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8년도 더 된 것 같다. 내가 살던 스페인 남부의 작은 도시, 꼬르도바. 오늘 내가 이 도시가 문득 생각이 난 건, 참 희한하게도 베를린의 깜깜하고 찬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슈퍼를 갔다 오던 길이었다.
지독하게도 더운 여름에 강한 이 남부의 작은 도시는 겨울에는 유난히 추웠던 기억이 있다.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보통 난방시설이 갖춰져있지 않았고, 보통 집집마다 이동식 히터를 방방 곳곳 갖춰놓았다. 그래서 꼬르도바의 겨울은 오히려 지금 살고 있는 독일 베를린보다 추운 기억이 있다. 물론 겨울이 길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도시에는 이곳에서 태어나 모든 생의 전부를 살아가며 행복해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스페인 아줌마들은 참 유머도 많고, 정도 많고, 호기심도 많다. 슈퍼나 길에서 구구절절 스페인어로 이것저것을 물어보면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3초의 정적이 흐르다가, 이내 빵 터지며 상냥하게 요목조목 가르쳐주던 스페인 아줌마.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저녁으로 먹으라고 하몽 샌드위치를 랩에 칭칭 감아 싸주고 손에 쥐어주던 우리 엄마 같던 스페인 아줌마. 자기 애들 놀이방 간 사이에 나를 불러내어 초콜릿 케이크를 한 사발 대접하며 우리 집 아줌마 욕을 실컷 같이 해줬던 옆집 스페인 아줌마. 공공기관에서 만나면 꽤나 근엄하고 커리어 우먼으로 참 멋져 보였던 목소리가 허스키했던 스페인 아줌마.
인간미 넘치고, 유쾌하며 또 한 편으로는 멋짐 뿜 뿜이었던 스페인 아줌마들과는 달리, 나에게는 참 기억이 안 좋게 남은 스페인 아줌마가 하나 있다. 바로 내 첫 집주인 아줌마. 이 나라에 살아본 사람들은 한 번 씩은 꼭 겪는다는 가끔 사람을 질리게 하는 스타일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스타일이었다. 내 대학원 동기들은 우리 집에 과제하러 잠깐 들릴 때마다 "너네 집 아줌마 마녀같이 생겼다"며 키득댔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집주인과 같은 집에 살면 집이 깔끔하고, 아줌마니 잘 챙겨주겠거니 해서 들어갔던 집이었다.
물론 집은 깨끗했지만, 이 아줌마의 수입은 정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최저생계비로 지급받는 400유로, 그리고 나와 다른 독일 남자애로부터 받아가는 렌트비가 전부. 그리고 가끔씩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타로점을 봐주며 푼돈을 받는 게 전부였다.
초반부터 장황하게 자기가 부동산 일을 하면서 꽤나 돈을 많이 벌었는데 경제가 망하면서 이렇게 돼버렸다고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꼬르도바 이 전, 바르셀로나에 잠깐 살 때, 까딸란 친구들이 그랬다. 남부 사람들이 일할 방법은 안 찾고,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낸 세금을 죄다 가져가 본인들 뱃속만 채우려고 한다, "고 종종 말하곤했다. 물론 그때 당시엔 너무 편향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도 집주인이니 최대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었고, 우리 둘은 제법 친했다. 처음 한 두 달은.
매 달 방세를 내야 하는 1일이 될 때마다 방세 독촉이 점점 심해졌다. 이렇게 쓰고 나니 마치 내가 집세를 연체한 것만 같지만, 내가 오히려 집세를 당겨 일주일 정도 미리 줄 때도 있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매달 1일이 되는 12시가 되는 그 시점에 내 방 문을 두드리며, "혹시 지금 집세를 줄 수 있냐, "고 묻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 번은, 일하는 회사 앞까지 찾아왔다. 2시간 후면 퇴근인데 그걸 못 기다렸다. 여기서 화가 났던 건 항상 이 아줌마는 내 입장이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게 가장 컸다. 물론 돈이 급할 수는 있고, 사정도 있었겠지만 그때 당시 나도 인턴 월급 나부랭이를 받아가며 대학원 생활을 근근이 하던 시절이었다. 하루에 일과 공부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마치 이 아줌마의 생계를 내가 책임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는 "지난번에 내가 너 시청 일처리 하는 것 도와줬으니, 밥 한 번 산댔지? 오늘 어때?"라고 바쁘다던 나를 무작정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꽤나 그 도시에서도 가격이 나가는 곳에 데려가더니 이것저것 다 시키고 나서는 계산서를 나에게 조용히 밀어주었다. 진짜 어이가 없었다.
집을 다시 알아보기도 버거우니, 그래도 참고 살자고 했지만, 이 아줌마는 사람 뒷담도 참 잘 깠다. 하루는 내가 아팠다. 방에서 일찍 잠이 들고, 수업을 안 가고 방에서 자는데 너무 시끄러워 잠이 깼다. 내가 있는 줄을 모르고 집에서 신나게 다른 독일 플랫 메이트에게 내 욕을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지금 뭐 하고 있냐?"는 한 마디를 던졌고, 나는 그 이후 일주일 만에 그 집을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오늘 그 아줌마 생각이 왜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그 아줌마가 50대 중반 정도 되었고, 미혼이었는데 "남자 친구와 아기를 가지려고 시도하고 있다, "는 말을 종종 했던 게 기억이 났다. 아무런 의술의 도움 없이 말이다. 그때도, 지금도, "참 순수하다, "고 헛웃음이 나왔다. 30대 내 친구들도 쉽게 못하는 걸 마치 내일이면 가질 수 있을 것처럼 말하던 그 아줌마가 갑자기 오늘 왜 생각이 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