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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Jun 29. 2022

에필로그 – 마음을 주고 받는 일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햇빛 초등학교 아이들과의 수업이 끝나고 이제는 달빛 초등학교 수업만이 남았다. 헤어짐의 여운을 생각할 새도 없이 아이들과 매일 함께 수업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가을이 무르익을 때 시작한 우리의 수업은 첫눈이 내리면서 점점 끝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덕분에 끝나기 며칠 전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일 년의 한 번뿐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과자와 사탕 등을 포장해 선물로 준비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전날 다 같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다. 재료도 준비하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그래도 이 아이들과 곧 헤어진다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보다도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달력에 얼마 남지 않은 수업 일수를 세다가 이제 몇 밤이 지나면 이곳과도 안녕이구나 싶어 울적해졌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며칠이 지나면 우리의 수업이 끝난다는 이야기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알겠다는 말뿐이다. 나는 이별이 이리도 어려운데 이토록 가벼운 대꾸에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이 울거나 속상해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보내주는 편이 더 좋을 듯싶다. 


 수업 끝나기 며칠 전부터 나는 아이들을 위한 선물과 수료증을 준비했다. 수업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담당 선생님은 끝날 때까지도 여전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료식 관련해서 여쭤보니 결국은 알아서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록 몇 개월뿐인 수업이고 아이들에게 나는 스쳐 지나가는 선생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이 수업을 통해 얻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랴부랴 수료증을 제작하고 아이들이 지금껏 공부한 자료들을 예쁘게 묶어 수료식에 선물과 함께 주기로 했다. 


 준비가 끝나고 마지막 수업이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어쩐지 조급해졌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결국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기초학력 교사 일을 계속하고 싶어도 이렇게 학기가 끝나고 방학 동안에는 일이 없으니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즐겁고 보람 있다. 하지만 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내 바람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도 정하지 못 한 채 결국 마지막 수업이 다가왔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오늘도 밝고 명랑하다. 그동안 열심히 풀었던 교재를 정리하고 아이들에게 수료증을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음을 칭찬하고 수료증을 나누어주는데 괜히 내 코끝이 찡해진다. 


 기념으로 사진이라도 남기도 싶어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예쁘게 사진을 찍으려고 일부러 삼각대까지 챙겼는데 아이들은 그저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다. 덕분에 다섯 명의 얼굴이 제대로 정면을 향하고 있는 사진은 찾기가 힘들다. 그래도 화면 가득 밝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여 다행이다. 


 드디어 마칠 시간이 되어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귀가를 도왔다. 겉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고 가방까지 메주며 항상 건강하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모든 친구들이 떠나고 이제 단오 한 명만 남았다. 


 단오는 달빛 초등학교에서 나를 제일 따르고 좋아하는 아이다. 처음 아이를 가르칠 때 학부모님께 내가 미리 학생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것은 없는지 물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상담 센터에 다니거나 학습 수준이 많이 부족하다고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걱정했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 수업을 해보니 모두 단지 조금 느릴 뿐이다. 단오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라는 부모님의 말씀과는 다르게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였다. 가끔 울기도 했지만 그래도 항상 예쁘게 웃어주고 집에 갈 때는 내 손을 잡고 교문 밖을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단오 덕분에 나도 즐겁게 수업할 수 있었다. 오늘은 한 살 많은 단오의 누나가 단오를 데리러 왔다. 단오의 누나에게도 사탕 하나를 주고 동생을 잘 데리고 집에 가라고 했다. 


 그런데 집에 가려고 준비를 한 단오가 집에 가지 않겠다며 버틴다. 매일 나랑 함께 집에 갔으니 오늘도 꼭 같이 나가자는 것이다. 그동안 사용했던 물품과 자료들을 담당 선생님께 주고 가야 해서 오늘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먼저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꼭 선생님과 함께 가고 싶다며 교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 아이를 복도에 두는 것이 걱정돼 얼른 가라고 했지만 단오는 고집을 부린다. 누나가 단오에게 게임을 시켜주겠다, 젤리를 주겠다 해도 아이는 요지부동이다. 


 어쩔 수 없이 먼저 교무실로 들어갔다. 담당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조급한 마음에 복도로 나오니 아직도 단오가 똑같은 곳에 서 있다.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보며 웃는 단오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다. 한껏 차가워진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얼른 가지 왜 안 갔냐는 내 말에 단오는 선생님과 같이 돌아가고 싶다는 말뿐이다. 교문으로 향하는 길이 이렇게도 짧았나? 애틋한 마음이 채 식기도 전에 이미 헤어질 시간이다. 


 아이들과 헤어질 길목에 서서 이제 그만 가라고 하니 갑자기 단오가 달려와 나를 껴안는다. 눈까지 꼭 감고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작은 손에는 힘이 실렸다. 이별을 많이 경험해 본 적 없는 아이에게 나와의 이별이 많이 힘든가 보다. 당황스러운 누나의 만류에도 단오는 한동안 나를 놓지 못한다. 나는 단오의 등을 토닥거리며 아이가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아이는 겨우 나를 붙잡던 손을 떼고 대신 누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뒤돌아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인사드리라는 누나의 말에 뒤돌아 간신히 고개를 숙이며 작은 소리를 말한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마스크 위로 보이는 아이의 눈동자가 눈물을 머금고 있다. 헤어짐이 힘든 단오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져 나도 쉽게 발을 뗄 수가 없다. 한참이나 서서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평생 공부만 하던 나도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일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배우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 덕분에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아님을 알게 된다. 조금 더 배운 내가 아이들이 배우고 자랄 수 있도록 마음으로 도와주고 서로 성장하는 일, 그것이 바로 가르침과 배움의 올바른 목표일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도 조금 더 성장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렇기에 더 보람 있는 길이다.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에 힘껏 힘을 실어 본다.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보따리가 오늘부터는 더 든든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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