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천사 하늘이의 탄생을 축복하며
하늘이의 탄생 예정일은 7월 28일,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이 예정대로 되는 법이 있나요? 하늘이는 예정일보다 훨씬 이른 5월 22일 9시 45분에 갑작스럽게 지구별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임신 30주차였으니 세상빛을 보기엔 조금 이를 때였습니다. 하늘이는 문제가 있어서 일찍 태어났지만, 태어나고는 더 문제가 심각해져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두 달 넘게 지내왔고, 지금은 기적처럼 퇴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늘이와 함께 한 저의 가족의 여정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하늘이는 20주차에 니프티 검사를 통해서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니프티 검사의 정확도는 99퍼센트를 넘어 100퍼센트에 육박합니다. 니프티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아 든 그날이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상담을 위해 내원해 달라는 말이 들렸고, 저는 결과가 어찌 되었느냐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확한 결과는 상담을 통해 들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이쯤 되면 누구나 직감으로 알게 됩니다. 저는 아내에게 이 사실을 담담하게 전했고, 아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운증후군의 원인은 아직도 알려진 바가 없고, 알려진 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음 여리고 착한 아내는 평범하고 건강한 아이를 잉태하지 못해 자책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잘못이라는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한 존재의 탄생은 이래나 저래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둘이 한참을 그렇게 울고는 급하게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럽게 검사 결과를 전하셨고, 확진을 위해서는 다음 검사인 양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럼 낳으시는 거죠?'하고 물었고, 저는 '네'라고 답했습니다. 어차피 사랑으로 키울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조금 다르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임신 유지를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에게 임신 유지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부부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칭찬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저희 또한 하나님의 신성 앞에서 부끄러운 죄가 많은 인간일 뿐입니다.
하늘이는 그렇게 엄마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 사이 저희 부부는 하늘이의 존재를 긍정하면서도, 니프티 검사가 100퍼센트 정확한 것은 아니니 기적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평소와 같이 즐겁게 일상을 살다가도 갑자기 슬퍼지거나, 예민해지곤 했습니다. 두려웠던 것이지요.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하늘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간이기에 당연한 감정이겠지만, 자기의 자식을 긍정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참 슬픈 것이었습니다.
24주차쯤 되어서 정밀 초음파를 위해 다시 병원에 들렀습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구조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도 하늘이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학병원에서 다시 한번 정밀 초음파를 받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주신 진료 의뢰서를 들고 대학병원에서도 다시 정밀 초음파를 받았습니다. 대학병원 교수님께서는 하늘이에게서 다운증후군 아이의 특징들은 보이나 구조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기뻤습니다.
문제는 그러부터 한 달 뒤 다시 병원에 들렀을 때였습니다. 28주차에 다시 정밀 초음파실에 들어간 저희 부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평소 초음파를 보시며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던 담당 선생님께서 말씀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덩달아 초음파실의 공기는 무겁기만 했습니다. 참다못한 저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나요?'라고 여쭈었고, 돌아오는 대답은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실 겁니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병원장실에 들어간 저희는 원장님으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산모의 양수가 지나치게 많으며, 아이에게는 태아수종의 징후가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진료가 어려우며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태아수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태아수종은 태아의 신체 두 곳 이상에 액체가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질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후가 몹시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간 잘 지켜오던 마음의 성이 무너진 것은 이맘때쯤이었습니다.
29주차에 다시 대학 병원에 갔습니다. 지난번에 하늘이의 정밀 초음파를 봐주셨던 교수님께서는 '아이고'라는 탄식과 함께 한숨을 내리 쉬셨습니다. 태아수종이라는 것이 그렇게 몹쓸 병이었습니다. 과학과 의술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몹쓸 병 말입니다. 이유를 모르니 마땅한 치료법도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3주 정도 더 지켜보자고 하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서 저희 부부가 죄인이라고 했지요. 대단한 결정을 했다고 칭송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지요. 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맘때쯤 저희가 하늘이의 안위보다 더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었습니다. 아내는 양수가 과다한 것이 자신에게 위험하진 않을까 걱정했고, 저는 장애아를 키우며 살아갈 삶이 고단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자식이 몹쓸 병에 걸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인간은 이토록 자기중심적인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은 원죄입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3일이나 지났을까요. 회사에서 회의를 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대학병원 담당 교수님이셨습니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소아과 교수님과 하늘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아과 교수님께서는 하늘이가 엄마 뱃속에 있으면 더 위험할 수 있어 제왕절개술로 꺼내 치료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하셨답니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당장 입원 수속을 밟고, 내일 아침에라도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물어본 뒤에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곤 전화를 끊었습니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온 저는 아내에게 교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내라고 별수는 없으니 그러자고 답했습니다. 저희는 입원을 위해 간단한 채비를 끝내고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5월 21일 화요일이었습니다.
5월 22일 아침에 수술 스케줄이 잡혔고, 바로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수술실로 보내는 심정이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와 하늘이를 기다렸습니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20~30분 정도 지났을까요. 하늘이가 수술실 밖으로 나와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어 위급한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고, 하늘이는 가냘픈 핏덩이에 불과했습니다. 하늘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저는 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이제는 아내를 기다릴 차례였습니다. 수술이 잘 끝났기를, 다시 건강하게 아내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아내는 한, 두 시간쯤 지나 입원실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정신은 혼미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습니다. 얼마 후 하늘이 담당 소아과 교수님께서 오셔서는 하늘이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왕절개술 이후에 하늘이에게 필요한 수술이 있을까봐 수술실에는 부인과팀과 소아과팀이 모두 들어갔다고 하셨습니다. 예상했던 것만큼 하늘이의 상태가 나쁘지 않아 수술은 필요가 없었고, 필요한 시술만 하여 상황을 지켜보는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병실에는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 면회는 화, 목, 토요일에 걸쳐 일주일에 세 번씩 진행되었습니다. 수술이 수요일에 있었던 터라 목요일 면회는 저 혼자 다녀왔습니다. 아직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이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하늘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진 것은 명확해 보였습니다. 조금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이미 하늘이의 삶을 긍정하기로 마음을 먹은 지 오래라 별다른 감정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온갖 의료 장치를 그 작은 몸에 덕지덕지 달고 있는 하늘이가 그저 불쌍했을 뿐이었습니다. 아내는 수술을 받은 그 주 일요일에 건강하게 퇴원했습니다. 산후 조리원에 들어가라고 했지만 절대 안 간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럼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어줄 아주머니를 한 분 고용하자고 했는데 그것도 한사코 싫다고 했습니다. 과연 삼바의 나라에서 온 강인한 여인입니다.
아내와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평범한 일상을 살아냈습니다. 화, 목, 토요일에는 둘이 손을 꼭 잡고 하늘이 면회를 갔습니다. 초반에는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병원에 도착하면 둘 다 화장실부터 찾기 바빴습니다. 웃으며 병원으로 향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울었습니다. 얼굴을 포함하여 하늘이의 온몸이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폐에 자꾸만 물이 차고 있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호흡을 잘 못 하니 심장에 무리가 가고, 그것이 고혈압을 유발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교수님은 폐에 관을 삽입하여 체액을 빼내는 수술을 오른쪽, 왼쪽 폐에 각 각 한 번씩 진행하셨습니다. 그래도 몹쓸 체액은 다시 차올랐습니다.
하루는 제가 교수님께 애기가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냐고 여쭈었습니다. 교수님은 아주 긴 싸움이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하늘이를 위해 어디까지 치료를 진행하길 원하는지 생각해 보라는 무서운 말씀도 저희에게 하셨습니다.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어느 날은 생존 가능성이 5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아 기적을 기대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사실을 우리말을 모르는 아내에게 전해야 할지 말지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아이의 엄마가 모든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날, 아내는 또 한 번 무너졌습니다. 날씨가 후텁지근해지기 시작하는 6월 중순의 어느 날,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와 하늘이의 다운증후군이 확실해졌습니다. 이미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라 별다른 느낌은 없었습니다.
6월 말에도 저희는 계속 병원을 찾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캥거루 캐어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캥거루 캐어는 아이를 부모의 가슴팍에 올려 피부와 피부를 맞대고 교감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이 소식을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나쁜 소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쨌든 아내는 처음으로 하늘이를 가슴에 안아봤고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저도 그런 아내를 보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다음 주에는 저도 하늘이를 안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부서질 듯이 가냘픈 핏덩이를 저는 어찌할 줄 몰라 당황스러웠습니다. 그저 간호사가 하늘이를 제 품에 조심스럽게 올려놨을 뿐입니다. 그때 맡은 하늘이의 살냄새가 여전히 제 코 끝을 간질이는 듯합니다.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7월 초에 하늘이는 급격하게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도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며 하늘이가 집에 가는 상상을 해본다고 하셨습니다. 생존율 5퍼센트를 논한 것이 불과 3주 전이라 저희 부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무튼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늘이의 몸에서 붓기가 빠져 보기 좋았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몸에 달고 있던 것들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7월 13일 드디어 하늘이가 인공호흡기를 뗐습니다. 자가호흡을 하는 하늘이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7월 중순 하늘이의 퇴원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하늘이가 스스로 젖병을 빨아서 밥을 먹을 수 있으면 퇴원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안도했습니다. 긴 터널 끝에 한 줄기 빛이 드디어 보이는 듯하였습니다.
7월 27일이었던 어제도 저희 부부는 하늘이를 보고 왔습니다. 하늘이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도 젖병을 빠는 힘이 많이 부족하여 언제 퇴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하늘이가 지금까지 잘 해준만큼 앞으로도 열심히 재활훈련을 받아서 저희 가족의 보금자리로 하루빨리 올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부터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보통 가까운 사람이 다운증후군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저는 이게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분히 문화적인 것이더군요. 제 와이프가 태어난 나라 브라질에서는 중절수술이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와이프가 하늘이의 소식을 브라질에 있는 가족에게 전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다음과 같은 말들을 했습니다. '축하해!', '천사가 찾아왔구나!' 저는 어느 날 이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하던 중 궁금한 것이 생겨 와이프에게 물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위로 차원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아니면 진심인 거야?" 와이프가 뭐라고 답했을까요? 브라질 사람들은 진심으로 다운증후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태어난 환경이 사람의 사고 체계에 이렇게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 삶에 있어 옳고 그른 것, 아름답고 추한 것 등의 기준은 모호해집니다. 그 기준은 삶의 본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지요.
자연에서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건 장애, 비장애를 떠난 것입니다.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기에 완전하고, 온전합니다. 저희 부부는 삶의 모든 것을 긍정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저희는 진심으로 모든 일을 감사와 축복으로 여깁니다. 인간이기에 저희도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가치는 긍정과 감사이기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하늘이의 존재로 하여금 여러분들도 한번 연습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이의 존재를 진심으로 긍정하시나요? 혹시 연민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계시진 않나요? 하늘이가 이 삶에서 온전한 사랑을 바랄지, 아니면 동정과 연민을 바랄지는 꽤나 명확해 보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인 니체는 본인의 저서 '도덕적 계보'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연민은 삶에 반대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더 많은 고통을 낳는다. 연민은 기생적이고, 그것은 인간이 강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연민은 폭력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는 모든 장애인들이 연민보다는 온전한 사랑을 바랄 것이라고 꽤나 확신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하늘이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세요. 이렇게 부탁을 드렸는데도 무의식적으로 '힘내.'와 같은 위로의 말이 먼저 떠오른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희 부부와 하늘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님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과 말은 그 자체로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여러분들이 마음과 말로써 하늘이를 축복해 주신다면 하늘이가 이 지구별 여행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살다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부탁드립니다. 저희 부부를 도덕적으로 칭찬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 또한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죄인입니다. 제 마음속에 한 번이라도 들어온 사람가 있다면 아마 그 추악함에 몸서리를 치실 겁니다. 그러니 그저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면 족하겠습니다.
의도치 않게 글이 참 길어졌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행복이 넘치시길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