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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Jun 20. 2022

쉽지 않은 이별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이별은 늘 쉽지 않다. 햇빛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 즈음 나는 기분이 울적해졌다. 겨우 일주일의 이틀뿐이지만 그래도 몇 개월간 수업하면서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구단은커녕 간단한 덧셈 뺄셈도 어려워하던 친구들은 어느새 두자릿 수 곱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국어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일은 엄두도 못 내던 아이들이 이제는 지문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며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수업이 종료되기 이틀 전에는 내가 없이도 스스로 공부하고 직접 채점할 수 있도록 답안지 보는 요령도 가르쳐 주었다. 이제는 스스로 학습량을 정하고 그것도 모자라 숙제를 더 내달라고 하는 녀석들 덕분에 나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초학력 향상 교실의 목표는 국어와 수학 과목에 기초와 기본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이들이 공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나의 노력이 어디까지 닿았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결과만으로도 결코 헛된 1년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끝나는 날이 다가오니 아쉬운 부분도 많이 떠오른다. 매일의 학습량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을 닦달한 것은 아닌지, 공부에 대한 흥미를 찾기도 전에 강요한 것은 아닌지 나 혼자만의 반성의 시간도 필요했다. 그리고 더불어 다음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수업을 이끌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준비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 아이들과의 헤어짐을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 수업이 다가오자 나는 아이들을 위한 선물로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계속 고민했다. 책과 문제집, 학용품도 생각해 봤지만 이번만큼은 아이들의 공부가 아닌 아이들이 나를 기억해 줄 만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어쩐지 어딘가 나를 닮은 곰돌이 인형을 하나씩 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함께 담아 포장했다. 예쁜 엽서에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의 선물을 담은 가방이 무거워질수록 어쩐지 내 마음은 더 허전해져만 갔다. 


 수업이 끝나기 하루 전 아이들에게 이제 내일이 우리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이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 얼굴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자기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풀고 있던 문제지에 얼굴을 고정하고 나를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 시큰둥한 반응에 어쩐지 서운해진다. 더군다나 막상 마지막 날이 되니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에 힘이 나질 않는 나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오늘도 웃음과 활기가 넘친다.

 

 마지막 수업 날, 담당이신 체리 선생님이 아이들의 수료식을 준비해 주셨다. 교실 한쪽으로 기초학력 수업 교실 수료식이라는 장식과 함께 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상장과 선물들이 책상 위로 가득했다. 아이들이 입을 예쁜 옷을 준비해 주셔서 내가 더 감사하고 기뻤다. 1년 동안 항상 아이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챙겨주셨던 체리 선생님이 계셔서 나도 아이들을 더 잘 챙길 수 있었다. 그 감사의 마음을 전하니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내게 감사하다며 나를 위한 선물도 준비해 주셨다.


 수료식은 장난꾸러기 녀석들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아이들을 위한 상장을 수여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하자며 아이들을 응원하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은 이제 나를 못 본다는 사실보다 선물이 많아 신이 났는지 가방에 그동안 풀었던 문제집이며 선물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아이들을 챙기며 배웅하는 내 발걸음은 서글픈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녕히 계세요!” 하며 떠나가는 아이들이 야속하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서운해하다 옆에 계신 체리 선생님께 물었다. 


 “아이들이 절 기억할까요?”


 “글쎄요. 6학년쯤 되면 모르는데 3학년 학생들은 금방 잊더라고요. 혹시 3학년 때 담임 선생님 기억나세요?”


 “그럼요. 저는 3학년 때 선생님 성함이랑 얼굴도 아직 기억나요.”


 “그럼 그 선생님 찾아뵌 적 있어요?”


 그 얘기를 들으니 어쩐지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던 은사님이 생각도 나고 아이들의 마음도 이해가 갈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나 역시 그저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선생님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씁쓸하면서도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저 천진함이 부럽다. 


 “그러게요. 가끔 생각은 했는데 찾아뵌 적은 없네요.”


 “평생 짝사랑이에요.”


 뜬금없는 선생님의 대답에 내가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아이들 말이에요.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내 자식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는데 애들은 너무 금방 잊더라고요. 이 마음도 모르고…….”


 선생님의 말씀에 참았던 눈물이 차올랐다. 지난 몇 개월 마치 내 아이를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웃고 울었던 시간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동안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체리 선생님의 솔직하고 다정한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와 가슴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절대 짝사랑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이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이들도 분명 선생님을 사랑했을 테니까.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이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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