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한 장면. 이렇게 카메라를 막 손에 쥔 마음으로.
글 쓸 준비가 되면 그때 쓰겠다고, 올해의 글쓰기는 그렇게 넉 달이나 미뤄졌다. 그 사이 100일 글쓰기를 하던 친구는 한 사이클을 돌았고, 창 밖에 앙상한 가지로 서 있던 나무는 푸른 잎을 한껏 피워냈다. 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했다. ‘대체 무슨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거야?’ 또 다른 내가 대답했다. ‘명확한 기획이 세워져야 하고, 필요하면 자료 조사도 좀 하고, 또 그냥 일기처럼 흘러가고 말 글을 쓸 수는 없잖아.’
그래. 준비는 핑계일 뿐이고, 쓸 만한 글을 쓰지 못할까봐 겁내고 있구나. 하지만 그걸 알고도 바로 쓰지는 못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준비가 된 때라는 건,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서툰 글을 흘려보내지 않겠다며 쓰는 일을 미뤄둔 사이, 시간이 고스란히 흘러가버렸다. 이런, 글이라도 썼다면 그 흔적이라도 남았을 것을. 아, 나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없었구나. 쉼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한 줌의 기억이라도 생각이라도 건져내려면, 어떤 글이라도 남겨야 했구나.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따뜻한 동료의 조언이 있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때로는 할 수 있다는 것을 귀하게 여길 필요가 있어.’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하게 한다는 말에 덧붙인 말이었다. 그때는 ‘아니야, 잘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한참이 지난 후에 그 말이 새삼 다른 뉘앙스로 떠오른 순간이 있었다. 보잘 것 없는 도끼라도 쓰지 않으면, 갈지 않으면 녹슬고 만다는 얘기로 다시 들렸다.
은유작가의 팟캐스트를 듣다가 “글쓰기는 실패체험”이라는 말이 귀에 훅 들어왔다. 사무엘 베케트가 글쓰기를 두고 한 말 “실패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는 말을 빗대어 한 말이다. 누구나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실패로서 비로소 자기 글을 만들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지만 매혹적인 실패체험에 기꺼이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실패, 실패 하니까 뭔가 거창한 일을 시작하는 것만 같지만, 이렇게 조용히 쓰는 글이 실패라고 해봤자 무엇을 잃게 된다고? 그저 조금 고독해지는 일일 뿐일 텐데.
사실 나는 매일 글을 쓰긴 쓴다. 프리랜서인 내 일의 일부가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 나는 내내 남의 이야기를 쓰거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정리하기만 했지 정작 나에 관해서 진솔한 글 한 편 쓰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관해서는 도통 기록하지 못했다. 하루하루를 보낼 때의 허전한 마음은 바로 여기에 있을 테다. 그래서 써보기로 한다. 내가 하루를 괜찮게 보냈다는 바로미터가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는 이 글쓰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관한 기록이 쌓여서 내 일상의 그럴싸한 지도가 되어주면 좋겠다.
좋은 삶을 살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글이 나아지면, 삶도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나는 나은 글을 쓰고 싶어서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좋은 생각을 해보려고 애쓰고, 업무에 휘둘리다가도 ‘아 맞다, 오늘은 무슨 글을 쓰지?’하고 괜히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될 거다. 그렇게 내가 하루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발견과 배움을 기록해나갈 수 있다면, 그걸 나눌 수 있다면 고작 양 발의 면적 정도인 내 삶의 영역이 조금은 넓어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해보자. SF소설가인 레이 브래드머리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매일 글을 쓰자.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