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목적을 말하니까 결과물이 달라졌다

목표 지향적 인지: "이거 고쳐줘" vs "이건 이런 사람을 위한 거야"

by 사심가득

지난 글에서 AI가 만들어준 커플 심리검사 UI 이야기를 했습니다. 파스텔 알록달록, 이모지 범벅, "(하트)커플 궁합 테스트(하트)". 기능은 돌아가는데 감각적으로 전부 어긋난 결과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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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발견한 후, 저는 수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어요.




삽질의 연속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하나씩 지적했습니다.


"컬러 너무 화려해. 차분하게 바꿔줘."

바꿔줍니다.


"이모지 빼줘."

뺍니다.


"문항이 한 페이지에 너무 많아. 3개씩 나눠줘."

나눠줍니다.


"리커트 척도 버튼이 세로로 되어 있는데, 가로로 바꿔줘."

바꿔줍니다.


"제목이 너무 가벼워. '관계 이해 검사'로 바꿔줘."

바꿔줍니다.


한 가지 고치면 또 다른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수정 요청이 열 개를 넘어가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다 내가 직접 만드는 게 빠르겠다.




방식을 바꾸다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뭘 원하는지 AI는 모른다는 걸요.


저의 머릿속에는 완성된 그림이 있었습니다. 차분하고 신뢰감 있는 톤, 결혼을 앞둔 커플이 진지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느낌. 그런데 그 그림을 AI에게 전달한 적이 없었어요. 그냥 "컬러 바꿔", "레이아웃 고쳐"만 반복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디테일을 지적하는 대신, 목적과 맥락을 먼저 설명하기로 했어요.


"이 서비스는 결혼을 결심한 커플을 위한 거야. 가벼운 궁합 테스트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을 함께할 사람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점검하고 싶은 마음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톤이 가볍거나 귀여우면 안 돼. 차분하고 신뢰감 있어야 해."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UI를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한 번에 달라진 것들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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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는 모노톤으로 바뀌었어요. stone 계열의 차분한 색감이지요.


이모지는 사라졌고, 문항은 3개씩 페이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리커트 척도는 가로로 정렬되어 있었고, 제목은 "관계 이해 검사"였어요.


제가 하나하나 지적했던 것들이 전부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하나 말한 적이 없었어요. 목적만 설명했을 뿐인데 알아서 잘 하더랍니다.


목적을 알려주니 디테일은 따라오더라고요.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심리학에 '목표 지향적 인지(Goal-Oriented Cogni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목표가 명확할 때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처리한다는 이론이에요. 목표가 있으면 관련 없는 정보는 걸러내고, 관련 있는 정보에 집중하게 됩니다.


AI도 비슷하게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커플 심리검사 UI 만들어줘"만 들으면, AI는 가장 일반적인 연상을 따라갑니다.


커플 → 로맨틱 → 파스텔 → 이모지


이게 틀린 건 아니에요. 아무런 맥락이 없으니까 평균적인 선택을 한 거죠.


그런데 "결혼을 앞둔 커플이 진지하게 관계를 점검하려고 쓰는 서비스"라고 말해주면 어떨까요? AI는 이 맥락에서 어떤 선택이 적절한지 추론할 수 있게 됩니다.


진지함 → 차분한 톤 → 모노톤 컬러 → 이모지 자제


같은 AI, 같은 요청인데 결과가 다릅니다. 차이는 맥락의 양이었어요.




의도의 번역자

지난 글에서 "세상의 의도를 AI에게 번역하는 사람이 되자"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번 경험을 하면서 그 번역이 구체적으로 뭔지 알게 됐어요.


목적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


누가 쓰는지, 왜 쓰는지, 어떤 느낌이어야 하는지. 이걸 먼저 말해주면 AI는 나머지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걸 생략하고 디테일만 지적하면, 끝없는 핑퐁의 굴레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요. AI를 잘 쓰는 사람은 결국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다음 글에서 그 이야기를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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