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지 와 빵빵이 전성시대
옥지 와 빵빵이. 이름은 몰라도 저 캐릭터들을 어디에선가 한 번씩은 봤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일단 개취 존중 부탁. 딱 내가 싫어하는 그림체와 캐릭터 이름스타일이다. 유튜브는 보고 싶지 않지만 궁금한 맘에 클릭했다 2초 만에 닫았다. 이런 중년의 나에게도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도록 무수히 눈에 밟히는 옥지 와 빵빵이. 요즘 잘 나가는 브랜드와 트렌드의 성지라는 더현대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더니, 강남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로데오 거리, 도산공원 한복판에 진로와 협업한 팝업스토어를 또 열었다.
이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x세대인 나로서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에 평소 주말과 다름없이 도산 공원 근처를 지나고 있었는데 한산하기 짝이 없는 다른 가게들과는 달리 한 곳에만 줄이 길게 이어져 있어서 자연스레 눈이 갔다. 아니 뭐야 또 이상하게 생긴 얘네들이잖아. 어? 근데 이곳 왜 이리 눈에 익지? 헉! 여기 바로 그 타르틴 베이커리 있던 그 건물이잖아!
이렇게 알게 된 것이다. 타르틴 베이커리 건물에 옥지 와 빵빵이 진로 팝업이 들어선 것이 나에겐 어떤 의미냐 하면, 너무나 고귀하고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은 꿈의 스타가 변두리 카페에서 공연하는 걸 본 느낌? 나이키 스캇 트레비스 에디션이 코스트코 매대에서 팔리는 걸 본 느낌? 람보르기니 우라칸에 옥구슬 냉감 시트를 장착한 걸 본 느낌? 뭐 그런 느낌인 것이다..
타르틴 베이커리는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빵"으로까지 뽑힌 미국 태생의 빵집인데, 특히 슬랩이라고 부르는 식사용 빵들이 유명하다. 슴슴하지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뭐랄까..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켜 준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긴, 타르틴 베이커리 같은 고급 미국 빵집에 가는 것이 간지 난다가 아니라, 타르틴도 있고, 신라호텔 베이커리도 있고, 파리바게트도 있고, 성심당도 있고, 동네 빵집도 있고, 시장 도나스집도 있고, 인터넷으로만 파는 구움 과자 집도 있고. 이런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고 또 그렇게 다른 취향들을 "존중" (이른바 취존 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뭔가 코로나를 지나면서 모두의 취향이 획일화되고 키치화되고 한쪽 방향으로 쏠린 것 같다.
흔히들 90년대는 다양한 음악이 유행했다고들 하는데, 그 시대에 20대를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90년대에는 음악이나 문화를 즐길 미디어, 공간, 접점이 제한적이다 보니 사람들이 그 제한된 접점에 더 모여들고 집중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모인 사람들의 여러 다른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하나의 음악순위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것 아닐까 싶다. 지금도 유지되는 음악중심 같은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그때는 발라드, 댄스, 힙합, 락, 심지어 트로트까지 (설운도 선생님 등) 차트인이 가능하던 시대였으니까.
그렇게 제한된 여건 속에서 저마다의 취향을 존중해 주고 발전시켜 왔기에 지금의 눈부신 케이팝, 케이 콘텐츠, 케이 컬처가 가능해지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옥지 와 빵빵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반박 시 님 말이 맞지만 제 말도 좀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옥지 와 빵빵이도 좋아하지만 미스치프도 좋아하고, 몽유도원도도 좋아하고, 미륵불도 좋아하는 그런 다양한 취향들이 곳곳에서 사랑받고 각가의 팬층들이 모여드는 현상을 다시 봤으면 좋겠다.
그래야 지금 케이컬처의 부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