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플라워>
"Sing me to sleep. And then leave me alone. Don't try to wake me in the morning . Cause I will be gone. Don't feel bad for me. I want you to know. Deep in the cell of my heart. ... There is another world. Well there must be."
-The Smiths 'Asleep'
(영화 월플라워 중간에 삽입되는 곡으로 주인공 찰리가 애정 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밴드 더 스미스의 'Asleep'이라는 가사를 보면 곡 상의 화자는 남들과는 동떨어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잠들기를 청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곡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현 상황보다 더 나은 그 무엇인가가 있기를 염원하고 있다.(There is another world. There must be)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이에게는 차마 꺼내지 못하는 저마다의 피치 못한 사정들과 스토리가 있다. 그 이야기는 다른 이에게는 말 못 할 정신적 트라우마 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남몰래 사랑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변주되든 그것은 각자만이 아는 비밀로 존재하곤 한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은밀한 비밀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상반된 양상이 공존하고 있기도 하다. 간혹 우리는 자신의 내밀한 속사정을 남들에게 털어놓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사람들은 각자만의 고유한 세계를 간직하길 원하면서도 이러한 세계를 공유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이해해주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상처들을 꺼내놓을 수 있다. 마치 더 스미스의 asleep 가사에서 화자가 혼자 있기를 원함과 동시에 다른 세계를 꿈꾸듯이 말이다.
1. 혼자인 삶의 아름다움
모든 사람은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 존 던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아무도 혼자인 사람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혼자인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영화 제목 월플라워는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서 춤을 추지 못하고 벽에 홀로 붙어 술을 마시거나 가만히 앉아있는 외톨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라는 원제가 암시하듯 이 영화는 이러한 외톨이로서의 삶 역시 그 나름의 특권이 있음을 시사한다.
영화 월플라워(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2013.)의 주인공 찰리는 어릴 적의 상처를 트라우마로 지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유년 시절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이모에게서 성추행을 당한 일과 그런 이모가 자신의 선물을 사러 갔다가 사고로 죽은 일로 인해 남모를 죄의식을 가졌고, 자신에게 유일했던 가장 친한 친구가 고등학교 입학 전 자살한 일을 계기로 쉽사리 마음을 못 여는 습성을 지녔다.
하지만 비루한 찰리에게도 남다른 재능이 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 감수성을 지녔고,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글을 작문할 수 있는 문학적 재능을 소유한 소년이기도 하다. 영화는 은연중에 이러한 찰리의 특별한 재능들이 그가 혼자 보낸 시간들을 자양분으로 삼아 꽃 피워졌음을 보여준다. 남다른 상처와 감수성을 지닌 찰리.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도 재미없는 삶을 이어나갈 것처럼 보였지만 그때 운명적으로 샘과 패트릭 이복남매를 마주치게 된다.
2. 비슷한 사람끼리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어
불량품들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해 "Welcome to the island of misfit toys."
샘과 패트릭은 자신들의 파티에 찰리를 초대한다. 모임 속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섬 속에서 문학을 즐길 줄 아는 시인들이기도 하고, 방황하는 사춘기에서 아직 답을 못 찾은 앳된 존재들이기도 하다. 패트릭은 학교에서는 어딜 가든 'nothing'이라 불리는 괴짜임과 동시에,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말 못 하는 고단한 성장통을 겪은 인물이다. 샘 역시 과거 성추행을 당한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을 낮게 깎아내리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을 나눈다.
이렇듯 각자 말 못 할 상처와 불안들로 가득 찬 인물들이지만 이들은 찰리를 자신들의 소속원으로 받아들여주고 그를 진정한 친구로 대해준다.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하지. 너는 월플라워야"
자신들 역시 어딘가 모난 구석이 있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이들은 찰리의 부족한 점들을 껴안아주고, 찰리 역시 점차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된다.
3. 상처의 치유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섬이고, 불량품들이다. 하지만 영화 굿윌헌팅의 숀이 말하듯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곤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이해해주고 포옹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냐의 문제일 것이다.
영화 월플라워에서 찰리, 패트릭, 샘 등장인물들은 각자 결핍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서로를 교량 삼아 교감하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 자시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찰리는 결국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백해내며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를 낮게 보며 사랑에 인색하던 샘은 결국 찰리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패트릭 역시 영화 말미에 다가가서는 본인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모습을 보인다.
*왜 사람들은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요?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만큼만 사랑받기 마련이거든. "we accept the love we think we deserve"
사실 영화 결말에 이르러서 찰리가 드라마틱하게 변한 부분은 전혀 없다. 찰리는 여전히 재미없고, 문학을 좋아하는 우울한 소년일 따름이다. 다만 변한 지점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해서 좀 더 관대해졌다는 점. 어렸을 적의 상처에서 자유로워져 본인을 보다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들이 모여 결국 찰리는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찰하고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섬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사정과 스토리에 둘러 쌓여 있다. 이러한 본인의 이야기들을 도외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 다움을 무기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본인의 고유한 모습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우리는 내심 염원하고 기대한다. 마치 찰리가 샘과 패트릭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찰리가 대학생이 된 이후의 스토리는 다루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이제 찰리에게는 그를 사랑해 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점. 그리고 분명 찰리는 좋은 작가가 되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