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매일 흔들리는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나와 당신, 우리 모두에게.
5년 전 12월, 추웠던 어느 날 강남역이었다. 재수 시절 친구 S를 기다리는 내 마음과 몸은 오들오들 떨려왔다. 영하의 기온 때문이기도 했지만 S와 4년 만의 만남에 긴장도, 기대도 한껏 차올라있었다. 사실 재수 종합반을 다닐 시절 나는 S와 함께 했던 기억이 얼마 없다. 단지 같은 반이었고, 지방 출신이었다는 공통점뿐이 없었다. 하지만 서울과 경기도에서도 부자 동네로 알려진 지역의 아이들이 주로 다녔던 우리 학원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재수생은 한 반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고, 우리끼리는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이미 끈끈하게 형성되어있었다. 그리고 특히 S는 재수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나와 상당히 비슷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각자 사는 지방의 학교에서 성적이 상위권이어서 눈은 높아질 때로 높아져있었고, 재수를 하고 둘 다 현실의 쓴맛만 봤었다. 결국 S는 본가와 가까운 곳에 있는 경상도의 한 지방 국립대로, 나는 강원도의 한 지방 국립대로 입학하게 된다.
문자나 전화로는 간혹 연락을 해오며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인연을 이어오고 있던 S는 대뜸 그해 겨울 내게 연락을 해왔다. 서울로 상경을 했는데 얼굴을 보자는 메시지였다. 우리는 약속을 잡았고, 그게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뿔테 안경을 쓴 S는 수줍은 미소를 띠며 여전히 애 땐 모습으로 내게 걸어왔다. 우리는 추위를 피해 급한 대로 가까운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짠!'
우리는 뜨거운 숯불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고 차가운 소주 한 잔을 벌컥 들이켰다. 반가움에 짓던 미소는 잠시 었고, 소주가 한 잔 두 잔 들어가면서 S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어졌다. S는 요즘 우울하다며 자신 이야기를 시작했다. S는 당시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으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공시생이었다. 사실 처음에 S가 공무원 시험 때문에 서울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조금 의아했다. 이전에 S의 꿈은 공무원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S는 한참 동안 자신이 얼마나 요즘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지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러던 S는 너무 본인 이야기만 했나 싶었는지 갑자기 화제를 돌려 내게 질문을 했다.
"그래서 너는 이제 뭐하게? 요즘 알바만 하는 거야? 취직은 안 해?"
"응.. 나 아르바이트해서 저번부터 말했던 '세계 일주'가려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힘들게 돈 벌고 있어."
내 이야기를 들은 S는 내게 '어떤 일을 하는지', '여행은 굳이 왜 가려고 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푹 쉬고는 이 한마디만 남겼다.
"넌 팔자 좋네."
이 말을 듣자마자 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아무런 걱정 고민 없이 마냥 놀 궁리만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 같았다. 그렇지만 '팔자가 좋다'는 말에 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내 팔자는 나쁘지 않다. 나는 대학교 졸업 전까지는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생활했고, 학교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대학교 졸업 후, 공무원을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을 기어코 거절했고, 엄마는 앞으로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 이후 서울로 올라와 몸을 혹사시키며 고된 알바를 해오며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생활을 하고 또 여행 자금을 모으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알바 한 번 해보지 않았으면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공무원 준비를 하는 그 친구한테 들을 이야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기분은 나빴지만 힘들다는 S에게 나는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S는 다시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답답한 마음에 S에게 물어봤다.
"너 이렇게 공무원 시험공부하기 싫어하는데 왜 하는 거야? 꼭 공무원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거야?"
"아니.. 너도 알잖아.. 나 재수도 망하고, 대학교 1학년 때 수능 한 번 더 본 거.. 그때도 또 결과는 별로였잖아. 그래서 이제 부모님 실망시키기 싫어서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거야.. 그렇다고 난 너처럼 여행이 좋다거나 뭐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소주잔 바닥에 남은 소주를 입에 털어놓고 S는 이어서 한마디를 내뱉었다.
"난 답이 없어."
그날 S는 혀가 꼬일 때까지 소주를 마시고 새벽 늦은 시간까지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택시를 타기 전 만취한 S는 "미안해.."라는 말을 남긴 채 노량진으로 향했다. S가 탄 택시가 출발해 내 눈에서 멀어질 때까지 그 거리에서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때 내 기분은 '좋다', '나쁘다'라고 말하기 애매했다. 한편으로는 S가 답답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내가 S에게 연락을 했을 때 S는 이미 노량진을 떠나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 후였다. 그 만남이 S와의 가장 최근의 만남이 되어버렸다.
코끝이 시려오는 계절이 돌아올 때면 가끔 S와 만났던 그날이 생각난다. S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5년 전 S에게 못 해준 말이 생각난다. 아주 만약에 그때의 S를 만나게 된다면 지금의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S가 내게 했던 그 말, "넌 팔자 좋네.."라는 말에 대한 답을 해주고 싶다.
"그래, 나 팔자 좋아."라고.
생각해보니 그때 아르바이트하며 고생 짤짤이 했던 내 팔자는 좋았던 팔자였다. 그때도 난 치열한 고민 끝에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다. 물론 그때부터 고된 알바를 많이 해서 지금 몸은 많이 망가졌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아마 그때 나도 S처럼 내 마음보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했다면 비록 몸은 고생하지 않을지언정 마음만은 매일 그 누구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했던 일들이 결국은 과거에 꿈꾸던 미래의 나에 가깝게 데려다주고 있으니 나는 만족한다. 매일 부정적으로 신세타령, 팔자타령하는 팔자보다는 훨씬 좋은 팔자가 맞았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좋은 팔자'란 꼭 고생을 덜하고, 더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나 자신의 팔자에 만족을 하는지, 더 나아가 내가 좋아할 팔자를 스스로 만들고 또 그 과정 자체를 사랑할 수 있는가가 '좋은 팔자'인지 아닌지의 기준이다.
그러니까 "그때도, 지금도 나는 정말 좋은 팔자다."
그리고 S가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며 했던 말, "답이 없어."라는 말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맞아, 들어보니 답이 없네. 답은 네가 없다면 없는 거야. 근데 반대로 네가 답이 있다면 있는 거야. 그게 답이야."
나도 S와 비슷한 감성이라서, 그리고 비슷한 배경에,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그 답답함이 무엇인지 잘 안다. 그리고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나 또한 답을 못 찾아 인생 최악의 슬럼프를 겪어봐서 더 잘 알 것 같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내 인생에서 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답'이라는 게 여기저기 꽁꽁 숨겨져 있는 게 아니다. '답'이란 애초에 없다. 그냥 내가 하면 그게 답이 되는 거다. 혹시 나의 결정과 행동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그건 '오답'이 되겠지만 세상에 어떤 사람이 늘 '정답'만 만들 수 있을까.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일단 해봐야 안다. 그리고 당장은 '오답' 같다고 느껴져 "괜히 나 그렇게 했나 봐.."라고 했다가 불과 몇 년 뒤 "그때 그렇게 하길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우리들의 인생 아닐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굳이 '정답'을 찾기 위해서 고민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싫어하면서 누군가가 원해서 하는 그 행동은 과연 S가 찾던 '정답'이었을까.
5년이 지난 지금까지 S와 나눴던 대화가 왜 아직도 떠오르는지 생각해보았다. 5년 전 S는 꼭 나 같았다. S는 당시 흔들리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고민을 할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으로 던져졌다. 당시 S가 처음으로 세상에서 맛본 건 '실패' 밖에 없어서 두려웠던 거다.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고민하는 것도, 설령 그것이 무엇인 줄 알았다 해도 다시 도전을 한다는 것이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그런데 S의 마음속에서는 자꾸만 '이건 아니라고.. 힘들다고..' 그렇게 외치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S는 공부 자체가 힘든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무시해야 하는 그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팔자, 신세를 자꾸만 부정적으로 봤던 것이다.
당시 나는 겉으로는 '세계여행'을 갈 거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수천번 이상을 고민했고, 매일 불안했고 심지어 가기 직전까지도 망설였다. 여행은 여행이니까. 여행을 간다고 모든 사람이 다 유명해지고, 여행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직업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2년 간의 긴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사실 나는 매일 흔들리고 있다. '난 작가가 될 거야.', '글로 돈을 벌고 싶어.'라고 말하지만 하루에 몇 번이고 눈 앞이 컴컴한지 모른다. '그전 직장에서 붙잡을 때 갔어야 했나..?', '엄마가 말한 대로 지금이라도 안정적인 직장에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앞으로 몇 년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시간들을 견녀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의심 뒤에 결국은 '일단 여기까지 온 거 믿고 끝까지 가보자'라는 말로 나를 겨우 토닥이고 견뎌낸다. 이게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매일 글을 쓰고, 이런 나를 믿어주는 일.
5년 전 S에게, 그리고 여전히 매일매일 망설이고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말해본다.
'우리가 5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매일 흔들리고 망설이듯, 아마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것이라고.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니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내 마음'이 말하는 '답'을 들어보기를, 그리고 스스로의 '팔자'를,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보자고.'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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