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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Feb 20. 2021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법

전문가는 내 일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든 학문에는 

핵심질문이 있다

 

  지난 학기 배움을 디딤돌 삼아 개론과 이론으로 시간표를 짰다. 대부분 수업에 다음 기수 신입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이제야 교재를 사고, ‘이론과 실제’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1학기 때 나는 기록을 한다고는 했지만, 배움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상태였다. ISO 15489 이런 암호같은 건 뭔지, 그게 어쨌다는 건지, 왜 그걸 지켜야하는지, 심지어 ‘기록이란 무엇인가’ 같은 핵심질문도 2학기에 와서 비로소 접하게 됐다.      


  어떤 공부든 시작할 때 마주치는 ‘핵심질문’이 있다. 왜 핵심질문이고 질문의 핵이냐 하면 그 질문이 향후 공부하는 모든 것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때 주어지는 이 질문은 졸업할 때까지 계속된다. 대학교 시절 국문학 공부를 할 때는 ‘근대란 무엇인가’가 나의 핵심질문이었다. 세부전공이 현대문학이었기 때문이다. 근대는 언제인가, 근대란 무엇의 변화를 의미하는가, 문학 속에 근대는 어떻게 반영되었나... 수업시간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근대의 개념을 듣고 말하고 파고들어야 했다.    


  기록학에서는 첫 주차에 배우게 되는 ‘기록이란 무엇인가’가 바로 그런 질문이다. 이것을 기록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은 왜 기록이고 저것은 왜 기록이 아닌가. 기록이 무엇인지 정의내려야만 이 기록을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선별폐기할 것인지 다음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기록에 관해 정의내릴 수 있을 때, 기록학에 관해 할 말이 생긴다. “기록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첫번째 과제 리포트를 쓰던 긴 밤, 기록학이 내게 손을 내밀며 “안녕, 너 기록학은 처음이지?”라고 건방진 표정으로 말을 거는 기분이 들었다.       


  학기 초의 리포트는 죄다 엉망이었다. “개별 대통령 기록관이 설립되어야 하는가?” 같은 짧은 질문에도 도저히 A4 한 페이지의 말을 채울 수가 없었다. 생겨야 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막상 생기면 되게 꼴보기(?) 싫을 것 같기도 하고. 응? (<-공부가 하나도 안 된 상태....) 


  검색을 하며 단절된 정보에 혼란스러워하고, 온갖 외국 사례를 짜깁기하고, 없는 말을 붙여서 제출하기 일쑤였다. 수업 시간에 다른 친구들의 답변이나 교수님 피드백을 들으며 ‘아니 왜 법령을 활용할 생각을 못했지? 저렇게 논리적으로 정리를 못했지. 정말 생각도 못한 생각이다.' 자책하기 일쑤였다. 아는 게 없으니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전문가와 달인의

차이


  평생교육원을 다닐 때 수업 때 배운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세상에 뭘 잘하고 잘 아는 사람이 천지다. 하지만 달인과 전문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했다. “달인은 그 일을 직접 몸으로 익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전문가는 그 학문과 학문에 쓰이는 용어를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고로 학교에서는 전문가가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 말은 당시 내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큰 지침이 됐다. 끊임없이 정의를 찾고, 뻔해 보이는 것들을 다시 정의하고, 의미를 분석하고, 수정하고, 때로는 외우는 일. 전문가는 그렇게 되는 된다고 믿었다.     


  언론사에서 뉴스를 만들 때도 자주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9시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대부분의 뉴스에는 전문가 코멘트가 들어간다. 범죄든 법률 논쟁이든 환경 문제든 그 사안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새로운 관점을 말해줄 수 있는 코멘트를 넣어야 했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간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길게 설명하고 난 후 능숙하게 뉴스에 쓸만한 멘트로 짧게 정리해준다. 그 멘트가 이 뉴스의 '진짜 문제'를 강조해주기도 하고, 기자의 주장에 신뢰성을 더하기도 하고,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그땐 단순히 교수나 대표, 연구원이라는 직함이 그들의 전문성을 말해준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은 이 문제를 정의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문가였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보니 달인이 아니라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더욱 와닿았다. 리포트를 잘 쓰는 달인, 하루 만에 PPT를 만드는 달인이 될 게 아니라, 전문가가 돼야 했다. 내가 배우는 개념과 용어를 정의하고, 그 정의의 맥락과 한계를 나름대로 파악해 글로 써내야 한다. 모든 과제가 리포트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대학원은 이런 훈련을 하는 곳이다. 


  모든 논문은 자신이 다루는 주제의 정의로부터 시작한다. 서론에서 개념을 자기 방식대로 정의하고, 개념의 범위를 한계 지음으로 맥락을 분명히 한다. 대학원의 공부는 자기 나름의 ‘정의(definition)’ 탐구이자 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내 공부의 목적이기도 하다.      


  나 역시 꽤 긴 시간 기록을 해왔다. 회사 직원으로, 기자로 기록했고, 때로는 펜으로 카메라로 기록하는 일을 해왔다. 뉴스 혹은 캠페인 등으로 불리는 기록을 제작하면서 나는 자주 고개를 갸웃했다. 정보와 기록이 너무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잊히는 것에 관해서, 때로는 정보를 왜곡한 잘못된 기록에 관해서, 기록의 의미에 관해서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 역시 나의 기록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계속 뭔가 제작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펜을 들든 영상을 하게 되든 그때는 나만의 방법론을 갖고 싶다. 기록에 대한 나만의 방법론, 아카이브 방법론을 습득하고 난 후에 만들어진 콘텐츠는 과연 이전에 내가 만들던 것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여전히 답은커녕 질문만 엄청 많은 단계고, 과연 1년 만에 내가 나름의 정의를, 답을 찾게 될지 정말로 지금은 모르겠다. 기록이란 무엇이라고, 2022년의 나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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