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잃어버린 자들이 가족을 이루는 과정
*스포일러 있습니다.
90년대 생들에게는 잊지 못할 일요일 아침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 방영되던 디즈니 만화동산은 그 당시 아이들을 알람 없이 깨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디즈니의 역작, 라이온 킹은 막내 고모의 집에서 처음으로 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나는 “하쿠나 마타타” 장면을 좋아했다. 심바가 아버지인 무파사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아픔을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누군가의 성장 과정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그게 사자일지언정.
무파사는 죽은 후에도 사자 무리 사이에서 어진 선왕으로 기억에 남으며 존경을 받았다. 이번에 나온 “무파사: 라이온 킹”은 어린 사자로 돌아간 그의 성장기를 보여주었다.
어느 폭풍우 치는 밤, 폭풍을 무서워하는 심바의 딸인 ‘키아라‘와 심바의 오랜 친구인 ‘티몬’과 ‘품바’, 그리고 무파사의 조언자였던 ‘라피키’가 함께 동굴 속에서 비를 피하게 된다. 키아라의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 라피키는 그녀의 할아버지인 무파사의 서사를 들려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무파사는 부모님과 함께 아름다운 낙원인 ‘밀레레’를 찾는 여정 중에 있었다. 그러다 홍수에 휩쓸려 부모님과 헤어짐과 동시에 타카가 있는 곳까지 떠내려 오게 되었다. 이 때, 물에 빠져 죽을 위기를 넘긴 무파사에게는 물을 무서워하는 트라우마가 남게 되었다.
무파사는 이러한 약점으로 인해 또 다른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백사자 무리에게 막다른 폭포 앞까지 쫓기면서 뛰어내리는 것이 두려워 무리하게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등 말이다. 후에 백사자 무리의 대장, 키로스와의 격돌에서 그는 또다시 물속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그를 이끌었을까? 그는 결국 키로스를 수장시키면서 승리를 거둔다(물속에서 빠져나올 때는 타카의 도움도 있었지만.).
키아라는 늘 존경의 대상으로 인정받았던 할아버지인 무파사도 자신과 비슷한 약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우리 부모님, 또 부모님의 부모님도 모두 비슷한 삶을 살았다. 삶이란 위기의 순간에 무너지기도 하고, 또 단단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어린 키아라도 깨닫게 된 것이다.
영화의 막바지, 무파사의 시련이 끝나가는 순간, 키아라는 그가 했던 것처럼 두려움을 이겨내고 폭풍이 휘몰아 치는 세상 앞에 힘차게 포효한다.
맹자의 어머니는 최적의 교육 환경을 위해 세 번의 이사를 감행하였다(맹모삼천지교). 무파사에게는 그를 훌륭하게 키워낸 양어머니 ‘에셰’가 있었다(무모삼천지교). 무파사는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에 암컷 무리와 지내는 것만이 허락되었다. 덕분에 메뚜기와도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인자하고 너그러운 타카의 어머니 에셰와 지내면서 멀리서도 사냥감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법, 생존을 위한 사냥법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왕이자 타카의 아버지인 ‘오바시‘는 왕좌를 이어받을 타카에게 무리를 지키는 수사자의 역할, 즉 낮잠을 자는 것에 대해서 교육하였다. 백수의 왕인 수사자의 낮잠을 나는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 낮잠을 잘 수 있을 만큼 무리가 안정적이고, 타 무리를 경계하지 않을 정도의 강한 힘을 가진 것임을 간접적으로 다른 무리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집단에나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타카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타 무리에 위협이 되는 지배자의 역할에 대해 배운 것뿐이다.
여기서 드러난 중요한 점은 무파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캐릭터였다는 것이다. 한 때 다른 무리의 왕자였음에도 부모를 잃고 타 무리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었을 때, 사냥을 암컷의 책무로 치부하지 않고 에셰의 교육을 모두 습득하였다.
누구의 교육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무파사와 타카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다만, 무파사와 타카가 사는 곳은 광활한 사바나였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사냥의 주체가 되는 암사자의 교육이 생존에는 더 유리했을 뿐이다.
창세기 1장 2-3절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타카는 물속에서 무파사를 구할 때도(두 번이나), 그를 배신하고 누우 떼 속으로 떨어뜨릴 때도 발톱을 세웠다. 제 손으로 형제를 구하고, 제 손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의 스카의 서사가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설정은 타카가 있었기 때문에 무파사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훌륭한 능력과 성품을 지녔지만 타카의 그림자가 되는 것만이 허락된 무파사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은 타카로 인해 그에게 내재된 왕의 자질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어둠이 있기에 빛은 더 밝게 빛날 수 있음을 저명히 보여주는 전개라고 할 수 있다.
타카는 단 한 번도 무파사를 이겨본 적은 없지만(처음에는 무파사를 봐준 것이었지만) 그를 시기질투하지 않고,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오바시의 사상이 이미 깃들어 있었을 수도 있다. 자신은 왕, 사라비는 왕비라고 당연히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너무 순수했던 것일까? 인생 처음으로 욕심을 낸 사라비였는데, 연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은 무파사에게 어머니 에셰 뿐만 아니라 그녀마저 뺏겼을 때는 절망에 빠질만했다고 그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해주고 싶다.
질투와 열등감으로 인해 결국 백사자 무리에 합류하여 무파사를 배신했던 타카는 무파사에게 닥친 위기의 순간에 단 하나뿐인 형제를 지키기 위해 백사자 키로스와 대적하면서 좌측 눈에 상처가 남고 말았다. 이때의 상처는 단순히 싸움에 흔적이라기보다는 그가 평생 짊어져야 할 ‘배반의 흉터(scar)’임을 상징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지상 낙원 ‘밀레레’는 생명이 순환하는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여기서 말하는 낙원은 모두에게 행복한 천국 같은 공간이 아니다. 사바나의 평화란,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공존하며 적정 개체수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부분은 거시적인 관점의 평화로 이해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라이온 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생명의 순환이지만, 개개의 생명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 또한 중요하게 조명한다. 그 속에 존재하는 약육강식, 선악의 공존도 결국은 순환의 일부임을 말해준다.
무파사가 심바에게, 심바가 키아라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유산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라이온 킹이니까 ’생명의 순환‘이 아닐까요?”라고 답한다면, 나는 “그건 너무 진부해요 거창해요.”라고 반박하고 싶다.
무파사는 이런 대사를 남겼다.
“길을 잃어야 길을 찾게 되지.”
동시에 ‘라이언 킹’에 나온 라피키가 전하는 메시지를 떠올린다.
”과거의 실수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를 살아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련과 위기 앞에서 현재를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선왕이 주는 지혜의 메시지가 아닐까?
‘무파사: 라이온 킹’은 기존의 라이언 킹에 있는 요소를 복선으로 삼았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떡밥 요소를 잘 회수해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전개로 이어졌던 점이 좋았다.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에서는 “Circle of life(바바리 치와와 등..)”,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Hakuna matata”, “The lion sleeps tonight”, “I just can’t wait to be king”등의 명곡을 남겼다. 이 곡들의 감동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만 “I always wanted a brother”, “Tell me It’s you“, “We go together” 세 곡은 개인적으로 참 잘 만들었다고, 무파사의 대표곡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형제가 된 기쁨을 표현한 어린 사자들의 심정, 사라비와 무파사가 부르는 사랑의 곡,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된 그들의 여정을 담은 곡들이다. 영화를 감상한 후에 꼭 다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여러 가지 삶의 메시지가 주인공 심정을 대변하는 좋은 곡들이 와닿았던 킹 중의 킹, 무파사. 디즈니는 또 이렇게, 역시나 잘했다(이러니 못 잃지..).
Feat. 인생은 에셰가 아닌 사라비처럼, 배우자를 잘 고르는 안목도 중요하다.
*라이온 킹의 첫 실사화에서는 아무래도 동물이다 보니 사람보다 표정이 풍부하지 않다는 혹평이 있었다. 사자들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사나 목소리로만 즐거움, 두려움, 사랑의 감정들을 연기하니 기괴하다는 평이었다.
이를 적극 수용했는지, 실사화 라이온 킹 보다는 훨씬 풍부한 표정과 감정표현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