는 지구촌 교회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예배에 봉사자로 섬긴 이력 때문일 것이다. 젊고 젊고 어리기까지 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어에도 취약하지만 추위에도 취약하다. 한국에서 지내기 가장 어려운 계절은 겨울이고, 추위로 인해 한 두 명씩 동상으로 죽는다면서 걱정하던 캄보디아인들의 눈빛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동상으로 죽는다고? 그 당시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따는 일을 하는 자매의 집을 방문하고나서야, 이해가 되었. 그녀는 만성 기침 증세가 생겨 검사를 하니 1차 결핵으로 판정, 2차 검사를 위해 1인실에서 자야만 했지만 경제적인 부담과 심리적인 부담을 줄여주고자 내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다. 아침에 안부를 물으니 따뜻하게 잘잤다고 한다. 자신의 숙소는 너무 춥다고하면서 말이다. 나중에 방문해보니 숙소는 비닐 하우스 옆에 덩그라니 놓여진 컨테이너 박스였다.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를 방문할 때마다 쓰던 코로나 키트 한 박스가 집 선반에 그대로 남아있다. 키트(kit)란 질병이나 바이러스 따위의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도구로 코로나 팬더믹 기간 동안 늘 사용했던 키트 없이 면회를 할 수 있게 된 덕이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미 전 국민이 감염자가 된 덕에 코로나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했지만, 떼돈을 번 사람들과 기업이 있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우연인지 계획된 의도인지 명확한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간다. 아무튼, 이제 코로나 키트가 향할 곳은 쓰레기 통이다.


  난 요즘 죽음 키트를 가지고 엄마의 병문안을 다닌다. 폐의 1/4만이  기능을 하고 있기에 언제 호흡이 멈출지 모른다며 X-레이 사진을 보야주는 주치의의 경고 메시지를 받은 후, 마음속에서 분출한 생각 덩어리가 <죽음 준비 십계명>이다. 면회 때마다 이 키트를 가지고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와 알굴과 몸의  붓기를 살피거나 모니터의 혈압과 맥박 등을 확인한다. 죽음의 문턱에 와서 헤매는 엄마를 보면서 '잘 살아왔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엄마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동시에 나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길에서 최소한 '출구'라도 미리미리 알아놓아 황망한 죽음을 겪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내 마음에서 만들어졌다. 이 죽음 매뉴얼을 통해 어떻게 죽음에 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 반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현답을 찾아자 한다.


<죽음 준비 십계명>


1.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자 daily bread

2.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자 bucket list

3. 삼가 조의를 받지 말자 no more condolence

4. 사랑하자 이웃을 love others

5. 오늘이 마지막 날인 듯 살자 memento mori

6. 육체의 죽음을 받아들이 naked body

7. 칠(똥) 하기 전에 준비하자 death kit

8. 팔고 버리고 나누자 minimalism

9. 구하지말고 만족하자 say, Enough

10. 십자가의 길을 걷자 road to the cross



죽음 준비 십계명은 죽고자 하는 자 즉, 자살방법을 찾는 자들을 위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살고자 하나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만 하는 사람들.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미리미리 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 인생 문제에서 방향을 잃어 출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출구'를 알려주기 위한 안내서다.


 57세가 된 나의 인생 여정 가운데 시어머니와 아빠 그리고 어린 이웃아이와 이웃 동생의 죽음을 경험했다. 요즘은 사랑하는 나의 엄마의 죽음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정도 맷집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힘들다. 엄마가 뚫어지라 쳐다보는 눈빛에도 어쩌다 흘리는 작은 미소에도 내 마음은 출렁거린다. 간호사와 의사의 말 한마디에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보면, 어렸을 때 내 별명처럼 아직도 '못난이'가 내 안에 살아있음이 분명하다.


87세 된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몰라 어찌할 바 모르는 고통이 내 마음에만 담아 두기에는 너무 버겁다. 조용히 들어주면서 함께 눈물 훔쳐주는 따스한 이웃이 필요한가보다. 아니면,중년기를 함께 보내는 친구나 이웃과 그리고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기타 동호회 회원이나 노래교실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한 번 써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작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영어참견러인 나에게 있어 인생 참견은 이웃에 대한 관심이자 사랑이니까.


딸아이가 이쁘게 인테리어를 마치고 원룸으로 이사한 날, 현관문 위에 비상구 등이 흉하게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인테리어 사장님에게 물으니 소방법에 의해 반드시 설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작은 원룸인데 설마 출구를 모를까요?라는 질문과 동시에 화재나 재난시 불이 꺼지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굳이 필요하지도, 눈길을 보내기도 싫은 출구(EXIT) 표시지만, 언제가 아무도 모르게 들이닥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는 피난 유도등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위기의 순간에 펼쳐보는 매뉴얼로 쓰면 좋겠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귀 기울이기엔 아직 너무나 젊고 건강한 분들이 대다수 일 것이다. 혹은 종종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죽음 대참사에 대한 소식에 이젠 마음도 무뎌져가고 있기도 하다. 대참사로 인한 죽음이던지 골방에서 홀로 맞이하는 고독사던지 병원에서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우다 맞이한 죽음이던지 우리는 누구나 마주 대해야만 할 운명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대부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죽음에 대한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빚 대책, 주택 대책, 결혼 대책, 노후대책 등 코 앞에 닥친 각종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바쁘고 정신없을 것이다. 혹은 이제는 다 준비된 노후대책으로 인해 걱정 근심 전혀 없이 취미를 즐기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천만다행이고 지금의 행복한 삶을 맘껏 즐기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글을 쓴다고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았던 그 어느 날 보다도 더 행복하다. 죽음에 대해 글을 쓰는 축복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닐 테니까. 하지만, 죽음의 소식은 의외로 예상하지 못한 때에 전해지기에 늘 비보(sad news)가 된다. 나에게나 가족 부모 형제에게 언젠가 아니 곧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준비 없이 들이닥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귀를 좀 기울여보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용기를 내어 눈을 마주치며 나의 죽음을 바라보길 바란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어쩌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글을 완성해가려고 한다. 나에게 남은 인생이 얼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 보면 더 잘 살기 위한 지혜를 찾기 위한 여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