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왔노 — 어머니는 늘 그렇게 시작한다
왜 또 왔노 — 어머니는 늘 그렇게 시작한다
나는 오늘도 효자를 흉내 냈고,
어머니는 오늘도 나를 자랑할 준비를 하셨다.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시계는 새벽 5시.
다른 사람들에겐 이른 시간일지 몰라도,
우리 집에서는 벌써 늦은 시간이다.
세수를 하고, 조용히 부엌으로 간다.
자고 있는 아내가 깰까 봐 발걸음을 낮춘다.
오늘 어머니께 가져갈 반찬은
양배추쌈, 단호박죽, 순두부 달걀찜, 양념 고기.
전날 밤 미리 준비해 둔 반찬통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국물 샐까 봐 테이프로 꼭꼭 눌러 덮는다.
냉장고 문을 천천히 열고
음식들을 정리하며
어머니의 입맛이 떠오른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건 쉽게 맞추지 못한다.
차에 오르자마자 내비게이션은
늘 가는 그 길을 안내한다.
지금은 바쁜 출근길도 아니고,
어디 놀러 가는 길도 아니다.
‘엄마 댁’
주소를 누르지 않아도, 마음이 이미 알고 있는 길이다.
시골로 향하는 길은 조용하다.
논밭 사이로 안개가 낮게 깔려 있고,
차 안에는 내 숨소리만 울린다.
집에 도착하면
대문은 어김없이 반쯤 열려 있다.
“엄마!”
내가 부르면
어머니는 고추밭 쪽에서 고개를 드신다.
햇볕을 피하려 눌러쓴 모자 밑으로
이마엔 땀이 맺혀 있고,
등은 지난주보다도 더 구부정해 보인다.
“또 밭일이에요, 엄마. 아침도 안 드시고…”
“니 온다고 해서 문만 열어두고 나왔다.”
말은 간단해도,
그 한마디에 담긴 반가움과 기다림은
언제 들어도 가슴을 찌른다.
나는 밭으로 들어가
고추 따기를 돕는다. 힘들다
무릎을 굽히고, 손을 바삐 움직인다.
햇살은 따갑고, 땀은 눈가로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보다 더 따가운 건
어머니의 손이었다.
고추를 하나하나 따는 그 손은
마디마디가 굵고,
살갗은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엄마, 허리 더 굽으신 거 같아요.”
“밭이 그렇지 뭐.”
밭에서 고추를 따던 어머니가 문득 웃으시며 아내 이야기를 꺼내신다
“니 아내 처음 왔을 때 기억나나?”
결혼하고 처음 시골집에 온 날,
어머니는 아내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아가, 밭에 가서 오이 두 개만 따오너라.”
“네~”
맑게 대답하고 밭으로 향한 아내.
하지만…
도시에서만 자란 아내는
밭에서 뭘 따야 하는지 몰랐다.
이게 오인가… 저게 오인가…
결국 한참 뒤,
긴 줄기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어머니, 이 오이… 좀 이상하게 생겼어요.”
어머니는 그걸 보자마자
배꼽을 잡고 웃으셨다.
“얘야, 이건 오이가 아니라… 마늘이다.
오이는 땅속에 박혀 있는 게 아니라
줄기에서 따는 거야~”
아내는 그날 처음으로
오이는 뽑는 게 아니라
‘따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그 후로 몇 년이 흘렀다.
이제 아내는 오이가 열려 있는 줄기를 보면
한눈에 알아본다.
비닐봉지에 예쁘게 골라 싸가며
말없이 트렁크에 넣는다.
어머니는 그걸 보며 말하신다.
“이제 오이를 땅에서 캐서 가져오진 않으니 됐다.
따서 챙겨가는 것만 해도…
나는 그게 참 기특하다.”
그리고는 쿡쿡 웃으신다.
그 웃음 안엔,
며느리에 대한 정과 애정이
살짝 배어 있었다.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어머니는 내가 가져온 반찬통을 열어 본다.
하지만 대개는
말없이 옆으로 밀어두신다.
“이건 동생 줘. 걔 입맛에 맞을 거야.
그 말에 괜히 민망해진다.
나는 매주 나름 정성껏 준비했는데
입맛 맞추는 일은 늘 어렵다.
동생 이야기가 나오면
어머니는 조심스럽고도 단호해진다.
혼자 사는 동생이 걱정된다고.
요즘 얼굴도 자주 못 본다고.
나는 대꾸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반찬통 뚜껑을 닫는다.
점심 식탁 위에는
어머니가 준비한 된장찌개, 시래깃국, 고등어조림이 올라온다.
“이걸 다 언제 하셨어요. 허리도 아프시다면서.”
“밥 안 먹고 어떻게 살겠노.”
말끝은 툭하지만,
그 안엔 당신이 아침부터 부엌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걔가 올지도 몰라서 미리 해놨다”는 말은
이제는 익숙하다.
식사 도중, 어머니는
내 그릇에 반찬을 계속 덜어주신다.
“너는 너무 마른다. 회사 일 힘드냐?”
“괜찮아요. 그냥 요즘 조금 피곤한 정도예요.”
“피곤해도 밥은 먹어야지.”
그 말이 어쩐지 울컥하게 만든다.
요즘 나는 힘들었다.
잠도 잘 못 자고,
출근도 버거웠고,
퇴직 이후의 미래는 흐릿하고 막막했다.
그걸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아신 걸까.
점심을 마치고
고추 자루와 반찬 가방을 트렁크에 싣는다.
어머니는 반찬통을 손에 들고 말한다.
“이건 너 가져가고, 저건 걔 주고.”
대문을 나서는 나에게 한 말씀 하신다
" 오이 좀 많이 케 가지? ㅎㅎ
매번 그 말.
매번 같은 분배.
그런데 이상하게,
그 속에 서운함보다는
‘엄마의 방식’이 느껴진다.
사랑을 정확히 나눌 수는 없고,
사랑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엄마는 그냥 오늘도
그렇게 살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엔 고추의 매운 향,
그리고 반찬 가방에서 배어 나온 된장의 냄새가 섞여 있다.
나는 오늘도 효자를 흉내 냈고,
엄마는 오늘도
자식을 기다리셨다.
이제는 주말이 되면,
나는 다시 아들이 된다.
“나는 오늘도 효자를 흉내 냈고,
어머니는 오늘도
나를 자랑할 준비를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