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루양 Feb 19. 2021

대학원생의 로망과 절망

서울 사이버대학을 다니고~ 나의 성공시대... 시작될까

다시 돌아봐도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2020년, 하면 나는 늘 원더키디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원더키디 크레파스에는 2020년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미래적인 숫자. 그런 2020년에 대학원생이 될 줄도 몰랐지만, 마침 딱 그 해에 COVID 19라는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할 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당장 닥쳐올 일도 모르고... 나는 새롭게 학업에 매진하기에 앞서 여행을 계획했다. 동기부여 차원이기도 했고, 마침 남편의 미뤄둔 안식휴가를 써야 해서 겸사겸사 우리 일상의 신발끈을 묶는다는 차원의 여행이었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곳곳을 활보했던 저 때는... 꿈이었던가


  포르투갈과 바르셀로나에서 보름을 보내면서,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됐다는 뉴스를 봤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코로나’로 난리가 났다. 텅빈 공항, 모두가 쓴 마스크, 문을 닫은 가게들. 2020년은 다시 회고해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3월 초 예정이었던 개강은 미루다 미루다 중순에야 수업이 시작됐고, 처음으로 전면 비대면 수업을 맞아 학생들도 교수님들도 우왕자왕하긴 마찬가지였다. 1학기 수업 중에 어떤 수업은 무려 카톡수업을 하기도 했고 (네...??) 어떤 수업은 교수님이 PPT 한 페이지마다 녹음을 해서 올려주셨다. 동영상으로 강의를 녹화해서 올려주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원 생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동기라고 묶인 스무 명의 친구들은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당시에는 줌ZOOM 같은 프로그램도 모두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기 끝날 때까지 교수님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과목도 있었다. 아... 나는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했구나.




대학원에서

기대한 것들


  내가 대학원에서 기대한 것은 그저 학위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같은 분야에 관심 있는 동료들을 만나고 싶었고, 대학 때보다 심도 깊은 세미나 수업을 기대했고(그런 거 있잖나. 원으로 둘러 앉아서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고 답을 찾아가는 그런 풍경...),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기도 하고, 워크샵이든 뭐든 실습을 병행하고, 무엇보다 도서관을 자주 가고 싶었다. 운이 좋으면 훌륭한 스승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음. 이 중에서 1학기 비대면 수업에서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와도 실시간 교류를 하지 않았으니, 진짜, 진짜로 1학기 끝나도록 단 한명의 친구도 사귀지 못했고, 단 한명의 교수님과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정말 등록금을 환불받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피와 땀으로 모은, 적지도 않은 내 등록금이여...      


“지금이라도 그만 둘까?”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평생교육원 한 학기, 대학원 한 학기...


그만 두기에는 비용적 손해가 너무 큰 포기였다. 여기서 그만두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지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공부 자체가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PPT로 배운 (아, 너무해...) 기호학 수업도, 카톡으로 배운 (아, 문화충격...) 상대성 이론도, 동영상 녹화본으로 배운(그냥 눈물만...) 미디어 수업에서도 몰랐던 것을 이해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일은 재미가 있었다.


매주 과제가 있었는데, 이미 정리되어 있는 용어의 정의에서 비어있는 내용을 보충해서 재정의하라는 과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미디어란?' '데이터란?' 당연하게 사용하던 용어를 뜯어보고, 기존의 정의보다 더 적확한 표현을 찾아 단 한줄로 제출하는 과제였다. 그 한줄을 완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골몰한 일이 크게 공부가 되었다. 대학원에 와서 과학이나 데이터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내가 공부하는 문과 학문이 과학과 공학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이해해나가는 게 즐거웠다.       


해보지 않은 공부의 영역에 과감히 발을 담가볼 수 있다는 것이 대학원 공부의 즐거움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대학원 공부를 계속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는 그저 이 때문이었다. 어쨌든 한 학기에 공부 분량은 턱없이 적었고, 정말 맛만 봤다. 그것도 기본 이론 수업을 못 듣고 활용을 들어서 간이 쎈 맛만 본 셈이었다. 그렇게 눙물을 머금고 외주로 피땀흘려 번 돈을 다시 2학기 등록금으로 납입하고 마는데.... 또르르.      



1학기 때 알게 된 것은

두 가지였다


첫 학기 시간표를 어떻게 짜야 하는지, 누구에게도 가이드를 받지 못했다. 무조건 앞서 수업을 들은 자에게 가이드를 받는 게 좋다. (나 역시 수강신청 전에 얼굴도 모르는 조교에게 카톡을 보내 물어보긴 했지만 “아무거나 들으시면 돼요”라는 성의 없는 답만 들었다. 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학교마다 개설된 과목이 다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과목이 대단히 많기로 유명하다. 기본 수업 외에 활용 수업이 대단히 많다. 기본 수업은 ‘개론’ ‘~학’ ‘이해’ 등 딱 봐도 딱딱하고 재미없는 제목을 하고 있고, 활용은 ‘현대’ ‘빅데이터’ ‘미디어’ ‘스토리텔링’ 등 솔깃한 키워드가 덧발라져 있다. 원래 밥을 먹을 때도 맛있는 것을 제일 먼저 먹는 사람이므로 나는 딱 봐도 꿀이 발라져있는 활용 과목들로 채워서 수업을 들었다. 그랬더니?     


아, 시간표 짜는 일은 밥 먹는 일처럼 하면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달콤한 활용 과목은 실제로 너무너무 재미있었는데, (말했잖나. 첫 학기부터 양자역학부터 포스트모더니즘, 엘런 튜링의 석사논문까지 봤다. 정말 비행기타고 온갖 학문을... 멀리서 구경만 했다.) 그런데 재미는 둘째 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의문이 많이 생겼다. 그러니까 이론과 실무가 너무 멀리 있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론이 전혀 안되어 있는 나로서는 이 재미있는 활용을 어떻게 적용하고 도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개념이 불분명하니 질문도 불분명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나눌 만한 기회가 1학기 때는 없었다. 아, 기본개념이 이래서 필요하구나. 기본 개론과 이해를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성과(?)가 있었다. (물론, 활용을 먼저 들었기 때문에 ‘이게 잘 해보면 재미있는 학문이겠다’는 좋은 첫인상을 갖긴 한 것 같다. 만약 개론부터 들었다면, 수업 방식의 좌절에 더해 ‘이 공부 계속 해도 될까’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총총총.)         


또 하나. 이대로 졸업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더욱 확실해졌다. 좌절을 넘어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졸업장만 들고 나갈 수는 없었다. 공부를 하려면 같이 공부하고 같이 고민할 동료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늘 교실의 아싸였지만, 이런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는 것이다. 이렇게 교수님 얼굴 한번 못보고, 동기 1도 없이 나홀로 졸업을 할 순 없다, 어떻게 하지?


2학기를 앞두고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행여 내년까지 코로나19가 장기화되어 계속 이렇게 비대면 수업을 지속했을 때 무엇이 가장 아쉽게 느껴질지 그것을 많이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원 입학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