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나는 평생 공부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나와 또 대학원에 들어갔다. 졸업하고 방황했던 시간에도 나는 쉬지 않고 공부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자격증 시험을 보는 일은 일종의 취미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서른이 되자마자 난 또 공부를 하겠다고 나섰다. 거의 평생을 나는 학생으로 살았다. 공부가 내 본업이었고 내 생활이었다.
그렇게 평생 한 우물을 팠는데 결과가 없었다. 과정은 있었는데 결과도 없이 끝이 났다.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포기는 쉽지 않았고 포기 이후는 더 힘들었다. 갑자기 온몸이 저리고 아파 앉아있어도 누워있어도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다 덜컥 죽겠구나 싶을 때, 엄마가 내게 말했다.
그만해도 된다고.
나는 평생 공부만 했다. 평생 포기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 그런 내가 공부를 포기하면 무엇이 남을까? 그렇게 많이 공부했는데도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나는 망연자실했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 무서웠다. 그리고 진짜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때마침 터진 코로나는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마저 빼앗아 버렸고 나는 무기력했다.
무슨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매일 밤을 새우고 책상 앞에서 혼자 씨름하다가 사람들 틈에 섞여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쓰레기도 치우다 보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
물론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하는 식의 물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그렇게 일을 하니 논문은커녕 평생 해온 공부가 뭔지도 모를 정도가 되었다. 몇 개월쯤 지나자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왜 공부를 시작했을까? 단순히 공부가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가르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그동안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처럼 내 배움을 전하고 싶었다. 내가 몰랐던 것을 깨달았을 때의 기쁨, 누군가에게 이 기쁨을 전달해 주었을 때의 만족감. 지금껏 공부만 하느라 원래 내 꿈과 목표를 잊고 있었다.
급하게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냈고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에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초학력 수준이 부진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초학력 향상 교실의 강사’, 이것이 내 일의 이름이다. 일주일에 겨우 이틀, 그마저도 시간으로 치면 4시간이 채 되지 않는 수업 시간으로 먹고살기에 턱도 없이 부족한 강사료였지만 나는 이 일이 하고 싶었다.
면접 보는 날, 긴장은 했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막힘없이 쏟아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내 열정과 간절함을 알아보셨는지 그다음 날 바로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전날의 그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잘 부탁드린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에 덜컥 겁부터 난다.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내가 아이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고민이 나를 괴롭혔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시작한 첫 수업, 평생 공부만 한 선생님이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서 또 아이들에게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 행동 하나하나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나는 기초학력 향상 교실의 강사다. 커다란 가방에 동화책이며 아이들과 함께 놀 윷놀이에, 색종이까지 들고 다니는 이른바 ‘보따리 선생님’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1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몸소 느끼고 체험한 내 수업에 대한 것이다. 가르치고 싶어 학교에 간 선생님을 더 배우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그 고마운 내 학생들의 이야기다.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있었던 일들을 글로 적어낸 것입니다. 글마다 다르지만 자칫 민감할 수 있는 주제도 있기 때문에 학교 이름과 아이들의 이름은 전부 가명을 사용합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