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적을 아군으로 만들면 영원한 평화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들을 출산하고 나는 내가 준비된 엄마고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엄마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와주는 이모님이 있어도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고 처음에는 지치고 힘들게만 여겨졌다.
무엇보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 모두 희생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내 삶에 중심이 되니 나는 아무것도 편안히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예전처럼 비싼 장신구나 옷, 나만을 위한 여행은 모두 사치가 된 듯했고 뭔가를 하고 싶어도 아이들 자는 시간에 겨우 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지치고 버거울 때가 많았다.
특히 이러한 몸과 마음의 피로와 자식을 낳고 변해버린 삶이 적응하기 힘들어 내면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 나만 이렇게 희생하는 것만 같다는 피해의식이 생겨났다.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 직장을 나가야 하는 남편을 위해서 내가 아이들을 재우고 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렇게 결정했고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계셨지만 내가 하는 일은 남편과 비교해 상당히 많았고 올곧이 편안한 건 남편 한 사람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비교로 생긴 불만과 피해 의식을 고스란히 남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남편은 직장 나가면 육아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으니 육아에 전혀 참여하지 않느다 여겨졌다. 어쩌다가 도와줄 때에도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없어서 짜증을 부려대고 여과 없이 늘 남편에게 화냈다.
아이를 낳고 2년 동안 참 많이도 싸웠다.
연애 3년, 약혼기간 1년, 결혼생활 4년을 하면서도 많이 싸웠지만 아이 낳고 2년이 절정이었다. 얼마나 극단적으로 싸웠는지 나는 아이들 데리고 혼자 돈 벌며 살 계획을 세웠고 남편은 19층에서 떨어져 죽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싸웠다.
우리는 왜 그렇게 싸웠나?
아이를 낳기 전 8년 동안은 문화 차이, 언어 차이로 인해 오해를 하며 싸웠다.
그리고 18살 나이, 세대차이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싸웠다.
남편은 독신주의자였다. 여자가 없이 사는 생활에 익숙했고 잘해나갔다. 편했다.
그리고 나 또한 개인 성향이 강해 홀로 쇼핑하고 홀로 밥 먹는 걸 즐겼고 혼자 있는 시간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
우리 각자는 이렇게 자신만의 생각과 생활방식 가치관이 강했던 사람이었다.
거기다 금전관리도 두 사람이 판이하게 달랐다.
남편은 정치가가 꿈이어서 변호사가 됐을 만큼이니 정치적인 견해나 법적인 부분, 합리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논쟁하기 좋아했고 나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썼을 정도로 문학을 좋아했고 책을 좋아했다. 내 논리는 합리적보다 감정이 중요했다. 감성적인 문학 이야기, 꿈 이야기, 공상, 인간관계와 감정에 관한 논쟁을 좋아했다.
남편은 소식하고 정말 맛있는 것만 먹는 미식가이며 술을 즐긴고 담배를 피운다.
나는 대식가고 웬만한 건 다 맛있다. 술은 즐기나 많이 마시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남편은 일을 단계 단계 순서대로 꼼꼼히, 천천히 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일에서 중요한 점을 신속하게 파악해 빠르게 진행해 마무리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내 눈에 보이지 않게 청소해야 하고 남편은 보이지 않는 곳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
남편은 위생적이지 않았고 나는 은근 깔끔을 떨었다.
이것들은 달라서 생겨난 싸움이었다.
하지만 같아서 생겨난 싸움도 많았다.
둘 다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감정이 격해졌을 때 참을성 있게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했고 상대의 얘기를 중간에 끊어버리거나 잘 듣지 않았기에 마음대로 결론을 지어버리기도 일쑤였다.
이렇듯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문화권과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모든 것이 부딪쳤다.
어떻게 이토록 극과 극에 서 있던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는지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 들던 그 고운 감정들 모두 영화 한 편을 본 것처럼 지나갔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 표정이나 한숨마저도 기분 나빠져 싸웠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생각대로 상대의 감정을 판단하고 늘 공격태세였다.
그 8년을 지나 아이를 양육하니 몸까지 지쳤고 여유가 없으니 이해심은 완전 바닥이 났다. 서로 물고 할퀴고 말로 총을 쏴 서로에게 상처를 줬으니 헤어짐을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절대로 함께 살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2년 동안은 말 그대로 남편과 나는 전쟁 상황이었다.
우리는 이혼을 결정하기 전 마지막으로 결혼 상담자를 찾아가 상담을 받기로 하고 아이들이 1년 정도 되었을 때, 한국계 미국인 상담자를 찾았다. 서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이 진정으로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양육에 조금씩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지난 9년의 싸움을 한 우리는 하루아침에 바뀌기 힘들었다.
그래서 또 1년을 더 싸웠다. 물론 상담 후의 싸움은 그나마 그전에 1년보다는 나았다. 남편도 적극적으로 육아에 조금씩 더 참여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남편도 초보 아빠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인 나도 이렇게 서툴고 모든 게 힘든데 남편은 나보다 몇 배 더 모르고 힘들 거라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남편도 나처럼 하루아침에 아빠가 되지 못해서 실수투성이에 서툴렀을 텐데 나는 나 혼자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자폐가 아닐까라는 걱정이 우리 앞에 놀여졌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억장 무너지던 아들이 자폐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나를 진정한 엄마로 만들어주었고 우리 가족이 더 이상 깨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힘을 모아 함께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는 관계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금이 가기 시작해 곧 산산조각이 날 부부관계와 가정을 아들의 일이 강력한 접착제처럼 붙여주었다.
더욱이 이 접착제는 금 간 것조차 모를 만큼 단단하게 붙여놓았다.
아들에 대한 걱정과 검사기간,
결과가 나오고 치료했던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미국 부동산 공부를 과감히 포기하고 마음공부를 시작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점차 나 자신을 이해하고 부모와 내 어린 시절을 내 글로 대면하며 나와 남편의 관계에서 내 부모가 거울이 되어 내 남편과 대면하게 했구나 하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더 이상 적이 아니라 내 아들, 내 딸, 나를 든든히 지켜주는 울타리임을 깨달았고 그에게 의지할 수 있어 감사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더욱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고 참여할수록 나를 더 많이 이해해 더 나를 사랑한다고 좋은 엄마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것에 감동했고 아들의 일로 실제 정신이 번쩍 들어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있었기에 아이들에게도 더욱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서로 돕고 합심해 아이들에게 정성을 기울이니 아들은 불행 중 다행히 자폐가 아닌 발달지연의 판정을 받고 교육기관의 도움으로 하루하루가 좋아졌다.
아들의 일은 위기에 맞은 우리 부부, 깨질 수도 있었을 우리 부부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일로 우리는 많은 대화를 했고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
나는 마음공부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강연도 들으러 다니고 집단 심리 상담도 했다.
글을 쓰며 계속 나를 알아가고 반성했고 달라지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도 놀랄 정도로 나는 많이 변했다.
그 변화 동안 제일 큰 결실은 나는 진정한 나를 알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고 완전히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남편에게나 아이에게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단점보다 그들의 장점에 더 시선을 맞추고 감사할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그 후 소설을 시작하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홈스쿨링을 하기 시작하며 더 많이 깨닫고 가족을 이해하고 이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공부해 배우고 깨닫고 내 삶에 적용하고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쌓기를 노력해야지만 해결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많은걸 깨달았지만 여전히 일상 속에서 나는 남편과 작은 다툼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목표를 수정했다.
9월부터 부동산 전문가 과정을 준비하려고 계획했으나 결혼/가족 상담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어제부터 전문가와 통화해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남편에게 언급했다.
나는 이번 9월에 결혼/가족 상담 석사를 준비하며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더 많이 깊이 배우고 깨달아 좋은 습관을 형성해 제대로 사랑하려고 한다. 그것은 오로지 내 가족에 국한시키지 않고 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겠다.
여전히 남편에게 개선될 문제와 내 감정을 다루는 문제, 특히 화를 내는 방식의 문제가 많다. 더욱 깊이 공부해 남편에게도 이상적인 아내로서 평생을 함께 의지하고 힘을 합쳐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최고의 아내가 되고 싶다.
싸움도 12년간 했으니 나는 나름 경험이 풍부하다.
거기다 언어, 문화, 세대 차이까지 더해졌으니 나는 전문가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