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LL Feb 09. 2023

지름신이 문제집으로 왔다

  한 번에 책 한 권씩만 쥐고 읽자는 올해의 결심은 시작부터 와장창 깨져버렸다. 지금 내 머리맡에는 읽고 싶다고 빌려놓은 책이 한 보따리다. 문제는 욕심을 자제해서 이 정도라는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고, 나의 속도는 욕심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 모든 책을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명분이 생겼다. 당분간 나는 모든 것을 끊고 하나에 올인하기로 했다. 언제? 십 분 전에.




  계약직 사서가 된 이후 사서직 공무원은 나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다. 6월까지 근무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준비해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난 김에 전년도 시험 정보를 검색해보기로 했다. 근무하는 도서관에는 올해 새로 임용된 선생님이 근무하고 있다. 막연히 연말쯤에 시험을 봤을 거라고 생각하고 작년 시험정보를 알아보기로 했다. 나의 검색능력은 보잘 것 없지만, 다행히 사서 커뮤니티가 있다.


  사실 이 커뮤니티는 나에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곳이다. 나에게 사서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며, 사서가 되는 것을 쌍수 들고 반대했던 사람. 알고보니 그 사람이 이 커뮤니티의 주요 운영진이라는 사실을 퇴사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귀여운 배신감과 함께 그의 진심어린 염려가 뒤늦게 전해져 왔다.


  당사자는 모를 훈훈함을 느끼며 카페에 입장한 내 앞에 갑자기 올해 시험정보가 쑥 들어왔다. 의도했던 바-시험과목-는 성취할 수 있었으니 작년 정보든 올해 정보든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가당찮은 호승심이 갑자기 샘솟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험 일정과 근무 일정을 비교해 보았다. 장애물 없음. OK!


  시험을 준비하려면 어떤 게 필요하지? 교보문고에서 '지방직 사서 공무원'을 검색해 보았다. 솔직히 무엇이 최상의 선택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나는 검색 무능력자에 귀차니스트다. 최소한만 생각한다면 과목별 기출문제집만 구입하면 되겠지만, 한국사 같은 건 기출문제만 풀어본다고 점수가 올라가는 영역이 아니다. 한국사, 자료조직개론, 정보봉사개론은 가벼운 이론서를 겸한 책을 장바구니에 같이 담았다.


  최소한으로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장바구니는 3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담고 나서 빼려고 했는데, 뺄 게 없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면서 책도 거의 구입하지 않는 삶을 살았는데. 아주 오랜만에 교보문고에서 플렉스를 했다. 문제집 플렉스. 이건 못 참지.




  4개월 남은 시험에 일을 병행하면서 붙겠다는 대책없는 계획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경.험.삼.아. 사서직 공무원을 준비해보려고 한다.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고, 문제 푸는 것도 좋아하니까. 좋아한다는 거지 점수가 높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공부를 취미로 해보려고 한다.


  집중하기 위해서 당분간 책을 포함해 모든 걸 끊어야 한다. 30만원 플렉스 할 때만 해도 그럴 자신이 있었는데, 쌓여있는 책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용띠 사서 다이어리>는 진짜 읽어야 할 것 같은데.'따위의 마음으로 나는 책을 놓을 수 있을까? 독서모임에 당분간 못 나온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신용카드로 긁어서 감이 없는 것 같다. 체크카드로 바꿔? 말어? 그것이 문제로다. 어쨌든 저질러 버렸다. 이왕 시작한 취미생활, 부디 후회없이 즐기기를 바란다. 플렉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말로는 끝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