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혜화동오로라 Nov 06. 2019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등장


 추운 겨울, 조카들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날이었다. 잠자리는 괜찮은지 이불은 덮고 자야 감기에 걸리지 않을 텐데, 깨워서 화장실을 한 번 더 다녀올까, 다리나 팔이 서로의 몸에 엉겨 붙어 있으면 바로 눕혀 재우고 저 멀리 내동댕이 친 배게도 머리에 다시 받쳐주는 등 자면서도 조카들의 소리와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하느라 밤새 거의 못 자고 피곤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 밤,


 이불을 조카들 턱 아래까지 덮어주는데도 작은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올까 바깥쪽 이불을 꾹꾹 누르다 왈칵 눈물을 쏟았다. 조카들에게 향한 꾹꾹꾹 나의 손길이 자라면서 내 이불을 덮어줬던 할머니의 꾹꾹꾹 손길과 오버랩이 되어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뚫고 내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조카들이 깰까 봐 움직이지도 못하고 나는 그 자세 그대로 소리 죽여 울고 말았다. 과거의 따뜻한 기억과 그리움이 이토록 갑자기 파고들어 마음이 점령당하는 때가 나도 생기더라.




 옛날 기와집 큰방에서 첫째 언니부터 넷째 동생까지 한 이불을 덮으며 잤고 맨 바깥쪽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자리였다. 추운 겨울, 아프도록 뜨거운 방바닥과 무거울 정도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는데도 혹시라도 추울까 감기 들까 자다가도 자신보다 손녀들인 우리들의 잠자리를 챙기셨던 할머니. 채 뜨지도 못한 눈으로 상체를 일으켜 손녀들의 이불을 늘 끌어올려 덮어주셨고 바깥 이불 단속도 잊지 않으셨다. 야단도 치시며 혼나기도 많이 혼났지만 할머니 손길의 깊은 뜻을 지나고 나니 알겠다.


 이와 비슷하게 과거 어떤 순간들이 사진처럼 영상처럼 스쳐 지날 때가 있다.  


 학교 들어가기 전 미취학 아동이었으니 아마 6-7세 정도 무렵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엄마나 아빠 보호 없이 언니 동생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고 강에서 물놀이를 하며 어린 시절을 자유롭게 보냈다. 집에서 숲으로 가는 길, 숲에서 집으로 가는 길. 우리는 항상 2차선 짧은 도로를 건너가야 했다. 신호등이 없었고 바로 코너가 있는 곳이어서 아이들이 혼자 지나가기에 위험한 구간이다. 나는 거기서 종종 자동차와 사고가 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 사고 없이 여러 차례 지나간 것이 신의 큰 보호하심이라 생각한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 도로에서 몇 차례 자동차가 ‘끼익’했고 실제로 자동차와 부딪친 것은 세 번 정도였다. 그때마다 어린 나의 반응은 놀라 주저앉아 우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도망가 근처 건물에 도둑고양이처럼 숨어드는 것이었다.


 물론 잘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어릴 때는 모든 문제가 다 나의 잘못으로만 여겨져 도망치고 숨기에 바빴다. 어떤 어른은 심한 욕설을 해대며 감정표현을 했고, 어떤 어른은 ‘괜찮아? 잘 보고 다녀야지’ 한마디 건넸다. 그중 기억에 나는 한 어른이 있는데 자동차와 가벼운 접촉사고 후 근처 빌라 1층 빈 공간에 숨어들은 나를 찾아내신 한 아저씨이다. 더운 여름이었고 셔츠와 넥타이 양복차림에 조금 몸집이 있으신 말끔한 아저씨는 땀을 비 오듯 쏟으시면서 나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쪼그려 앉아 따뜻한 목소리와 환한 웃음으로 괜찮다며 내 손을 끌어당기셨다. 다친 곳은 없는지 몸 이곳저곳을 살피셨고 종이에 전화번호를 적어주셨다. 혹시 나중에라도 아프고 문제가 있으면 전화를 달라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를 건네받으니 그제야 안심하시고 가셨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아이였지만 지나고 나니 알겠다. 참 좋은 어른이었구나.


 입가에 옅은 미소와 반달 눈웃음을 짓게 되는 좋은 기억 외에 얼굴이 굳어지고 눈이 힘이 한껏 들어가는 나쁜 장면들도 몇 있다. 부당하고 무례하게 어린 나를 함부로 대했던 나쁜 어른들에 대한 기억, 영화에도 희극이 있고 비극이 있듯 우리의 삶에도 희극과 비극 사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때 그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때 그 삼촌은 나쁜 사람이었다.

그때 그 이모는 나를 사랑해주었고 그때 그 고모는 나를 학대했다.

그때 그 오빠는 나를 진심으로 위해 주었고 그때 그 언니는 나를 이용했다.

그때 그 선생님은 나에게 친절했고, 그때 그 어른은 나에게 무례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사람 볼 줄 몰랐던 어릴 때 나는, 우리는 바보같이 순진했다. 잘못이 잘못인 줄도 몰랐고 부당해도 부당한 줄 몰랐다.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어린 우리들에게 자기 멋대로 말하고 행동했던 어른들의 검은 뒷모습에 우리는 이렇게 학대당해왔다.  ‘지나고 나면 다 안다’라는 어른들의 말 뜻을 나도 어느새 알아가고 있다.


우리집에서 자고 갔던 날, 조카들


나도 이제 어른, 지금까지 좋은 사람이었나 돌아보게 된다. 단편적인 기억이 이리도 오래도록 남으니 조카뿐 아니라 주변 아이들에게도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가 우리의 아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