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이유 2

죽을 만큼 힘들 때 When Life is Tough

by 영어 참견러

강원도 횡성에서 라운딩을 하고 짜글이 찌개를 먹고 맥주 한 병을 셋이서 나눠 먹고 오는 길. 창밖으로 손을 내밀며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우정 언니가 혼잣말을 한다.


"늙어가는 게 안타까워..."


워낙 골프광이기에 나이 들어 골프를 치지 못하게 될까 염려하는 듯하다. 우정 언니는 이제 환갑을 맞았다. 만 60세. 아직 젊고 튼튼한 근육을 가진 그녀는 얼마 전 제주도에서 싱글을 했다며 카톡 방에 점수까지 공개하면서 좋아한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나이 정도에 뇌출혈로 죽게 되자 한 달 동안 우울증에 원형탈모까지 생기면서 힘들어하다가 골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골프를 하고 와서 바로 집 문 앞에 쓰러져 죽은 80세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다. 한 부자 지인은 다리 수술로 인해 골프를 하지 못하게 되자 자살까지 했다고 하니, 골프광들에겐 자신의 관 뚜껑이 덮이기 전날까지 공치는 것이 소원인듯하다.


노화가 이렇듯 안타까운 이유는 단지 취미생활이나 본인이 즐기는 운동을 하지 못할 것에 대한 이쉬움만은 아닐 것이다. 곧 겪게 될 노년기에 겪어야만 할 육체적인 고통과, 머지않아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20대가 되어 성인이 된 자녀를 영 어덜트(young adult)라고 부른다. 반면에 내 나이처럼 50대 중반을 넘어 60대를 바라보거나 노년기에 접어든 건강과 소득을 갖춘 성인을 영올드 (young old 젊은 노인)라고 부른다. 어떻게 중년의 황금기를 건강하고 부유하게 보내고 석양의 노을이 지고,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하면서 보낼 것인가?


요즘 노현 언니는 자신의 몸도 좋지 않은 데다 부모님의 건강이 나빠져서 라운드를 함께 하지 못한 지 1년 정도 되어간다. 이렇게 부모님의 노년기를 지켜보면서 돌보아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있다. 부모님들의 간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큰 올케에게서 전화가 왔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빠의 관이 석관으로 되어있다는 말이었다.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의 장례 후 매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하는 중에 외삼촌을 통해 듣게 된 말이다. 선산에 묻힌 아빠의 묫자리 바로 옆에 엄마가 묻힐 장소를 준비해 두었는데, 엄마는 매장이 아닌 화장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아빠에 대해 험담하였다. 성경 잠언에 나오는 '험담이 별식과 같다'라는 말을 하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사이에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부모님을 원망하면서도 죄책감을 느꼈지만, 아무튼 이렇게...


'죽음'에 대한 험담을 할 정도의 나이가 된 것이다.


난 실제 갱년기가 시작되었음에도 노화에 대해 그리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어금니가 절단되어 치과에 가니, "앞으로 딱딱한 음식은 씹지 마세요. 특히 게장 같은 거요. 나물도 가위로 잘라서 드세요!"라는 말을 치과의사에게서 들었을 때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직감하였고 그날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얼마 전 김장을 하기 위해 마트에 가서 알타리 무를 보고 있자니, 내 나이보다 조금 더 되는 분이 "씹을 수 있을 때 많이 해 드세요!"라는 말을 진지하게 한다. 단단한 무조차 씹을 수 없을 때가 곧 올 것이라는 경고성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몇 년 전부터 이미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되었다. 바로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노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년이 그리 반갑지 않은 이유는 젊은 시절에 비해 이쁘지 않고 몸이 여기저기 아프거나 병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을 마지막 무렵,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단풍잎을 보면 곧 다가올 겨울의 차가운 칼바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겨울을 지내왔기에 그리 두렵지만은 않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계절(시즌)인 겨울은 좀 다르게 다가온다. 매년 김장하고 난 후의 마음 두둑하고 따스한 난로에 앉아 군고구마를 구워 먹는 상상보다는 온몸으로도 막기 힘든 찬바람과 고독한 시간을 넘어 죽음의 문턱을 어떻게 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이러한 생각을 가벼이 흘려버릴 수 없는 이유는 나의 퇴행성 관절염으로 못생겨진 손가락과 검은 머리 사이로 삐져나오는 흰머리와 얼굴 곳곳에서 보이는 잔주름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은 천국에 계실 엄마의 인생 마지막 장에서 보여준 외로움. 그 가운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했던 시간과 엄마가 머물었던 공간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라며 이루며 사는 것이 삶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 무한정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 엄마의 집을 급하게 팔았다. 작은 오빠가 아파트를 담보로 최대로 대출을 받았고, 100만 원이 넘는 이자도 엄마의 계좌에서 나가고 있었기에 팔지 않으면 경매에 넘어갈 듯했기에 서둘러 팔게 되었다. 그렇게 집 정리를 하고 남은 몇 천만 원의 돈을 큰 오빠는 남은 형제인 나와 남동생에게 나눠줬다. 그렇게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골프 클럽과 백을 샀다. 그리곤 콜프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침상에 누워 심적인 외로움과 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엄마를 잠시나마 잊기 위해 골프공을 하루 200개씩 때리곤 했다. 죽을 만큼 힘들 때 하면 좋은 취미가 골프인 듯하다. 그렇게 하다 골병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해지니까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지만, 공을 치면서 스윙 동작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몸에선 땀이 나고, 뇌(brain)가 리셋되는 기분이 든다. 아들 사춘기 시절에는 저녁마다 아파트를 돌았다. 그러면서 몸도 좋아지고,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의 무게가 줄어들곤 했다. 그런 아들이 만 30세가 되어 결혼을 하여 집을 나갔으니(공식적인 가출), 이제는 강아지 산책 말고는 걸을 일도 없다. 대신 아픈 엄마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난 무언가 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골프였다.


넓은 페어웨이에 공을 날리는 티 샷을 하면서 도전을 하고, 라이가 좋지 않거나 벙커나 러프에 잠긴 공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면서, 어려움에 자주 부딪치다 보면 인생의 어려움도 한결 수월하게 느껴진다. 마지막이자 처음의 목표(target)인 지름 10cm의 홀컵(hole or cup)의 작은 구멍에 공을 넣는 것도 쉽지 않음을 경험하면서, 인생에서 결코 쉬운 일이 없음을 배우게 된다. 오히려 코 앞에서도 공을 똑바로 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깨닫곤 한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작은 공을 열심히 치다가 가끔 한번씩 머리를 들어 하늘과 주변 산의 풍경을 둘러보다 보면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시간과 동반자를 주신 하늘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곧 기쁨과 평안으로 변한다. 사춘기 아이들처럼 공이 내 말을 듣지 않아도 그저 행복해진다.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취미이자, 인생의 전부가 되기도 하는 골프. 그들에겐 이것이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힘든 인생의 여정을 함께 지나온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다. 나에게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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