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동안 글로 먹고살며 배운 것
한 사람의 창작물에는 그 사람이 담겨있다. 당시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지향하는 것 등이 녹아있다.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반대로 어느새인가 나도 모르게 변해져 있는 게 사람이기도 하다. 불과 2~3년 전 글을 보더라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5~6년 전 글 속에 나와 지금 내가 쓰는 글 속에 나는 꽤나 다르다.
물론 그 시간 동안 온몸의 세포들은 세월이 날려대는 온갖 풍파를 모조리 받아냈다. 그러면서 내 몸과 마음에는 잔 주름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말 그대로 나는 늙어가고 있다. 과거의 내 글과 지금의 내 글이 달라진 이유는 단순히 그때보다 늙었기 때문일까? 물론 신체적, 심리적 노화에 의한 변화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세월에 의한 변화를 제외하고 나서도, 난 과거의 글과 요즘 쓰는 글의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했다.
과거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것은 바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과거의 내 글에 나는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커리어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이전의 나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흔한 표현으로 쉽게 말하자면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기서 '성장'은 글에 결론을 위해 쓰는 진부한 단어가 아니었다. 정말 진심이 담긴 성장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부터 내 글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람이 10년 내내 '성장!'을 외칠 수 있을까. 특히나 늘어나는 나이와 반대로 늘어나지 않는 수입으로 인해 난 지금 성장보다는 '현실'을 되뇌며 살고 있다.
내 나이 30대 중반. 글 쓴 지 6년. 근래 내가 쓰는 글들은 대부분 '인정'과 '받아들임'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물론 삶을 살며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나와 세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삶은 어떻게든 살아지니까.
그런데 요즘은 '인정', '받아들임'의 미지근하고 건조한 마음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뜨겁고도 녹진한 마음이 그립기도 하다.
6년 동안 글을 써오며 배운 것이 있다. 창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삶이라는 비바람은 시도때도 없이 그 불씨를 위협할 것이다. 그럴 때면 바람 막이를 설치하든 아주 깊은 곳으로 불씨를 숨기든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내 불씨를 지켜내야 한다. 설령 불씨가 꺼졌다 해도 다시 작은 불씨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불씨를 끈 채 살아간다면 그가 만든 창작품에도 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기만의 불씨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창작품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그 빛이 느껴진다. 이것은 곧 창작품의 생명력과도 같다.
돌아보면 그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만의 강력한 불씨가 있었기에 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또한 그 빛을 느껴주셨던 것이다. 그 빛을 느꼈기에 나란 사람과 내 글을 응원해 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가는 내 삶의 이야기들을 바라보며 분명 독자 분들 삶과 마음에도 불씨를 함께 키워나갔을 것이다.
5월 초중순부터 나는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출판 기획서와 샘플 원고 (단행본의 40~50% 분량)를 두 달에 걸쳐 작성을 했다. 게다가 생업인 글쓰기 클래스까지 3개월 동안 중단하고 이 작업에만 집중했다. 이번 투고는 내 글과 어느 정도 색이 맞을 것 같은 출판사만 간추린 후 성심성의껏 메일을 보내고 있다.
아직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을 걸 봐서 아시겠지만, 아직 출판사에서 받은 연락은 없다. 이전에 해봐서 이번에는 조금 덤덤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다. 거꾸로 이전에 해본 경험들과 요즘 하루하루 겪는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매일 심장 위에 무거운 돌이 쿵쿵 올려지는 기분이다. 몸과 마음이 갈린다는 말은 요 근래 내 상태에 딱 맞는 표현이다.
아무리 유명한 맛집이라고 해도 웨이팅은 절대 하지 않는 나에게 '기다림'은 너무나도 쓰고 쓰다. 그런데 이렇게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6년 내내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다. 매번 글을 쓰고 플랫폼에 발행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매달 모집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클래스를 만들고 모집 공고를 내고 기다린다. 그리고 내 글을 알아봐 줄지 그저 넘겨버릴지도 모르는 출판사에 정성 들여 투고를 하고 또 기다린다.
요즘 감정이 극한으로 오고 가는 고통의 기다림 속을 살면서 나는 나에게 별의별 질문을 다 던지고, 혼자 답을 하고 있다.
'글을 쓰며 먹고산다는 건 역시나 욕심이었을까?'
'이제 그만 억지 부리지 말고 글을 떠나야 하는 걸까?'
'아니야. 아니야. 지금 떠나면 너무 억울하지. 조금 더 해볼 수 있잖아.'
'그럼, 어떻게 더 견딜 건데? 너 돈도 벌어야 하고, 이렇게 기다리는 삶을 계속 살야 해. 할 수 있어?'
'하... 그래. 내가 돈은 다른 일을 하면서 벌 수 있어. 근데 내가 어떻게 해야 글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대충 이런 대화를 하루에 자는 시간 빼고 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다. 요즘 내 글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불씨가 사라졌다는 것을. 난 아무도 없는 컴컴한 곳을 향해 끊임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기다리면서 지친 것이다. 난 그동안 내 미소와 내 손짓만 신경 썼지 내 마음속을 잊고 살았다. 빛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깊은 터널 속을 거닐고 있는 요즘, 이 터널을 걸어 나가려고 하니 잊고 있던 내 불빛이 생각났다.
맞다. 어둡디 어두운 터널임을 알고도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내 마음속 불씨 때문이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불씨를 믿고 나는 이 터널 속을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 불씨에서 나는 빛으로 이곳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나의 마음 아주 깊은 곳까지 들여다봤다.
불씨는 잊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씨를 끄고 살진 않았다.
난 여전히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느릴지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숙해지고, 성장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요즘 투고를 보내고 기다리고 있는 내 상황이 떠오른다.
나는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 이 기다림의 경험도, 지나온 기다림과 거절의 경험도 모두 다 내 업의 이력으로, 내 삶의 이력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글에서 내가 늘 말하듯,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바꿀 수 있다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이 너무 좋고, 내 삶을 미친 듯 사랑해서는 아니다.
삶이라는 게 뭐 하나 바꾼다고 쉬워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살아내야 하는 것이 삶의 숙명이라면 이왕 태어난 거 내 삶으로 쭉 살아내고 싶다.
이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올리는 새 글이네요.
출판 기획서와 원고를 작성하느라 브런치에도 글을 올리지 못했었어요.
본문에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 저는 출판을 위해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고행 길을 걷다 보니 안 그래도 생각 부자인 저는 생각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내가 글을 계속 쓰려면, 글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고민하다 보니 이 글을 쓰게 되었어요.
앞으로 제 가슴속에 불씨를 잘 지키며 제 이야기를 부지런히 쓰려고 합니다.
곧 새로운 브런치 북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오랜 시간 제 불씨를 지켜주시고, 함께 느껴주신 브런치 구독자 분들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