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의 실체, 그리고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슬럼프'라는 단어를 믿지 않았다. '슬럼프'란 당사자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밀려오는 죄책감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그런 단어라고만 생각했다. "나 요즘 슬럼프인가 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당연히 이해하지 않았고, 속으로는 한심하다고 했다. 모든 것은 인간의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 아주 길고도 험난한 슬럼프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보내보니 알 것 같았다. '내가 게을러서 그렇지 뭐..'라고 심플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감히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시간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이게 슬럼프구나..'
내가 그동안 슬럼프를 부정해온 만큼 이번에는 작정하고 내게 온 것 같았다. 건강이 심하게 안 좋았다가 서서히 회복할 무렵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나는 강력한 슬럼프와 함께였다. 처음에는 늘 달고 사는 '우울감'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울감뿐만 아니라 '깊은 허무함'이 함께 찾아왔다. 그리고 매사에 의욕이 없었고, 무기력했다. 미친 듯이 슬픈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쁜 일도 없었다. 죽고 싶지는 않았지만, 살고 싶지도 않았다.
초반에는 어떻게든 그 슬럼프에서 나와보려고 발버둥 쳐봤다. 오래전부터 운영하던 블로그에 글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곧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글이 싫어졌다. 일을 시작해볼까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오히려 별 볼 일 없는 서른 살의 내가 한없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다시 떠나볼까 생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직은 여행을 떠날 정도의 건강이 안됐다. 무작정 말도 안 되는 빡센 공부 스케줄을 짜 봤다. 그렇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공부라도 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히려 그 계획은 역효과를 불러왔다. 계획에 성실히 따라가지 않는 내 모습에 자책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사는 세상이 너무 다른 사람들을 만나 공감을 해줄 수도, 받기도 어려운 마음이었다.
특히 밤이 오는 게 가장 싫었다. 불면증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 있으면 형체 없는 불안감들이 머릿속과 내 마음속을 뒤덮었다. 그리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악몽 꾸는 날은 늘어만 갔고 새벽에 몇 번이고 깨서 일부러 두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내 불면증과는 상관없이 매일 아침 해는 떠올랐다. 아침은 늘 힘에 겨웠고 지쳤다. 어느 날 아침에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화장실에 들어가 이유 없는 눈물을 한참 쏟아내야 했다. 그땐 몰랐다. 이 시간들이 이렇게 길고 깊게 이어질 거라고는.
왜 이렇게 이 감정이 길게 이어져 오는지 차근차근 생각해보기로 했다. 1년 전, 2년 전, 한번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쭉 거꾸로 올라가 봤다.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써온 일기장을 읽어봤다. 나는 20살 때 재수 실패 이후로 늘 가슴 깊은 곳에 학력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그 이후로 나는 항상 나에게 채찍질만 해왔다. 힘들고 지칠 때면 속으로 '너 또 실패하려고 해?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너도 알잖아?'라고 하며 나를 꾸짖어왔다. 그러면서 '포기'라는 단어를 경멸했다. 또 실패하기 싫었다. '선택'의 순간에도 나는 고집을 부리며 미련하게 힘든 선택을 자처해왔다.
특히 대학교 졸업 후, 2~3년 동안 서울에서 지내며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 사실 내가 회사에 입사한 이유는 여행자금을 위한 목적이 가장 컸다. 그런데 내 성향상 일단 어떤 역할을 맡게 되면 열심히, 완벽하게 해야 한다. 누군가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 성질이 그렇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나에게 주어지는 일은 늘어만 갔고, 남들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에 주변에서 나를 편하게 (우습게) 보는 사람도 늘어만 갔다. 그래도 버텼다. 내가 이왕 선택해서 들어온 것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일기에 매일같이 이렇게 적었다. '좀만 참자. 견디자.' 이렇게 나는 참고 삭히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에 상처를 내는 잔 파도들이 밀려와 찰싹찰싹 나를 때려될 때도 스스로를 위로해주기보다 그저 약해지지 말자고만 외쳤다.
그 후 8개월 간의 장기여행을 잠시 멈추고 떠났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을 뒤돌아보면 한국에서 겪은 사회생활의 몇 배로 더 힘들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겪어야 할 부당한 일들이 많았다. 아직도 그때 일기장은 잘 못 볼 정도로 화가 치밀어온다. 하루하루가 드라마 같은 일상을 살았고 견뎌냈다. 그때도 난 늘 스스로에게 말했다.
'슬기야, 좀만 견뎌. 오늘이 지나면 조금 나아질 거야. 약해지지 말자.'
이런 나를 보고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첫 번째는 "대단하다. 멋지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어?" 두 번째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 그냥 되는대로 살아.." 나도 안다. 둘 다 진심이고 각자의 입장에서 나를 생각해주는 해주는 거라는 걸. 나도 사회가 말하는 '평범'의 기준으로 살아보려고 노력은 해보았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힘들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듯 '사서 고생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외국 생활을 하는 그런 삶을 한국에서의 삶보다 가벼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 책임져야 할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더 독해야 했고, 더 아파야 했다.
이렇게 나의 20대가 지나갔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포기'를 인정하지 못하는 아집에 갇혀 고집만 부렸다. 난 뭐가 됐든 끝까지 버티고 견뎌내면 뭔가는 달라져 있을 줄 알았다. 갑자기 내 인생이 180도 달라져있다기보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멋진 커리어 한 줄, 혹은 도전정신이 강해져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거나.. 뭐 이런 변화 하나쯤은 내게 생길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해왔다. 하지만 내 두 눈에 비친 서른 살의 내 모습은 그대로였다. 때로는 더 별로였다. 그래서 내가 점점 싫어졌고, 내가 뭘 해도 안 되는 것 같았고, 보잘것없는 인생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게 허무했다. 무슨 일이든 해봤자 또 나는 그대로 일 것 같았다.
이렇게 극심한 우울감과 무기력에 시달릴 때 나는 시차가 13시간이나 나는 외국에 있는 친오빠에게 연락을 자주 했다. 오빠는 자신도 그 느낌을 너무 잘 안다고 공감해줬고, 그 어떤 말보다 위안이 되고 믿음이 가는 말을 해줬다.
"오빠, 이 힘든 시간이 언제 끝날까..?"
"아마 더 힘들어질 거야. 그게 힘든 것도 바닥을 쳐야 다시 올라오는 거거든. 점점 더 힘들다는 건 이제 바닥으로 가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역설적이지만 힘들수록 한편으로는 더 괜찮아질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하루하루, 한 주,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오빠의 말처럼 밑바닥을 찍은 내 감정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슬럼프 중에 가장 힘이 되었던 순간은 혼자 걸었던 시간이다. 매일 저녁, 노래도 듣지 않고 꼬박 2시간을 내리 걸었다. 아무리 폭염주의보라 해도 잔잔히 불어오는 여름밤의 바람결을 느낄 수 있었고, 하늘에 드문 드문 박혀있는 별들이 가끔은 인도 판공초에서 보았던 별들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석양이라는 작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던 위로였다. 그 순간만큼은 그냥 그대로의 '나'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전의 나를 인정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슬럼프가 힘든 것은 그 이유를 어떤 명확한 한 가지의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이유라도 확실히 알면 해결하기 수월해지지만 엉켜있는 실타래처럼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결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하지만 결국 그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든 자르든 해야 할 사람은 '나'다. 그렇게 내 감정들이 엉킬 때까지 나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스스로에게 공감은 할지언정 늘 따뜻한 위로보다 차갑게 더욱 채찍질만 해왔다. 그래서 그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 곪았고 이번에 터져버린 것이다. 열심히, 성실히 자신의 일을 하며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보살피고, 지키는 일이었다. 결국 내가 무너지면 내가 지키고 싶던 다른 것들 또한 함께 무너진다.
나를 지키는 일 중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이번 슬럼프 때 가장 치유받았던 시간 중 또 다른 하나는 지나간 나의 일기장을 읽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 혹은 며칠에 한 번이라도 일기를 쓰든 사진을 찍든 나를 위한 기록을 남겨보자. 인간의 '기억'은 불과 몇 분만 지나도 왜곡이 된다. 행복했던 기억보다 힘들고 고생했던 기억이 뇌에 더 강렬하게 자극을 남긴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사소한 행복했던 나에 대한 기억을 자주 잊어버리고 왜곡시킨다. 지금 휴대폰에 사진첩만 보더라도 행복했던 기억은 생각보다 더 잦았다. 물론 힘들 때의 기록도 더욱 필요하다. 기억은 제멋대로 불행의 불행을 더해 한순간에 하찮은 인생을 만들기도 하니까.
슬럼프는 우리의 삶이라는 긴 레이스 속에 예고 없이 장애물처럼 불쑥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그때는 이전의 우리가 남긴 기록을 보며 다시 한번 다잡아보자. 우리가 힘들었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왜 힘든지, 이번에 찾아온 슬럼프가 도대체 나한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잘 들어보자. 분명한 것 하나는 슬럼프라는 놈은 악질이 아니다.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한층 더 단단해진 맷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슬럼프를 겪고 조금은 더 단단한 마음으로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듯이.
슬럼프라는 것도 아무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간을 아무 생각도, 아무런 의지도, 의욕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슬럼프라는 시간이 오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위해 걷고, 뛰고, 넘어졌던 사람들에게만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언제고 찾아올 수 있는 슬럼프를 믿어보기로 했다.
슬럼프 속 우리는 아프지만, 통증 없는 성장은 없다.
힘들고 아프다는 것은 이제 더 단단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즉, 슬럼프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인 것이다.
만약 슬럼프가 찾아왔다면 무조건 피하고 도망가기보다는 그런 슬럼프와 앞으로 싸워야 할 나에게 이렇게 한마디 해보는 것은 어떨까.
"슬럼프가 올 만큼 열심히 살아왔구나. 지금까지 잘 견뎌내 줘서 고마워.
나는 이런 네가 참 멋지고 좋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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