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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의 슬픔을 먹고 산다

오직 '나' 하나로 이루어진 '내 삶'이란 존재할까

by 기록하는 슬기

'나를, 내 삶을 사랑하자'

'나로서 내 삶을 살자'

'내 삶에는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위에 쓴 문장들은 여느 sns 포스팅이나 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글이다. 나도 에세이나 sns 포스팅에도 이와 같은 주제, 표현들을 자주 써왔었다. 그래서 한 번 생각해 봤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글이든 말이든 '나를 사랑하자고, 나를 위한 삶을 살자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장들은 현실 속에서 지키기 쉬운 다짐, 약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내 인생에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의만큼 삶이란 일상을 살며 지키기 어려운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나를 사랑하자고, 나를 위한 삶을 살자고' 말한다.


우리 부모님, 부모가 된 내 친구들만 보더라도 삶의 중심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아니다. '가족, 배우자, 자식'이 그 중심에 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새벽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영하의 날씨에 집 밖을 나선다. 자식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아도 버틴다.


얼마 전, 혼자 일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인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사는 게 너무 벅차다.. 근데 애들이 있으니까 일을 쉴 수도 없고.. 당장 애들 학교 보내고 밥 먹일 돈은 벌어야 하니까.. 애들 혼자 키우는 게 너무 힘들 면 이게 맞는 건가 싶다가도, 만약에 내가 애들 없으면 이렇게 제시간에 일어나서 씻고, 밥 하고, 밖에 나가서 일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친구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지금 애들 없으면 삶에 어떤 이유도, 미련도 없을 것 같아."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친구가 혼자 아이 둘을 키우게 된 과정, 그 후에 살아가는 일상을 옆에서 봤기에 고생하는 친구의 몸과 마음이 걱정이 됐다. 그리고 또 동시에 친구의 이야기에, 특히 마지막 한 마디에 깊이 공감했다.


일단 나는 친구와 외부적인 상황은 다르다. 현재 자식도, 배우자도 없다. 나에게 가족은 엄마, 아빠, 친오빠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당장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난 어째서 친구의 "나는 지금 애들 없으면 삶에 어떤 이유도, 미련도 없을 것 같아."이 말에 공감했을까.






7~8년 전에 마음이 아주 많이 힘들던 시기가 있었다. 병원에 가 볼 용기조차 없었고, 몇 개월 정도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져 지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마음이 지칠 때가 온다. 그럴 때면 난 내 삶에 대해 어두운 고민을 한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이 삶은 나를 위한 삶일까? 삶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시작되었는데.. 삶은 무조건 살아내야 하는 걸까?'로 시작된 질문들은 이 답으로 향한다. '삶이란 너무 버겁다.' 그리고 그 어두움이 더 짙은 날에는 '다 내려놓고 싶다'는 말을 혼자 낮은 목소리로 읊조릴 때도 있다.


혼잣말을 하고 나면 참 신기하게도 본능적으로 가족이 떠오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정말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내가 사라진다면 나보다 더 슬퍼할 사람은 내 가족이다. 잠깐 상상만 해도 눈물이 차오른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이왕 태어난 내 삶, 잘 살아보자'는 어려운 다짐을 다시 해본다.


어쩌면 난 온전히 '나'를 위해, 나 때문에 사는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무너지고 싶을 때마다 내 삶을 가장 세게 붙잡아주는 건 엄마, 아빠의 슬픔이었다.

난 나를 위해 살기도 하지만, 때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위해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의 이 생을 살게 하는 강력한 힘은 누군가의 슬픔이지 않을까.

내 삶에 너무 중요하고 소중해서 일상 속에서는 책임이라는 무거움을 쥐여주는 그 누군가,

하지만 나의 아픔과 상실에 대해 나보다도 더 슬퍼할 그 누군가,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지 못할 그 누군가.

그 누군가를 위해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고,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직 나 하나로 이루어진 내 삶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오늘은 이전부터 늘 고민해 왔던 '내 삶'에 대해 글을 써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삶과 일상이어야 '내 삶'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반복되는 세월을 살다 보니 나만을 위한 삶은 존재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내 인생에서 '나'는 가장 중요하지만, 내 인생은 오직 '나'란 사람 하나로 완성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 주고 나를 키워준 사람, 오랜 시간 내 곁을 지킨 사람, 나를 자신만큼이나 아끼는 사람, 나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기뻐해주는 사람, 나의 아픔을 걱정하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

이 사람들을 빼놓고는 '내 삶'을 형용하기 어렵다고 느꼈어요.

나를 지금까지 살아오게 해 준 것도 사람이고, 또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 준 것도 사람이듯이요.

그만큼 사람에게는 사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소수의 소중한 타인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함께 서로의 삶을 아껴나가는 것.

이것이 제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삶의 모양'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키기 어렵더라도 '나를, 내 삶을 사랑하자' 이 다짐은 평생 잊지 말아야 소중한 타인을 내 삶에 일부분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삶을 아끼는 나 자신의 마음을, 내 삶을 아끼는 누군가의 마음을 떠올리며 따뜻한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록하는 슬기, 이슬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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