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루양 Feb 18. 2021

대학원 입학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하면 할 수록 실무 생각이 간절했다 

두 번 다시 없는

오리엔테이션


  3월이 다가올수록 은근히 긴장이 됐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공부를 하게 될까? 공연한 마음에 참고 도서를 뒤적여도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합격자 발표가 나고, 1월 중순 즈음 수백 명이 있는 학교 단톡방에 초대됐다. 나는 1월부터 2월 초까지 해외에 있었는데, 2월부터 오리엔테이션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정을 앞당겨서 들어가야 하나?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오리엔테이션은 중요하다. 같은 학번 동기들 얼굴을 한번 보고 시작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리 시간표를 어떻게 짤지 가이드를 받아야 하고, 교수님은 어떤 분인지 코멘트를 들을 수 있으면 더 좋다. 나는 아무런 정보 없이 수강신청을 하게 됐고, 워낙 많은 과목 중에 무엇을 먼저 들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대표 교수님 수업을 먼저 한번 들어볼까’ ‘내가 관심 있는 미디어 분야에 기록학이 어떻게 접목되는지 볼까’하고 활용 수업 위주로 시간표를 짰다가 2학기 때 뒤늦게 기본 수업을 챙겨들어야 했다. 활용 수업이 재미는 있지만, 기초 이론 없이 듣다보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어떻게 현장에 접목되는지?’도통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2학기 때 기본 이론 수업을 듣고 나서야, 1학기 수업을 너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1학기 도화지였던 나에게 교수님 말씀은 이 학문 세계의 전부였는데, 2학기 때 기초로 큰 그림을 훑고 나니, 1학기 때 배운 것들이 이 세계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는 걸 인식했달까. 활용 학문이 늘 매력적인 제목을 달고 있지만, 개론이나 기초 이론 수업이 왜 선행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뭘 해도 하던 사람이

계속 하는 생태계라면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자리에서 조교를 선발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사람 손’ 정도기 때문에 선발이라는 말이 좀 멋쩍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조교 자리에 무심했던 게 아쉽다. 결국 대학원 생활 역시 정보 싸움이고, 특히나 직장이 없는 상태라면 어떻게든 학과나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정보를 알아야 뭐든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런 정보는 조교나 과대표에게 우선적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보니 조교나 과대표는 소리 소문 없이 계속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때때로 좋은 정보는 그 선에서 증발되어 버렸다. 전체에게 공유되는 몇몇 정보는 지방 프로젝트나 누가 봐도 매력적이지 않은 업무들이었다. 물론 조교를 했다면 또다른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기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주어지는지 알았더라면 조교든 과대표든 지원해봤을 테다.      


왜냐하면 가끔, 자잘한 일을 학생에게 맡길 때도 교수님은 전체 공고를 내지 않고 임의로 카톡을 보내 지정했기 때문이다.(왜 기록이 투명하지 않은 거죠....) 결국 교수님 역시 일을 시킬 때 얼굴 한번 아는 친구를 떠올릴 수밖에 없고. 결국 학교 일은 하던 놈이 계속 하는 구조로 돌아간다.


이렇게 코로나19 때문에 1년이 지나도록 교수님이나 동기들 얼굴 한번 못 보게 될 줄 알았더라면, 더더욱 뭐라도 하나 맡아서 학교에 얼굴을 비추어 일을 좀 해보면 좋았을 걸 싶다. 2년은 정말 짧다. 직장을 병행하지 않고 학교에만 집중할 생각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평생 반장, 부반장 임원직에 관심이 없던 탓에 무심했지만, 조교 자리는 욕심내볼 만하다. 여러분,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손을 들자.     



하면 할 수록

실무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지난학기 공부에만 매진했다. 물론 외주를 하면서 학비를 벌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는 데 썼다.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하다 보니 여러 번 아쉬운 순간이 있었다. 기록 관리라는 게 조직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학문이라 한 번도 그 근처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력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이미 기록시스템을 써본 사람, 쓰고 있는 사람에 비해 시스템을 구경도 못해본 입장에서, 관리와 시스템에 관해 말을 하고 글을 쓰려니 턱턱 막힐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일 생각이 간절했다. 작은 아르바이트라도 경험해봤으면 좋을텐데. 현장 경험이 없다보니 글 쓰고 생각하는 게 자꾸 같은 지점에서 맴도는 기분이었다. 대학원은 새로운 커리어의 시작점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사실 관련된 일을 하면서 업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대학원을 활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물론 일과 병행하는 동기들은 죽지 못해 사는 모습이지만.... 당연히 힘들겠지만, 회사에서 지원해주고 양해해줘서 수월히 병행하는 동기들이 부러운 건 사실이었다.      


배운 걸 현장에서 응용하고, 그 경험치로 공부하는 내용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선순환을 가질 수 있다면 최선아닐까. 그래서 어떻게든 2020년 프로젝트에 참여해보려고 기를 썼지만, 이상하게 지난해는 발을 담근 프로젝트마다 성사되지 않는 비극이... 일을 하면서 학교를 병행한다는 옵션 자체가 없었던 나로서는, 병행할 때의 시너지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학교 다니면서 알게 됐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를

나는 전부 못했다


오리엔테이션에 못 갔고, 아무 정보 없이 시간표를 막 짰고, 학교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공부만 했다. 그래도 별일은 없었다. 과연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내가 다른 선택을 했을까?      


비록 오리엔테이션에 가지 못했지만, 그때 그 여행을 포기했더라도 나는 두고두고 아쉬웠으리라. 코로나19로 이제 언제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꿈꿀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까. 그때 그 며칠의 기억으로 2020년의 어려운 일들을 버틸 수 있었으니까.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고 믿는다. 다만,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누군가 이런 얘기를 미리 해줬더라면, 지난 해 나의 어떤 선택들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졸업하면 마흔, 대학원에 등록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