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12 공유 6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어른의 터앝
By 섬연라라 . Mar 17. 2017

취미는 함부로

어렵고 못해도 재미있다면 뻔뻔하게 아무렇게나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이십 대 중후반 즈음 <토니 타키타니>라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었다. 상영관도 적었고 관객 수는 더욱 적었다. 군데군데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썰렁한 극장에서 그보다도 더 썰렁한 영화가 시작되었다. 오래된 일이라 장면 하나하나가 디테일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미치도록 썰렁했던 그 느낌만큼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시종일관 무채색의 안갯속을 유영하며 고독을 읊는다. 등장인물들은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롭다. 무표정한 연기 속에는 소리 없는 비명이 날이 바짝 선 채로 번뜩거리고 있고, 갑작스러운 울음은 텅 빈 강바닥을 울리는 메아리처럼 허무하게 부딪힌다. <토니 타키타니>가 남기는 여운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상실감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내 속을 후벼 파고 있다. 그런 영화다.


자꾸 그렇게 외로움을 들쑤셔 대면 금방이라도 삐뚤어질 것만 같아......


하지만 내가 <토니 타키타니>를 아직도 기억하는 건 영화의 주제와는 좀 다른 이유 때문이다. 나는 주인공 토니 타키타니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 주목했다. 그는 감정 없는 사물들을 그리기를 좋아했고, 그 방면에 재주도 있었다. 그 재능이 토니 타키타니를 더 외톨이로 만들어 버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가 바랐던 일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불편함을 느꼈던 그는 혼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토니 타키타니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그는 혼자서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 

그 모습에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다른 사람들처럼 이래저래 분투하면서 지내던 청춘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어떤 식으로든 느꼈을 상실감을 영화가 건드린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나를 사로잡은 건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라는 우울한 명제가 아니었다. 내가 매혹된 부분은 주인공의 그림에 대한 욕구였다. 극장을 나섬과 동시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남동생이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너무 감동받은 나머지 극장에서 집까지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려왔다는 얘기를 듣고 깔깔댄 적이 있었는데 내가 딱 그 케이스였다.


당장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어떤 그림이라도 좋으니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영화가 남긴 공허한 울림을 누르고 솟아났다. 설렘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림 그리고 싶다! 그리고 싶어!!


그림이라고는 초등학생 시절 미술학원에 다녀본 경험이 전부였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그때 굉장히 훌륭한 선생님 아래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렸었다. 어쩌면 그 짧은 추억이 내 머릿속 한구석에 숨어 있다가 <토니 타키타니>가 매개가 되어 불쑥 튀어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바로 그림을 배울 수 있는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찾아낸 곳이 충무로에 자리한 일러스트 학원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제시간에 가려면 저녁 식사도 걸러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내 마음은 이미 세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는 도저히 식힐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곳에서 기초를 배웠다. 연필 쥐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선 긋기와 명암 넣기를 배우고 바로 모사에 들어갔다. 그 학원은 그림책 일러스트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이었다. 선생님이 그날그날 내 수준에 맞는 그림을 골라주면 나는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매일 저녁 배고픔도 잊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모든 잡생각을 떨쳐낼 수 있었고,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순간에는 황홀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다.


배 좀 고파도 괜찮아... 우리에겐 그림이 있잖아......


그런데 불행히도 나는 모사에 재주가 없었다. 어떻게 해도 똑같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는 무척이나 재미있었지만 베끼어 그리는 건 지루한 수련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기초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림책 시장의 일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갖추려면 그 정도는 마땅히 감내해야 할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숙련된 학원생들을 보면 나도 아예 이참에 전직을 꿈꿔 볼까 하는 야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때 무턱대고 덤비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개 무지렁이였던 내가 그런 인고의 필요성을 알 리 만무했고,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주제넘은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아기가 재주넘기를 하겠다는 격이지만, 그래도 변명하자면, 나는 어떤 일이든 그런 시기가 있어야 한다는 주의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욕심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다. 나는 봉긋봉긋 솟아나는 새싹 같은 욕심이 좋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꿈을 꾸면서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세상이 펼쳐지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 

물론 자신이 유별나게 운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차근차근 정석대로 가는 것이 좋겠다. 그게 여러모로 마음이 편할 테니까.


꽝손이라고 슬퍼하지 말자. 망손이라고 좌절하지 말자.


당시 학원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매일 스무 장씩 크로키 숙제를 제출해야 했다. 처음에는 너무 부끄러워서 도저히 내보일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거침없이 휘갈긴 연필 선들은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해 내 그림은 너무나 초라했다. 대상을 몇 초 만에 관찰해서 표현해내야 하다니, 내 손은 부담감으로 인해 더디 움직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건 분명 신기한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어렵고 못하는 데도 즐거웠다. 나는 곧 뻔뻔해졌고 마구 그려대기 시작했다. 


두 달 정도 다닌 후에 학원을 그만두었다. 모사는 아무리 해도 재미가 없었고 크로키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내 맘대로 그리면 안될까요?  됩니다, 되고 말고요.


혼자서 취미를 갈고닦는 여정은 참으로 느리고 순탄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지치지 않는다. 가끔 쉬어갈 때는 있어도 완전히 질려서 나가떨어진 적은 없다. 

자기만의 터앝을 가꾸는 일에 진절머리 내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학원에서 쓰던 팔레트와 붓, 물감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되는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까지 싫증을 내지 않고 그리고 있다.

아마도 꾸준히, 함부로 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keyword
magazine 어른의 터앝
작년에 청소년 단편 소설로 등단했고.. 요즘은 게으름 피우고 있어요...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