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기장에 '쓸 만한' 생각이 없다

005. 생각하는 것과 생각나는 것의 차이

by 느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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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이 없기 쉽지가 않다


"나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일이 쉽지가 않다. 채우는 것만큼 비우는 일도 어렵다.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우리는 굳이 시간을 내서, 때로는 돈을 내서 명상을 한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하루를 보내는 데 쓰이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일도 꽤 에너지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꼼짝없이 앉아 머리 속만 굴려도, 금새 배고파지는 게 그 증거다.


내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생각이 노크를 한다. 이런 생각들이다. ‘졸려, 배고파, 아침은 뭐먹지? 점심은 뭐먹지? 커피 먹고 싶다, 저녁은 뭐먹지? 몇 시에 잘까? 운동을 할까 말까? 게임을 할까 말까? 숙제를 언제 하지?... 졸려. 배고파. 내일 아침은 뭐먹지?’ 별일 없는 하루에도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나의 무의식이 말을 건다.


그런데 이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나?


보통 잡-생각이라고 부르는 그 생각 말이다. 잡생각은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른다. ‘잠깐, 오늘 수요일이니까 웹툰 올라왔겠다. 잠깐 그거 볼까? 맞다, 아까 카톡 왔었는데 뭐라고 했었지?’ 잡생각은 끊임없이 뭔가 행동을 지시하고, 하던 일을 중단하게 만든다. 나는 의심 없이 떠오르는 생각대로 휴대폰을 열고 어플을 실행시킨다.


그렇게 떠오르는 생각을 하고, 그때마다 해야 할 일을 하며 바쁘게 하루를 보낸 날은 자기 전에 일기장에 도통 쓸 말이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도 챙겨먹고, 갑자기 먼지가 거슬려서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일정 확인도 하고 바쁘게 보낸다. 그날 일기장에 ‘오늘은 아침에 뭘 먹고, 점심에 뭘 먹고, 이런 저런 일을 했다’고 쓴다. 이것도 정말 한두 번이지, 일기장에 이런 내용으로 한주가 채워지면, 쓰는 것조차 지겨워진다.



movie_image.jpg 이번주에 흥미롭게 본 영화 <서던리치>의 한 장면, 뒤죽박죽 오묘하고 흐릿한 내 머릿속 같은 풍경



어머나, 쓸 만한 생각이 없구나


그래서 의심하게 됐다. 어머나, 내가 하루에 쓸 만한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는구나. 그럼 깨어있는 내내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이 생각들은 뭐지?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아무리 걸러도 떠오르는 생각들뿐이었다. 식사메뉴나 자기 전에 할 일 같은 반복적이고 사사로운 선택을 공들여 하느라, 머릿속만 바쁜 것이었다.


잡생각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잡생각들이 내가 하던 일을 자꾸 중단시킨다. 자꾸 나를 과거나 미래로 데려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차라리 아무 생각이 없는 것만 못하다. 적어도 생각이 없으면 에너지 소모도 없으니까. 매일 자질구레한 선택들은 습관화해서 무의식에 맡기는 편이 좋다.


나는 언제 생각을 할까? 책이나 좋은 기사를 볼 때, 영화를 볼 때 생각을 한다. 어쩌면 평소에 하지 못하던 재미있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책이나 영화를 탐닉하는 것 같다. 혹은 친구나 남편과의 대화를 나눌 때 생각을 한다. 배워서, 느껴서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이나 발견을 하는 순간이 나는 재미있다. 내가 살아있다고 감각하는 순간은 깨달음과 발견의 순간이다. 뭐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글쓰기 역시 생각을 하게끔 자극하는 도구다.



관찰력과 통찰력


그런 관점에서 하루를 돌아보면, 어떤 일들은 나를 생각하게 하고, 어떤 일들은 생각을 멈추게 한다. 나는 요즘 눈뜨자마자, 혹은 점심 먹고 잠시 쉴 때 게임을 하는데, 게임은 나에게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가상의 게임캐릭터로 현실에서는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나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번 달에 맡은 글쓰기는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그 글을 붙잡고만 있으면 그야말로 잡생각에 빠져든다. 잘 안 써져서 잡생각에 빠지는지 잡생각에 빠져서 잘 안 써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생각을 해야 하는 순간에 동동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만 따라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새롭게 동기부여를 하든, 마감을 당기든 어떤 식으로든 이 작업에 자극이 필요한 것이다.


생각을 자극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결이 잘 맞는 사람과의 생산적인 대화다. 때로는 인터뷰 기사도 좋은 생각거리가 된다. 혹은 책이나 영화, 음악 등 누군가 완성해낸 생각의 결과물을 접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읽고 느끼고 쓰는 훈련을 통해 언젠가는 스스로 생각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는 건 관찰력과 통찰력이 좋다는 뜻일 거다. 관찰력은 눈에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보이지 않는 행간과 문맥까지 읽어내는 힘이고 통찰력은 관찰한 것들을 하나로 꿰뚫수 있는 힘이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한 언어로 말하는 것,

그리고 내 주변의 풍경을 나만의 시선으로 재해석 해낼 수 있는 것,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글쓰기를 통해 그 힘을 기르고 싶다. 으쟈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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