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내가 평균 이상이라고 믿고 싶을까

자기고양동기

by 사심가득
"나는 하면 되는 사람이야."


이 말, 한 번쯤 스스로에게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아직 안 했을 뿐이지, 하면 된다. 나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지금은 바쁘거나, 컨디션이 안 좋거나, 타이밍이 안 맞을 뿐이다.


이 믿음은 꽤 위안이 된다. 문제는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실제로 '해서 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하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깨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상한 선택을 한다. 안 한다.


자기고양 동기: 나를 좋게 보고 싶은 본능

심리학에서는 이 경향성을 '자기고양 동기(self-enhancement motive)'라고 부른다. 자기고양 동기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의미한다.


이 동기는 단순한 허영심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본능에 가깝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자기고양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감 있는 개체가 더 적극적으로 자원을 확보하고, 짝을 찾고, 위험에 대응했다. 약간의 과대평가가 오히려 생존 확률을 높인 것이다.


문제는 이 본능이 현대 사회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작동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평균 이상일 수는 없다

자기고양 동기의 가장 유명한 증거가 '평균 이상 효과(better-than-average effect)'다.


1981년, 스웨덴의 심리학자 올라 스벤손(Ola Svenson)은 미국과 스웨덴 운전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운전 실력은 다른 운전자들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입니까?"


결과는 놀라웠다. 미국 운전자의 93%가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답했다. 스웨덴에서도 69%가 같은 답을 했다.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평균이라는 건 절반은 그 위, 절반은 그 아래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건 운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 공정하고, 더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심지어 자신의 미래가 남들보다 더 밝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적 낙관주의(unrealistic optimism)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우리 뇌는 기본적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도록 설정되어 있다.


"잠재력 있는 나"를 지키는 방법

이는 미루는 행위와 연결된다.


"나는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믿음은 자기고양의 한 형태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잠재력에 대한 믿음. 이 믿음은 기분 좋다. 문제는 이걸 유지하려면 시험대에 오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만일 시험을 안 보면? "나는 하면 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다. 시험을 보면? 두 가지 결과가 나온다. 잘 보면 증명되고, 못 보면 깨진다.


잠재력은 증명하기 전까지만 무한하다. 한 번이라도 시험대에 오르면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시험대 자체를 피한다.


미루는 결정은 잠재력을 보존하는 전략이다.


마감 직전까지 미루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결과가 안 좋아도 "제대로 안 했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진짜 실력은 드러나지 않았다.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믿음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런 자기고양 동기는 자기 이미지를 보호하려는 전략 중 하나다. 눈치 빠른 독자들을 이미 알아챘겠지만, 지난 글들에서 다룬 셀프 핸디캐핑, 자기가치 이론과 같은 구조다.



성공은 내 덕, 실패는 남 탓

자기고양 동기는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심리학자 데일 밀러(Dale Miller)와 마이클 로스(Michael Ross)는 1975년 연구에서 사람들이 성공과 실패를 다르게 설명한다는 걸 발견했다. 성공하면 "내가 잘해서", 실패하면 "운이 없어서" 또는 "상황이 안 좋아서".


이걸 '자기위주 귀인 편향(self-serving attribution bias)'이라고 부른다. 좋은 결과는 내 능력 덕분, 나쁜 결과는 외부 탓. 이렇게 해석하면 자기 이미지가 보호된다.


셀프 핸디캐핑은 이 귀인 편향을 '미리' 설계하는 것이다. 실패하기 전에 외부 탓할 거리를 만들어두는 전략. "시간이 없었어", "컨디션이 안 좋았어"라는 핑계는 실패를 외부 귀인으로 돌리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자기고양의 대가

자기고양은 단기적으로 기분을 좋게 해준다. 그러나 셀프 핸디캐핑이 그랬듯, 자기고양도 장기적으로는 대가가 따른다.


첫째, 현실과 괴리된다.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믿으면 개선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하니까 바꿀 이유가 없다.


둘째, 피드백을 거부하게 된다. 부정적 피드백은 긍정적 자기 이미지를 위협한다. 그래서 무시하거나, 피드백을 준 사람을 탓하거나, "저 사람이 날 이해 못 하는 거야"라고 합리화한다.


셋째,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실패를 외부 탓으로 돌리면 배울 기회를 잃는다. "운이 없었어"라고 생각하면 다음에 뭘 바꿔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하면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영원히 안 하고, 실패해도 배우지 못하고, 점점 현실과 멀어지는 것. 이게 자기고양의 역설이다.


다음 글 예고

이번 글에서는 자기고양 동기를 다뤘다. 우리가 왜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미루기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상황이 생긴다.


"나는 하면 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안 했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한다. 머릿속에서 뭔가 불편해진다. "나는 하면 되는 사람인데, 왜 안 했지?"


심리학에서는 이 불편함을 '인지부조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 뇌는 이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놀라운 합리화 능력을 발휘한다. 다음 글에서는 미루기 이후에 찾아오는 변명의 심리학을 살펴본다.


참고문헌

Alicke, M. D., & Govorun, O. (2013). The better-than-average effect. In The Self in Social Judgment (pp. 85-106). Psychology Press.

Miller, D. T., & Ross, M. (1975). Self-serving biases in the attribution of causality: Fact or fiction? Psychological Bulletin, 82(2), 213–225.

Svenson, O. (1981). Are we all less risky and more skillful than our fellow drivers? Acta Psychologica, 47(2), 143–148.

Sedikides, C., & Gregg, A. P. (2008). Self-enhancement: Food for thought.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3(2), 102–116.

Weinstein, N. D. (1980). Unrealistic optimism about future life event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9(5), 806–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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