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끝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다. 아니, 전혀. 기계도 갑자기 멈추면 오작동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란. 그래서 올해 1월과 2월은 고장이 난 채로 지냈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떠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몰려온다. 누군가의 알람 소리, 밥을 짓는 소리, 깨우는 소리, 이야기 소리, 뉴스 소리, 청소차 소리, 희미하지만 새소리. 모두가 어딘가로 향한다. 갈 곳이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을 깔았다. 친구, 선배, 후배들의 작은 성공들과 큰 행복, 승진 혹은 이직 소식 또는 결혼과 출산 이야기를 접했다.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그대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3년 동안 나는 줄곧 후퇴만 했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패배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슬퍼하고만 있기에는 내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많았다. 지켜야 하는 맹세들이 남아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걸었다. 하루에 15시간을 앉아있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걷기였다. 걸으며 생각했다. 도대체 난 왜 실패했을까. 처음에는 자책과 후회에서 시작되었던 이 질문이 내 인생 전반에 있었던 크고 작은 선택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두려워하는지, 어떤 태도가 잘못되었고 어떻게 바꿔갈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갔다. 사랑하던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더 꼼꼼하고 다정하게 나를 돌보았다.
은은하게 돌아있다. 나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그렇다. ‘차분하다’, ‘조용하다’ 이런 단어들이 주로 나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 안의 나는 은근히 미쳤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전공과 무관한 길을 선택했고, 수능에 과감하게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물론 신중에 신중을 가하다 보면 두려움이 생겨 포기하는 일이 많아지기는 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환상에 젖어 발을 내딛지는 않아야 한다. 만약 내가 꾸준하게 수학을 공부하고 생명 과학책을 즐겨 읽어 왔더라면, 내가 극복할 수 있는 공부인지 혹은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이뤄낼 수 있는 일인지를 판단하기 쉬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과연 내가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라는 말은 맞지만, 분명 고유하게 지닌 능력으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는 있다.
수학 문제를 예로 들어볼까. 어떤 문제를 그래프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고, 수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그래프로 풀던 사람은 항상 그래프로만 풀고, 식으로만 푸는 사람은 식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문제를 보고 양쪽의 길을 동시에 떠올린다.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풀어가야지!’ 선택했을 때는 확신을 갖고 풀지만, 그 길이 막혔을 때는 재빠르게 다른 방식으로 넘어간다.
평소에 자신이 풀었던 방식과 다른 길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는 것. ‘오예! 문제를 맞혔어!’라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면 어떨까?’라는 유연성을 갖추는 것. 그것이 나에게 가장 부족했던 태도였다.
무조건 하나의 방식과 길을 고집하기보다 여러 갈래의 길들을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싶다. 앞으로도 나에게는 초월함수보다도 더 풀어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수학 천재들의 자세를 떠올려야지.
성적이 급격하게 상승했던 구간이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질문을 매우 많이 했다. 어렸을 때는 질문하지 않고 혼자 해설지를 찾아봤다. 타고난 성격이 소극적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이런 것도 질문하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그것이 두려워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망신을 당하는 게 정말 싫은 자존심 강한 아이였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혹여 누군가가 ‘이런 걸 몰라?’라고 창피를 준다고 해도 ‘네! 저는 잘 모르겠으니 가르쳐 주시겠어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모르는 건 문제가 아닌데, 실전에서 몰랐다가 틀리는 건 정말로 속상한 일이다.
학원의 선생님들과 인강의 조교 선생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정말 기초적이고 단순한 부분이었을지라도 꼼꼼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선생님들이 있어서 쉽게 넘어갈 꼼수를 부리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수험생이 된다면, 일주일에 두 번은 학원이 아니라 운동을 하러 갔을 것이다. 수능을 도전한 첫 해가 20대의 끝자락이었는데, 그때도 이미 체력과 에너지가 바닥이었던 걸 몰랐다. 호기롭게 시작한 의지와 달리 내 몸은 그다지 호기롭지 못했다. 가끔은 그렇게까지 했는데 쓰러지지 않은 것은 큰 행운이 따랐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마지막 수능을 앞두고 한 달은 몸이 계속 이상했다. 코피를 흘리고 두드러기가 나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무엇인가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특히 어떤 기억은 완전히 흐릿해졌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건강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웠다.
마음의 문제가 몸의 이상으로 나타나고, 체력이 소진될수록 마음도 함께 무너질 수 있는 것을 잘 몰랐다. 그걸 알았더라면 책상에서 책만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봄이 오면 봄을, 가을이 오면 가을을 느끼고,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 기뻤던 일, 힘들었던 시기들을 이야기한다. 수험생에게 그건 사치라고? 글쎄. 어떤 하루도 결국은 당신의 순간인걸.
아직은 겨울이었던 3월을 넘어 꽃이 핀 4월이 되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나의 상황을 인정했고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물론 이따금씩 실체 없는 막막함이 밀려와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불안감의 빈도가 줄어들고, 그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
너무 많은 것들을 틀린 시험지라 대차게 실패했다고만 생각했는데, 틀린 것들을 천천히 돌아보며 알았지 뭐야. 나, 다가 올 시험지에서는 더 많이 틀리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